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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집으로 8권을 냈다는 것은 전국적으로도 드문 일일 것입니다. 우리 지역에서는 처음이지요. ‘서울에 김형석 교수가 있다면 대전엔 변평섭 회장이 있다’는 말씀을 해주시는 분도 있더군요. 처음에 칼럼집을 낸 것이 1987년도입니다. <보통사람을 두려워하시오>라는 칼럼집을 냈지요. 칼럼이란 것은 한마디로 얘기하면 보편적 가치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논문도 아니고 어떤 정파나 계층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지요. 이번에 낸 칼럼집 <나라가 네 것이냐>는 권력을 잡은 정권이 나라가 제 것인 양 하는데 대한 경고의 의미에서 쓴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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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것을 운명처럼 살아왔습니다. 1965년 대전일보에 입사하고 얼마 안 되어 편집국장이 선배 기자들에게 1주일에 한 번 연재되는 대하물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그것을 기자 초년병인 저에게 넘겨주는 것이었습니다. ‘내 고장의 향기’라는 타이틀로 충청 지역의 역사적 명소를 찾아 사진과 함께 소개하는 것인데 반응이 참 좋았습니다. 그 이후 대전의 역사를 조명하는 ‘한밭승람’과 충남의 근대사를 엮은 ‘충남 반세기’ 등 대하물을 계속 연재했습니다.
70~80년대 우리 지역에는 향토사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을 때여서 제가 쓰는 대하물들이 대학에서도 자주 인용되었고 방송 소재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30대 나이에 ‘충청남도 문화상’을 받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러다 논설위원이 되고 편집국장이 되면서 시사 문제를 다루는 칼럼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군사정권하에서 칼럼을 쓰기란 참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군사정권의 강경정책을 비판하려면 직설적으로 쓰지 않고 ‘가벼운 눈도 쌓이면 소나무 가지를 부러 뜨린다’는 식으로 경고음을 날렸는데 그래도 당국으로부터 미움을 받았습니다. 이 때문에 1989년 서울 언론인클럽으로부터 ‘언론대상(칼럼부문)’을 수상했습니다. 집안에 강도가 들었을 때 ‘강도야’ 하고 소리치지는 못했지만 ‘불이야!’ 하고 외치는 용기가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상은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도 받았던 상입니다. 유신 때, 군사정권 때 당국에 불려가기도 하고, 군사정권 시절에는 특히 지역 언론인들이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신문사를 떠나 ‘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으로, 그리고 초대 ‘세종특별자치시 정무부시장’으로 재직하는 동안에도 매주 정기적으로 신문에 칼럼을 연재했고, 지금까지도 펜을 들고 있으니 60년 가까운 세월을 글을 쓰며 살았습니다. 이런 운명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여덟 번 째 칼럼집을 내면서 뒤돌아보며 만감에 젖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제 인생의 마지막 칼럼집이 되겠지요. 그동안 부족한 글을 계속 연재해준 언론사들, 그리고 독자분들께도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아침마다 오르는 동산, 그 곳에서 바라보는 동틀 무렵의 구름은 계절에 따라, 시간에 따라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어제의 그 구름의 모습은 오늘 따라 또 다른 모습이고, 내일 역시 다른 모습일 것입니다. 그런 자연의 변화를 볼 수 있음은 축복이고, 영혼의 자유입니다. 제가 그런 구름의 한 순간을 보았듯이 구름처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을 칼럼을 통해 독자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것도 기쁨이 아닐까요. 저와 어깨를 부비며 살았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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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매일 제가 사는 반석마을 아파트 뒷산 반석산을 한 시간 30분씩 걷습니다. 주로 아침 일찍 걷는데 겨울에는 오후에 걷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는 게 건강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서구 가람아파트 살다가 세종시 초대 정무부시장을 마치고 난 이후부터 유성 노은동의 반석마을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매일 규칙적으로 등산을 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골고루 잘 먹습니다. 특히 야채를 많이 먹고, 마음을 비우고 사는 게 건강 비결입니다. 담배는 40대 중반에 일찌감치 끊고 산에 다니고, 걸어다니는 게 최고의 건강비결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매일 새벽 4시면 일어나서 한 시간 동안 기도하고, 성경을 읽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열흘에 한 번 나오는 '순간(旬刊) 신문'인 충남도정신문에 ‘격동 충남 100년사’를 썼는데요. 100년 동안 충청도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모았습니다. 글은 매일 밤에 조용할 때 쓰는데 보통 저녁 7시부터 밤 10시까지 씁니다. 저는 85세가 되었어도 안경을 끼지 않고 글을 읽습니다. 건강 관리를 잘하는 법은 담배를 피지 않고, 과음하지 않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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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지역은 선비의 고장이라고 하는데 우리 충청도 사람들에게 2% 부족한 게 있습니다. 제가 얼마 전 도시공감연구소 다산학당 세미나에 가서 충청도 정신에 대해 이야기했는데요. 우리 충청도는 선비정신은 98%인데 2%의 진돗개 정신을 채우면 아주 좋겠다고 했습니다. 지하철만 해도 우리보다 인구가 적은 광주는 공정률이 56%이고 곧 2호선이 완공된다고 하는데 우리는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출발은 그럴듯하게 하는데 마지막 2%에 가서 주저앉습니다. 호남고속철도 분기점도 천안으로 와야 되는데 오송으로 결정됐습니다. 충북사람들은 지역 문제에 있어서는 여야가 없이 합심하는데 충남도 사람들은 2%의 진돗개 정신이 부족해 관철시키지 못하는 문제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선비정신으로 양보만 하는데 충청도 정신에는 반드시 진돗개 정신이 필요합니다. 우리 대전은 여러 정책들이 신문 기사가 나간 이후에도 흐지부지 되는 게 많은데 지하철의 경우에도 역대 시장들이 물고 늘어지지 못한 경향도 큽니다. 충청도 사람들은 그 점이 부족합니다.
세종시의 경우 지금 대한민국 행정의 80%가 그 곳에서 이뤄집니다. 공무원이 3만 명 대입니다. 세종시가 발전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족 기능입니다. 큰 첨단 산업시설이 들어와야 됩니다. 전국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주민 소득이 가장 높은 곳이 평택입니다. 삼성반도체 캠퍼스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종시의 가장 큰 문제는 상가에 공실이 많다는 점입니다. 사람이 모여야 장사가 잘되는 거고 대기업이 들어와야 세종시가 살아납니다. 국회의사당도 당연히 내려와야죠. 진돗개 정신 2%가 부족합니다. 국회를 끌어들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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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큰 문제이자 엄청나게 불행스러운 일이 바로 정치의 양극화입니다. 당과 당 사이가 경쟁 관계가 아니라 적과 적이고 원수와 원수, 악마와 천사 관계입니다. 조선시대 4색 당파 시대에도 당이 다르면 혼인도 안 할 정도였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더한 것 같습니다. 당과 당의 경쟁 관계가 상대방 욕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아이들 교육에 문제가 있습니다. 정치 양극화 현상이 개탄스럽습니다.
또 하나는 안보에 관한 것입니다. 임진왜란 발발 때 선조 임금에게 일본의 전운에 대해 동인과 서인은 정반대로 보고를 하지 않았습니까?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시각도 정권에 따라 달라지는데 국가안보만은 나라의 운명이 걸린 것입니다. 여와 야가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80대 노인 입장에서 제일 우려스러운 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안보입니다.
제 말의 핵심은 포퓰리즘을 경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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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순 전 원자력연구소장과 오응준 전 대전대 총장과 도한호 전 침신대 총장과 저와 이렇게 네 사람이 중심이 되어 모입니다. 매월 한 번 씩 점심때 모여 원로들이 후배들에게 지식과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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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에 3대 도자기 문화가 있습니다. 전라도 강진의 ‘고려청자’, 경기도 이천의 ‘조선백자’, 충청도 계룡산의 ‘철화분청사기’가 그것입니다. 이 3개가 우리 민족 문화자산인데 고려청자나 조선백자는 잘 홍보가 되어 알려져 있는데 비해 충청도 계룡산의 흙으로 만든 철화분청사기만 침체 돼 있어 3년 전 계룡산 철화분청사기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비영리단체를 만들어 발전시켜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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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계에서 쌓은 수많은 지식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언론인은 언론계를 떠났어도 뭐든지 맡겼을 때 잘 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좋은 겁니다. 평생 일하면서 사는 게 좋은 거죠. 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을 연임했고, 세종시 초대 정무부시장을 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소화해냈습니다. 그것을 토대로 지금 충남복지재단 이사장도 역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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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날 동안 열심히 일할 것입니다. 글을 쓰는 것이지요. 어떤 큰 뜻은 없습니다. 하루하루 충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책도 많이 보고 계속 글을 쓰는 게 좋습니다.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육체에서 나옵니다.
‘To do best’, 최선을 다하자는 말인데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말입니다. 우리 인간은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하려고 해도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저 노력하고 최선을 다할 뿐이지요. 하나님의 섭리를 기다립니다. 자기가 처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이게 제 좌우명입니다. 글을 쓰다 찢어버리고, 다 쓰고 나서도 제 자신과 싸울 때가 있습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읽어보고 공감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언론사에서 계속 칼럼 요청을 하는 게 그런 이유일 것입니다.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하면 결과도 좋습니다.
제가 사장으로 재직했던 중도일보와 이렇게 인터뷰를 하게 되니 기쁘네요. 많은 발전을 기원합니다.
대담, 정리 한성일 편집위원(국장)hansung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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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충북 영동군 양산면 출생. 대전 삼성초, 대전중, 대전사범학교, 충남대 영문과, 대전대 경영행정대학원 졸업.영국 톰슨(THOMSON) 신문연구소 수료. 1965년 대전일보 공채 4기 기자로 입사, 사회부장, 논설위원, 대전일보 편집국장(1989), 중도일보 사장(1993), 천주교 대전교구 평신도협의회 회장(1993), 충청투데이 회장(2002),충남도 역사문화연구원장(3~4대), 세종특별자치시 초대 정무부시장, 현재 충남도 복지재단 이사장.
저서로 <나라가 네 것이냐> 등 칼럼집 8권. 제5회 언론대상(서울언론인클럽, 1989), 충남도문화상(1972), 대통령 문화포장(2011) 등 수상. 시사저널 대전·충남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1위 선정(2005), 2015 대전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선정(디트뉴스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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