[유난한 식탁: 저는 채식주의자입니다] 4. 식품회사로 가장한 '도살장'을 가다

  • 경제/과학
  • 유통/쇼핑

[유난한 식탁: 저는 채식주의자입니다] 4. 식품회사로 가장한 '도살장'을 가다

  • 승인 2021-08-17 19:42
  • 수정 2021-08-25 09:50
  • 이유나 기자이유나 기자
컷-비건






 

고기라는 '악의 평범성'… 비건은 철학이자 삶의 태도

쉼 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동물 비명소리도 끝없어



대전에서 멀리 떨어진 한적한 시골에 자리 잡은 한 식품회사. '00 식품'이라는 평범한 이름과는 달리 창문을 보니 무심히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에 거꾸로 매달린 닭들이 온 힘을 다해 날갯짓하고 있었다. 곳곳에서 들리는 닭들이 내뱉는 소리는 지금까지 알던 평온한 닭들의 울음과는 다른 비명이었다. 사력을 다해 푸드덕이는 날갯짓과 발깃질은 죽음을 앞두고 생명을 갈구하는 절박한 몸짓이었다.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마스크를 뚫고 들어온 악취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흥건한 피가 흐르는 바닥은 오물과 뒤섞여 무심히 내디딘 발을 이내 걷었다.

"도살장 벽이 유리로 돼 있다면 모든 사람은 채식주의자가 될 것"이라는 폴 메카트니의 말은 창문 너머 풍경을 보자 바로 알았다. 충청도의 한 도계장 창문 너머엔 무심히 돌아가는 컨베이어와 간절한 닭들의 발짓을 보니, 지금껏 쉽게 접해왔던 '치킨'도 하나의 소중한 생명이었다는 사실을 바로 깨닫는다. 

 

도계장
도계장 창문 너머, 컨베이어에 달린 쇳덩이. 안에는 쇳덩이에 살아있는 가금류의 발이 거꾸로 매달려 있다.
자본주의와 경제성이란 명목으로 인간의 이기심과 잔인함이 용인되는 '공장식 축산'을 마주했다. 공장식 축산이란 최소 비용으로 생산량을 최대화하기 위해 동물을 한정된 공간에서 대규모 밀집 사육하는 축산의 형태다.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그 공장은 운영되고 있었다.

컨베이어는 쉬지 않고 돌아갔고 비명도 멈추지 않았다. 마지막 양심 때문일까. 당당히 도살장임을 내 건 곳은 없었다. 함께했던 동물해방운동가이자 영화 '검은 환영' 감독 이하루 씨는 "도살장은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시민들이 접근하기 어렵고 'OO식품'와 같은 이름으로 포장돼 무엇을 하는 곳인지도 알기 어렵다"며 "도살장만큼 그곳으로 가기 위한 동물들이 사는 곳, 즉 거대한 사료통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공장식 축사'가 너무나도 많이 보여 마음이 착잡했다"고 말했다. 취재를 원한다는 기자의 요청엔 '방역 때문에 안된다'며 출입을 막았다.

도계장
충청도의 한 도계장 모습. 이하루씨 제공.

육식이 건강한 스테미나의 상징으로 인식되면서 도축장은 여전히 우리 삶 가까이에 존재한다. 농림축산검역본부의 '2021년 도축장·집유장 작업장 현황'에 따르면 충청도에만 공식 신고된 도살장은 40여 개다. 도살 현장을 보고 나니 지금까지 무의식적으로 소비해왔던 육식에 대한 반성이 느껴졌다. 동행했던 이 감독과 도살장 앞에서 '비질' 활동을 했다.

'비질'이란 육식주의 사회에서 고통받는 동물의 증인이 돼 폭력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운동이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시작했고 우리나라에서는 2019년 4월부터 비질이 열리고 있다. 엄격한 채식주의자라는 뜻의 비건은 삶의 전반에서 동물에 대한 착취를 거부하는 철학이자 삶의 방식으로 동물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착취와 학대를 배제하려는 '비거니즘'이란 개념으로 확장했다. 

 

지역에서 비건 커뮤니티 '아삭아삭'을 처음 만든 황진아 씨는 "비건을 지향한다는 건 내가 가해자와 방관자의 자리에 서 있음을 인지하고 일상적인 폭력과 무지를 바꾸어가겠다는 선언"이라고 말했다.
 

돼지
도살장 앞에서 나온 트럭 안, 철장에 갇힌 돼지들의 모습. 철장 사이로 코를 빼꼼 내민 모습이 애처롭다.

부산물 시장
충청도의 한 부산물시장에 창백한 돼지 머리들이 줄지어 있다.이하루씨 제공.
복잡한 마음을 안고 대전에 도착하자 너무나도 깔끔한 대전이 오히려 생경하게 느껴졌다. 무제한으로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식당의 광고와 새로운 버거를 광고하는 패스트푸드, 치킨이 진리라는 여배우의 늘씬한 몸매가 가득한 광고 포스터가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개농장3
도살장을 찾으러 다니던 길에 발견한 개농장. 자기 몸만한 좁은 철장에 갇혀있다. 이하루씨 제공

집에 오자마자 샤워를 하고 입고 있던 옷을 비롯해 모자, 가방까지 모두 빨았다. 아마 도살장에서의 기억을 잊고 싶다는 행위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귀에서 울려대는 죽어가는 동물들의 환청이 들리는 것 같다. 앞으로의 내 삶은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으리라. 더는 동물을 착취해 얻은 음식, 화장품, 섬유, 의류, 전시, 공연을 소비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은 대량생산이 덕목으로 여기는 자본주의 안에서도 그렇게 평범해 지고 있었다.


이유나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청주시 외평~북이 등 2개 도로 노선, 제6차 국도·국지도 예타 대상 선정
  2. 포항 해수욕장 제사 반대 10만 서명운동 본격화
  3. 대전 미분양 1년 새 23% 증가… 중구 미분양 대폭 증가
  4. [주말사건사고] 폐차장 화재부터 공장 폭발까지...대전·충남 사고 잇따라
  5. 한국마사회 글로벌 심판 영입… 서울경마 신뢰 높인다
  1. 충청 명운 가른다…정기국회 현안입법 예산 초당적 협력 시급
  2. 보완수사 기한 줄이고 절차 강화… 경찰 수사 완결성 시험대
  3. [2027 수시로 간다-대학의 색, 미래의 선택] 의료현장에 AI·데이터 더한다… 건양대가 여는 '데이터 의학'
  4. 국세청, 태국에 세정 선진 경험 전수… 글로벌 최저 한세 협력
  5. 지방 국립대 등록금 전액 지원…지역 사립대 '직격탄' 우려

헤드라인 뉴스


[중도일보 창간75주년 특집] 기록을 딛고, 충청의 미래를 점화한다

[중도일보 창간75주년 특집] 기록을 딛고, 충청의 미래를 점화한다

원자번호 75. Re. 레늄(Rhenium). 녹는점이 3000℃를 훌쩍 넘는 레늄은 초고온에서도 안정적인 특성을 유지한다. 극한의 열을 견뎌야 하는 항공기 제트엔진의 터빈 블레이드용 초합금과 로켓·미사일 추진기관의 연소실·노즐 등에 활용되는 이유다. 특히 니켈계 초합금에 소량만 더해도 고온 강도와 내구성을 높일 수 있어 항공우주와 국방산업에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그 희소성은 더욱 특별하다. 레늄의 대륙지각 내 평균 함량은 10억분의 1 미만으로 지구에서 가장 희귀한 원소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극한의 열을 견디고 소량으로도 전체..

[창간75] AI 선도·반도체 성장축 떠오른 충청…초광역 ‘원팀 전략’ 관건
[창간75] AI 선도·반도체 성장축 떠오른 충청…초광역 ‘원팀 전략’ 관건

이재명 정부가 인공지능(AI) 대전환과 반도체 경쟁력 강화에 속도를 내면서 민선 9기 대전·세종·충남·충북도 AI와 반도체 산업을 지역의 핵심 성장동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천안·아산과 청주의 대규모 반도체 생산시설부터 대전의 연구개발(R&D), 세종의 첨단부품까지 충청권이 보유한 산업 기반도 탄탄하다. 정부의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를 통해 392조 원 규모의 민간투자 계획까지 더해지면서 충청권이 국내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성장축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관건은 충청권의 공동 대응이다. 4개 시도가 개..

[창간75] 충청권 392兆 대규모 투자 마중물… `초광역 경제권` 발판 삼아야
[창간75] 충청권 392兆 대규모 투자 마중물… '초광역 경제권' 발판 삼아야

충청권 산업이 대전환기에 들어섰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바이오 등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민간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본격화하고 있어서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충청권 첨단산업 민간투자 규모는 총 392조 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충남에서는 올해 202조 원 규모의 투자사업이 착공과 인허가 등 구체적인 실행 단계에 돌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관건은 이번 대규모 투자를 단기적인 생산과 고용 증가에 머물지 않고 지역 산업의 장기적인 성장 동력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기업 투자를 계기로 산업 기반을 확충하고 지..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물폭탄에 잠긴 교량 차지한 오리 물폭탄에 잠긴 교량 차지한 오리

  • ‘두 달째 파행하고 있는 대덕구의회 규탄한다’ ‘두 달째 파행하고 있는 대덕구의회 규탄한다’

  • 제17회 대전시 동구청장배 전국풋살대회 여자부 8강 제17회 대전시 동구청장배 전국풋살대회 여자부 8강

  • 제17회 대전시 동구청장배 전국풋살대회 초등 3~4학년부 4강전 제17회 대전시 동구청장배 전국풋살대회 초등 3~4학년부 4강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