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평범함의 미학

  • 오피니언
  • 춘하추동

[춘하추동]평범함의 미학

백향기 (대전창조미술협회 회장)

  • 승인 2025-02-11 10:23
  • 신문게재 2025-02-12 18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백향기
백향기 (대전창조미술협회 회장)
설 때부터 시작한 감기 기운이 바로 떨어지지 않고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컨디션이 좋지 않다. 주말에 하루 푹 쉬면 좀 나을까 싶어 주말에 종일 빈둥빈둥 하다가 낮잠도 자다가 했다. 몸이 아플 때에는 밖에 나가서 활동하고 움직이던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일들이었는지 새삼 깨닫곤 한다. 그것을 평소에 알고 지낸다면 하루하루 매시간들을 소중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일상을 평범하게 지낸다는 것이 그 시간을 가치 없게 사용한다거나 의미가 없는 시간으로 채운다는 것은 물론 아닐 것이다. 오히려 매사에 담담한 태도를 유지한다는 것, 어느 한 곳에 과몰입하거나 과장되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주변에도 일희일비하지 않고 늘 담담한 모습을 지닌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으로부터 품격이 스미어 나오는 것을 느낄 때가 있지 않은가? 자신을 내세우고 드러내는 것보다 오히려 더 강한 은은한 풍모를 느끼게 하는 것, 그것이 담담함이 지니는 힘이라 할 것이다.

사람의 품격과 마찬가지로 그림에서도 마찬가지로 담담함의 미학이 매우 중요하다. 그림을 그리면서 특이하게 드러내려고 하거나 특이한 색상이나 구도를 사용하면 설득력이 늘어날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가 않다. 예술의 표현에서는 이를 평범보다는 평담(平淡)이라는 용어를 써서 미학적 가치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평담이란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평범하여 싱겁다 정도가 될 것이다. 이것은 담백하여 아무런 맛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역으로 화려한 수식을 하지 않는 작품에서 스스로 우러나오는 미적 흥취를 나타내는 말이다. 물론 글이나 그림을 담담하고 소박하게 그리면서 그럼으로써 안으로부터 배어 나오는 품격있는 미적 흥취를 이루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평소 담담한 자기 수련과 치장하고 꾸미는 겉치레에 눈길을 주지 않는 일관된 자세가 누적되어야 비로소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평범함의 품격이 만들어질 것이다. 물론 평소에 변함없이 이런 태도를 일관되게 견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남들 앞에서 자신을 내세우고 싶어 하고, 자기를 알아주기를 원하며 그런 마음에서 자꾸 자신을 드러내려하고 꾸미게 된다.

그러나 자신을 내세우거나 과하게 꾸미는 일이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거나 더 멋있게보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선현들은 잘 깨닫고 있었던 것 같다. 노자 도덕경에는 도(道)는 입밖에 내어 말해도 싱겁고 담백하여 아무런 맛이 없다.(道之出口 淡乎 其無味)는 구절이 있다. 도의 경지에 이르면 입 밖으로 내어 말하는 것이 싱겁고 맛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말 아무런 흥취가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화려한 수식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품격이나 미적 흥취가 가득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평담과 유사한 말로 담박미(淡泊美)라는 말도 쓰인다. 담박이란 이미 고려 때부터 인물이나 작품을 평할 때 중요한 덕목으로 이 용어를 사용하였다고 하는데 '생각함에 사특함이 없다'는 의미라고 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특별하게 꾸미거나 특이한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가끔 그림 심사를 하다보면 그리지 않아도 될 대상을 지나치게 설명적으로 그려 넣거나 과도한 색채를 사용하거나 구도를 지나치게 강하게 구성하거나 하는 그림들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이럴 때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평가는 '이것 좀 과하군' 하는 말이다.

그림 그릴 때 물론 이런 유혹을 자주 느끼는 것은 아마도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공감하는 바 일 듯하다. 무엇인가 조금 더 그려 넣어야 할 듯하고, 무엇인가 강렬하게 드러내야 느낌이 전달될 것 같다. 그리고 다른 작품들보다 더 눈에 띌 것 같다. 이런 유혹을 지속적으로 받게 된다. 그러나 그런 유혹을 물리치고 고요한 자기중심을 잡는 일, 절제하며 필요 이상의 붓을 대지 않는 일, 이것이 아마도 좋은 그림을 그려내는 묵묵한 길일 듯싶다. 감기 끝에 하루 쉬면서 일상의 소중함과 담담함을 생각하게 된 것은 하루 머물며 고요하게 있게 만든 감기의 덕분이기도 하다. 제갈량이 어린 아들에게 주었다는 계자서(戒子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담박하지 않으면 뜻을 밝게 가꿀 수 없고, 고요하지 못하면 큰 뜻을 이룰 수 없다."(非淡泊無以明志,非寧靜無以致沅)."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천안고속버스터미널, 천안-속초 직통 버스노선 신규 개통
  2. 대전경찰청, 가수 김연자·김소연 홍보대사 위촉
  3. 대전 식약단체, 역 앞에서 불법마약 퇴치 캠페인
  4. 대전에 생긴 ‘오상욱 거리’
  5.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제 71주년 창립 기념식에서 대전시지부 최우수지부상 수상
  1. 野대표 "해수부 이전 졸속추진…강력대응" 대여투쟁 예고
  2. 지천댐 주민의견 놓고 공방 치열… 전수조사 서둘러야
  3. 6·25 대전전투 오류의 기록 전승 악순환… 교전 장소 제각각 등
  4. 가수 김연자, 김소연 대전경찰청 홍보대사 위촉
  5. 6·25전쟁 기념식 대전에서 처음 개최…영웅들의 헌신에 감사 표현

헤드라인 뉴스


이장우 시장-국회의원들 현안 강조하면서도 미묘한 신경전

이장우 시장-국회의원들 현안 강조하면서도 미묘한 신경전

2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대전시와 지역 국회의원 간담회에선 현안사업 국비 확보를 위해 함께 노력하자면서도 국민의힘 소속인 이장우 대전시장과 더불어민주당인 국회의원들 간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국회의원들은 이 시장이 추진한 사업에 대한 우려를 전하며 재검토 등을 주문했으며, 이 시장은 민주당이 침묵하고 있는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이장우 시장은 모두 발언에서 “새 정부 국정기획위원회가 100대 국정과제를 준비하고 있다”며 “대전시는 정부 정책 기조와 긴밀한 현안 사업 10건을 발굴했다. 의원들, 특히..

김상환 헌재소장, 오영준 헌법재판관, 임광현 국세청장 후보 모두 ‘충청’
김상환 헌재소장, 오영준 헌법재판관, 임광현 국세청장 후보 모두 ‘충청’

김상환(66년생) 헌법재판소장 겸 헌법재판관 후보, 오영준(69년생) 헌법재판관 후보, 임광현(69년생) 국세청장 후보 모두 충청 출신이 지명됐다.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26일 오후 브리핑을 통해 3명에 대한 인선 결과를 발표했다. 우선 대전에서 태어나 보문고(29회)와 서울대를 졸업한 김상환 후보는 사법시험(사법연수원 20기) 합격 후 1994년 부산지법 판사로 임관해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과 연구부장, 제주지법 수석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서울고법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제1 민사 수석부장, 대법관, 법원행정처장 등 지냈다...

대한제강, 당진에 5400억 투입 국내최대 스마트팜단지 만든다
대한제강, 당진에 5400억 투입 국내최대 스마트팜단지 만든다

충남도가 대한제강, 당진시와 손잡고 대한민국 최대 스마트팜단지 조성에 나선다. 이 스마트팜단지는 특히 인근 제철소 폐열을 냉·난방 에너지로 활용, 입주 농업인들이 에너지 비용을 크게 절감하며 탄소중립까지 실현한다. 김태흠 지사는 26일 도청 상황실에서 오치훈 대한제강 회장, 오성환 당진시장과 '에코-그리드(Eco-Grid) 당진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투자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투자양해각서에 따르면, 대한제강은 2028년까지 당진 석문간척지(석문명 통정리 일원) 내에 119만㎡ 규모 스마트팜단지(이하 석문 스마트팜단지)를 조성한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에 생긴 ‘오상욱 거리’ 대전에 생긴 ‘오상욱 거리’

  • 가수 김연자, 김소연 대전경찰청 홍보대사 위촉 가수 김연자, 김소연 대전경찰청 홍보대사 위촉

  • 집중호우 대비 수난구조…‘훈련도 실전같이’ 집중호우 대비 수난구조…‘훈련도 실전같이’

  • 성숙한 소비문화 정착을 위한 대전소비자의 날 성숙한 소비문화 정착을 위한 대전소비자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