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포스트모던이 요구하는 정치 지형도

  • 오피니언
  • 풍경소리

[풍경소리] 포스트모던이 요구하는 정치 지형도

송기한 대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승인 2024-06-03 10:35
  • 신문게재 2024-06-04 19면
  • 조훈희 기자조훈희 기자
송기한 대전대 교수
송기한 교수.
요즘을 포스트모던 시대라고 하면 좀 식상한 느낌이 든다. 이 사조가 유행하던 것이 1980년대 말 전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조의 기원을 더듬어 들어가게 되면, 195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포스트모던이란 모던 이후의 시대이다. 서구의 정신사는 프리모던(pre-modern), 모던(modern), 포스트모던(post-modern)으로 구분되고, 그 기점은 산업혁명 이전과 이후, 그리고 후기 자본주의이다. 경제적 구조가 그 근거가 되는 것인데, 포스트모던의 핵심은 다국적 기업의 등장이다. 그러니까 기업이 어느 특정 국가에 한정되지 않고, 전 세계적인 기업으로 포진된 것이 포스트모던의 뿌리인 것이다.

다국적 기업의 등장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포스트모던 사회는 구분이라든가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뉴욕주립대 영문학자인 피들러(L. Fiedler)는 "경계를 넘어서 간극을 좁히라"라는 구호로 이 정신을 설명한 바 있다. 삼성이 우리 고유의 기업이 아니라 여러 국가에 걸쳐 있는 기업, 곧 다국적 형태인 것, 그것이 포스트모던의 실체인 것이다.



그런데 포스트모던은 기업 문화에 한정되지 않고 문화를 비롯한 사회의 여러 면으로 확산되어 나타났다. 그리하여 그동안 중심에 있는 것들이 주변으로 물러나는가 하면, 주변적인 것이 중심으로 복귀하는 현상이 빚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고급문화와 저급 문화가 자리바꿈을 한다든지 혹은 그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제3의 다른 형태들의 문화가 등장하기도 했다.

경계를 넘는 현상들은 예술 분야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문학과 미술, 혹은 음악과 만남이라든가 미술과 음악과 만남 등등으로 구현되었다. 건축에서도 이런 현상들은 예외가 아니었다. 판에 박힌 건축이 아니라 정형을 거부하는 건축들, 새로운 형식의 건축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가령, 전통적인 무협 영화에 공상 과학이 결합함으로써, 이전과는 전연 다른 형태의 영화가 등장하기도 한 것이다. '동방불패'라든가 '백발마녀전' 등의 영화가 그러했다.



이렇듯 포스트모던의 시대는 지금까지 고정화된 여러 관념을 부정하고 새로운 형태의 문화나 질서를 만들어왔다. 이를 두고 카오스의 시대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고, 또 새로운 코스모스로 나아가기 위한 중간 단계쯤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이런 열린 개방성은 정치적 세계로도 편입되었다. 그리하여 기왕의 정치 체계들 역시 새롭게 재편되기에 이르렀다. 미국과 소련 중심의 전통적인 양극 체제가 무너지기도 하고 자본주의라든가 사회주의와 같은 거대 서사도 힘을 잃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경계를 넘고 간극을 좁히고자 한 포스트모던 정신의 에네르기가 이루어낸 결과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아니 한국의 정치 현실은 이런 시대적 조류와는 반대되는 길을 걷고 있다. 좌우 논리라든가 흑백 논리가 강요되면서 "경계를 세우고 간극을 넓히는" 현상이 곳곳에서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포스트모던의 '넘어서기'와는 전연 다른 '경계만들기'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자본주의는 사회주의를 도입하고 있고, 사회주의는 또 자본주의를 받아들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사회주의적인 요소를 도입하면서 복지 국가로 나아가는가 하면 자본주의적 요소를 도입하면서 생산성의 확대 등이 모색되고 있다. 그래서 복지의 모델로 스칸디나비아 3국의 자본주의적 사회주의 국가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사회주의적 자본주의 국가가 탄생하기도 했다. 과거의 사회주의, 자본주의는 이제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한국 사회만 양극 체제를 강요한다. "경계를 세우고 간격을 넓히라"고 말이다. 보수가 어쩌고 진보가 어쩐다고 계속 떠들어대고 걸핏하면 좌파 프레임을 씌운다. 편을 나누고, 국민이 이에 호응하면 정치적 성과로 받아들인다. 언제적 좌파이고 우파인가. 요즈음 새로운 화두로 등장하고 있는 AI도 궁극적으로 보면 인간과 기계의 결합이다. 이런 화학적 융합 현상, 경계 넘어서기가 시대의 대세인 것이다. 우리는 한국이라는 이름으로 그러한 사회로의 변증적 통합을 이뤄내야 한다. 그것이 포스트모던 정신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시대의 임무이다. /송기한 대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5극 3특 전략에 라이즈 초광역 개편하는데 지역은 '논의 無'…"선제 기획 필요"
  2. 오용준 한밭대 총장 “기업 상주형 첨단전략 거점 과기대 필요"
  3. "종량제봉투 사재기 자제해야"…대전 자치구 '수급 안정'
  4. 대전 학교 급식 다시 파업… 직종교섭 난항으로 26~27일 경고파업
  5. 대전충남경총 제45회 정기총회… 지역경제 발전 공로 7명 표창
  1. 대전 안전공업 참사 첫 발인 엄수… 희생자 장례 절차 본격화
  2. 대전.충남 행정통합 무산 책임 두고 김태흠 지사.김선태 의원 격돌
  3. [중도일보 독자권익위 3월 정례회] 행정통합·산단화재·지역의사제 등 논의
  4. [사설] 수도권 '쓰레기 대란', 비수도권도 남 일 아니다
  5. [사설] 정부, 중동發 경제 위기에 비상 대응

헤드라인 뉴스


안전공업 화재 참사 대표 유족에 공식 사과…막말 논란은 침묵

안전공업 화재 참사 대표 유족에 공식 사과…막말 논란은 침묵

74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대전 대덕구 안전공업 화재 참사에 대해 손주환 대표이사 등 경영진이 유족 측에 공식 사과했다. 26일 오후 5시 대전시청 1층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손 대표는 "희생자 그리고 유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라며 "사고 수습과 희생자 보상에 최선을 다하겠다. 유족분들께 일일이 사죄드리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이날 손 대표는 준비한 원고를 읽으며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다만 참사 후 화재 관련 언론 보도를 두고 일부 직원들을 향해 폭언한 것에 대해선 침묵했다. 사고 발생 전 사 측이 직원들..

[재산공개] 이장우 대전시장 29억… 김영환 충북도지사는 마이너스 3억
[재산공개] 이장우 대전시장 29억… 김영환 충북도지사는 마이너스 3억

충청권 광역단체장 4명 가운데 김태흠 충남지사를 제외한 이장우 대전시장, 최민호 세종시장, 김영환 충북지사 등 3명의 재산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충청권 시도의장 4명 중에는 이양섭 충북도의장이, 대전 5개 구청장 중에는 서철모 서구청장이 가장 재산이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는 26일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공직자 재산현황을 관보를 통해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충청권 4개 시·도지사 가운데서는 이장우 대전시장이 29억 6000만 원으로 가장 많은 재산을 신고했다. 전년보다 9300만 원 늘어난 규모다...

한화 이글스, 28일 대전서 2026 KBO리그 첫 승 노린다
한화 이글스, 28일 대전서 2026 KBO리그 첫 승 노린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가 28일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에서 키움 히어로즈를 상대로 2026 KBO리그 개막전을 치른다. 한화는 개막전 선발투수로 외국인 용병 투수 윌켈 에르난데스를 낙점했다. 베네수엘라 출신 에르난데스는 우완 스리쿼터 유형으로 최고 156㎞, 평균 150㎞ 이상의 구속을 자랑한다. 특히 지난 시범경기에서 두 차례 등판해 1패, 평균자책점 4.50의 기록했다. 다소 아쉬운 성적이지만, 이닝당 출루 허용(WHIP·0.90)과 피안타율(0.167) 등의 세부 지표는 준수하는 평가를 받는다. 키움은 지난 시즌 8승 4패, 평균..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화재 참사 희생자에게 사과하는 안전공업 대표이사와 상무 화재 참사 희생자에게 사과하는 안전공업 대표이사와 상무

  • ‘골든타임을 사수하라’ ‘골든타임을 사수하라’

  • 서산 석유비축기지 시찰하는 이재명 대통령 서산 석유비축기지 시찰하는 이재명 대통령

  • 천안함 46용사 묘역 찾은 이명박 전 대통령 천안함 46용사 묘역 찾은 이명박 전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