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거위 이야기, <우군환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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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거위 이야기, <우군환아도>

양동길/시인, 수필가

  • 승인 2023-11-24 06:4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대전 동구 하소동 만인산휴게소 뒤 소류지에 거위 한 쌍이 산다. 언제부터 그 곳에 살았는지 묻지 않아 모르지만, 필자가 처음 만난 것은 15년 전이다. 수명이 사오십년 된다하니 오래 되었다고 놀랄 일은 아니다. 날개가 암갈색 또는 짙은 회색인 것도 있는데, 이곳 거위는 온통 흰색으로 치장하여 얼핏 백조처럼 보인다. 물살 가르며 다정하게 헤엄치는 모습이 대단히 우아하다. 물가에 나와 머리 높이 들고 좌우 살피는 모습도 기품이 있다. 덕분에 산 그림자뿐인 호수가 생동감이 넘친다.

본격적인 산업화가 이루어지기전 시골집엔 다양한 가축이 함께 살았다. 닭, 오리, 거위 등 날짐승도 키웠다. 드물지만 비둘기, 매 키우는 집도 있었다. 거위는 몸집이 크고 요란해서 돋보였다. '때깨오'라 부르기도 했다.

거위는 오리보다 덩치가 훨씬 크다. 부리에서 머리로 가는 부분에 혹같이 보이는 돌기가 있어 오리와 확연히 구분된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엄청나게 먹었다. '집안 청소부'로 불린다는 것은 나중에 안 일이어서, 신기할 정도였다. 따라서 배설물도 많았다. 낯선 사람이 눈에 띄면 '꽥, 꽥' 크게 소리 지르고, 공격하기도 했다. 야단법석이어서 개 못지않은 파수꾼 역할도 톡톡히 한다. 알도 중간 달걀의 3배정도 되어, 무척 커보였던 기억이다.

성장하며 이솝우화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어렴풋한 기억이다. 가난한 농부가 운 좋게 황금알을 낳는 특별한 거위를 갖게 되었다. 거위는 아침마다 빛나는 황금 알을 하나씩 낳았다. 기뻐하며 고마워했다. 부자가 되어가니 점차 부부는 일을 하지 않게 된다. 농부의 아내는 거위가 더 많은 알을 낳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러저러한 방법을 강구한다. 마침내 배 갈라 한 번에 꺼내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남편이 만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죽은 거위 배 안에 황금 알이 아닌 똥만 가득 들어있다. 다시는 황금알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탐욕이 소중한 것을 잃게 한다는 경계(鏡戒)와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족한 줄 알아야 한다는 교훈이다.

서성으로 불리는 중국 육조시대 동진의 서예가 왕희지(王羲之, 307-365)는 길고 유연하며 변화무쌍한 거위 목에서 서체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전한다. 때문에 평소 거위를 무척 사랑하였으며, 그와 얽힌 일화가 많다. 그 중 하나, 어느 날 산음(山陰)의 도사(道士)가 기르는 거위에 반하여 팔 것을 청하였다. 도사는 팔 생각은 추호도 없고 선물로 드리겠다며, 대신 황정경(黃庭經)을 써 달라 부탁하였다. 이에 왕희지는 즉석에서 황정경을 써주고 흰 거위를 얻어 돌아왔다.

이 장면 또는 거위와 함께 노니는 고사인물도가 <관아도(觀鵝圖)>, <왕희지관아도>, <왕우군(王右軍)관아도>, <우군환아도(右軍煥鵝圖)>, <황정환아(黃庭煥鵝)> 등의 이름으로 그려진다. 李白의 <왕우군(王右軍)>이라는 시가 그려지기도 한다. 왕우군(王右軍)은 왕희지가 351년 우군장군이 되어 절강성 소흥부에서 4년간 관직생활 한 적이 있는데, 이 직책으로 인해 붙여진 별칭이다. 황정경은 도교 양생(養生)술을 전하는 대표적인 책으로 일명 '환아첩(煥鵝帖)'이라고도 한다.

우군환아도
<우군환아도(右軍換鵝圖)>, 장승업, 77.5×122.3cm, 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
그림은 장승업이 그린 <우군환아도>이다. 먹 갈고, 종이 잡고, 두루마리 준비하는 동자들 가운데서 왕희지가 황정경을 열심히 쓰고 있는 장면이다. 왼편 아래에는 거위가 묶여있다.

그림뿐 아니라 글의 소재로도 많이 쓰였던 듯하다. 정민이 쓴 <새 문화사전>에서 인용요약 한다. 주세붕(周世鵬, 1495~1554)은 <의아기(義鵝記>에서 거위의 의리를 이야기 한다. 누이가 흰 거위 한 쌍을 키웠다. 누님이 돌아가시자 거위가 안마당으로 들어와 방문 바라보며 슬피 울었다. 이후 자신의 집에서도 수컷 두 마리를 키웠다. 서로 다정하게 함께하며 뜰 주위에서 춤추고 위로한다. 한 마리가 죽자 남은 거위가 날개 당기며 슬피 울었다. 마을 아이가 죽은 거위를 옮겼는데, 사방 두루 찾아다니며 간절하게 운다. 주인을 그리워하는 것은 충성스럽고, 벗을 가엽게 여기는 것은 의로움 아닌가? 미물에겐 군자의 절조가 있는데 도리어 사람이 미물만도 못하도다.

성호 이익(星湖 李瀷, 1681 ~ 1763)은 인간이 주는 음식을 열심히 받아먹어 군살이 불었던 야생 거위가, 열흘 동안 먹지 않고 제 몸 가볍게 하여 날아가 버리자, 그 지혜로움에 감탄하고 경계로 삼았다. 욕심덩어리 내려놓고 훨훨 날아 험한 세상 건너자고.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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