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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병호 배재대 교수 |
히틀러는 무력이나 비상조치를 동원한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았다. 그는 법률과 표결이라는 형식을 통해 체제를 장악했다. 1933년 독일 의회가 통과시킨 수권법(Erm?chtigungsgesetz)은 내각이 의회 승인 없이 법률을 제정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이어 제정된 '직업공무원제도의 복원에 관한 법'은 정치적으로 불온하다고 분류된 판사와 검사를 공무원직에서 배제했고, 판사들과 법률가 집단은 빠르게 정권 성향에 맞춰 필터링되었다. 1934년에 설치된 인민법원 (Volksgerichtshof)은 재판의 독립을 완전히 제거한 정치법원으로 전락해 수천 건의 사형과 수용소행 판결을 남겼다. 모든 과정은 법률 조항과 의회 표결이라는 외형을 지녔으나 실제는 사법부의 기능을 정권의 정치적 필요에 봉사하도록 재편하는 과정이었다.
홍콩의 변화는 더 은밀하고 치밀하게 진행되었다. 반환 초기 중국은 일국양제와 사법부의 독립을 국제 사회에 약속했지만, 2019년 송환법을 둘러싼 대규모 시위 이후 그 약속은 빠르게 후퇴했다.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은 전환점이 되었다. 법률 전문가들에 따르면 국가보안법은 행정장관이 국가안보 사건 담당 판사를 직접 지정할 수 있도록 하여 독립적인 사건 배당을 무력화시켰다.
베네수엘라는 사법부 장악이 제도 개정이라는 합법적 외피 아래에서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2004년 차베스 정부는 지금 한국의 민주당이 추진하는 것 같이 대법관 수를 20명에서 32명으로 증원하는 법을 통과시키며 동시에 대법관 해임 절차를 완화했다. 국제 인권 단체들은 이 개정이 정권에 유리한 판사들을 대거 임명하고 기존 판사들을 쉽게 내보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고 평가한다.
이 세 나라의 사례를 관통하는 공통된 흐름은 분명하다. 먼저 위기를 명분으로 한 법 개정이 추진되고, 이어 사법부를 인사와 제도를 통해 서서히 길들이며, 법원 주변의 판사와 변호사들마저 스스로 위축되도록 만드는 방향으로 변질된다.
이제 눈을 한국으로 돌리면 우려스러운 징후들이 겹겹이 나타나고 있다.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에서 검찰이 항소 시한 직전 항소를 포기한 결정은 그 배경과 절차가 여전히 논란 속에 있다. 이 결정은 검찰권의 책임성과 정치적 중립성 논란과 맞물리며 국민의 의혹만 키웠다.
법원행정처 폐지 논의 역시 사법제도의 방향을 둘러싼 중대한 갈림길이다. 전문가들은 사법행정 권한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정치권이 사법부 인사와 징계 구조에 개입할 여지를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공수처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에 대해 택시 애플리케이션 기록, 통화내역, 카드 사용 정보를 확보하려고 압수수색을 진행한 사건도 논란을 낳고 있다. 지 판사 개인의 비위 의혹이 사실이라면 조사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직 법관을 수사기관이 직접 압수수색 한다는 것, 특히 그것이 진행 중인 내란 및 내란음모 혐의 재판들과 시기적으로 맞물린다는 점은 사법부의 독립성과 권력 균형에 훨씬 더 큰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사건들은 전체적으로 보면 사법기관이 외부 권력과 정치적 논쟁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독일, 홍콩, 베네수엘라에서 보였던 패턴처럼, 법의 독립은 제도만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정상적인 정치권의 존재, 시민의 감시가 모두 결합할 때 비로소 법치는 유지된다.
결국 지금 한국에서 법은 누구를 보호하고 있는가. 시민인가? 아니면 권력 주변 패거리인가? 법치는 단번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타협과 관성 속에서 조용히 붕괴한다. 한국의 사법 현실을 둘러싼 최근 흐름은 법치가 흔들릴 때 나타나는 전형적 신호들과 겹쳐 보인다. /강병호 배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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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