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세상읽기-어떻게 읽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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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읽기-어떻게 읽을 것인가

  • 승인 2022-02-02 10:41
  • 수정 2022-02-02 13:50
  • 신문게재 2022-02-03 18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지난해 늦가을 옥천 금강변을 걷다가 조약돌을 주웠다. 그때부터 이 돌은 항상 내 베개 옆에 놓여 있다. 손 안에 가득 들어오는 돌은 모양이 영락없이 호빵이다. 잠자기 전 이불 속에서 맨질맨질하고 차가운 감촉의 조약돌을 만지작거리며 상상 속으로 들어간다. 이 돌은 지구상에 언제부터 존재할까. 몇 억 년 전 화산 폭발로 분출된 용암이 영겁의 시간을 거쳐 지금 내 손안에 놓인 걸까? 올해가 AD 2022년이다. 2천년의 시간도 까마득한데 돌이 존재한 시간은 가늠할 길이 없다. 처음엔 울퉁불퉁했지만 물과 바람에 깎이고 쓸려 다듬어졌을 것이다. 집채만한 공룡이 밟고 지나갔을 수도 있다. 원시인이 사냥한 짐승의 뼈를 부수는 도구로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그들과 나의 조우. 시공간의 물리적 셈법이 무색할 뿐이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왜 사피엔스 종만이 지구상에서 살아남았는지 설파하며 문명의 배를 타고 진화의 바다를 항해하는 인류는 이제 어디로 나아갈 것인지 묵직하게 질문한다. 하라리는 인류의 미래는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이라고 단언한다. 하긴 이것은 예정된 수순 아닌가. 공룡의 멸종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하라리는 생명공학, 사이보그 공학, 비유기물공학(디지털 인공지능)을 통해 인간이 새로운 차원으로 진화할 것으로 보았다. 이 시점에서 저자는 지금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행복한지 또 묻는다. 하라리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매우 짧은 고도성장기를 거친 한국은 세계가 직면한 딜레마를 압축해서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남미 콜롬비아보다 낮은 행복지수. 한국인은 권력을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능하지 못하다고 했다.

코로나 19가 발생 2주년을 막 넘어섰다. 거리낄 것 없던 일상이 이젠 간절한 소망이 돼버렸다. 절망과 우울이 세계를 잠식하면서 생존이라는 게임의 법칙은 냉혹해졌다. 재작년 봄 어느 날,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배달 오토바이가 내 앞을 쌩 지나갔다. 하마터면 부딪힐 뻔해서 비명을 질렀다. 나는 저만치 달려가는 오토바이를 향해 씩씩거리며 허공에 주먹을 날렸다. 코로나로 음식을 시켜먹는 사람들이 늘면서 배달 오토바이의 곡예운전은 날로 심해진다. 시간이 돈이기 때문이다. 신호 위반은 기본이고 인도에서도 쌩쌩. 걷는 사람이 앞뒤 살피면서 피해가야 하는 지경이다. 그렇다보니 사건사고가 많다. 배달 라이더는 화물차에 깔려 죽기도 하고 마주 오는 차와 충돌해 오토바이가 휴지조각처럼 구겨지기도 한다.

어디 이 뿐인가. 택배기사들은 배달물품을 들고 뛰어다닌다. 여름엔 온 몸이 땀범벅이다. 택배 기사들의 과로사는 이젠 낯선 풍경이 아니다. 광주에서 연달아 일어난 대형 붕괴 사고는 어떤가. 시행사가 대재벌 현대산업개발이다. 청년들의 영끌, 빚투는 한 시절 광풍이었다. 한파가 몰아치는 한겨울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는 비정규직들도 있다. '세모녀 자살'은 단골 뉴스다. 천진한 아이들이 시험 점수 때문에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린다. 대선을 앞둔 후보들은 약자의 고통은 외면하고 진정성 없는 공약을 쏟아낸다. 한국 사회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유발 하라리는 천국이 될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는 인류 문명의 진보에 대해 현실주의자가 되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진실을 보고 있을까. 배달 오토바이가 왜 과속을 하는지, 왜 곡예운전을 하는지, 왜 신호위반을 하는지 알고 있었는가 말이다. 나와는 상관없는 그들이 나에게 피해를 주는 귀찮고 위험한 존재들로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왜 대기업이 시행하는 건물 붕괴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고 노동자가 매일 죽어나갈까. 나야말로 정의가 어떻고 저널리즘이 어떻고 떠들기만 하는 위선적인 얼치기 기자가 아니었는지 나 자신에게 묻는다. 진실은 눈에 보이는 사실의 이면에 숨어 있다. 우리가 보는 세상의 사실은 진실의 왜곡이거나 허위일 수 있다. 기자는 이 진실을 제대로 보고 세상에 알려야 한다. 2년 만에 쓰는 시사칼럼이다. 나태하고 무뎌진 정신을 곧추 세워야겠다. <지방부장>
우난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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