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웰빙과 웰다잉의 조각보 잇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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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웰빙과 웰다잉의 조각보 잇기

홍인숙 대전웰다잉연구소장

  • 승인 2025-12-29 10:53
  • 수정 2025-12-30 09:00
  • 조훈희 기자조훈희 기자
홍인숙 대전웰다잉연구소장1
홍인숙 대전웰다잉연구소장
내게는 새로운 지식을 얻는 일이 무엇과 비교하기 힘든 행복이다. 그 기쁨을 위해 관련 서적을 자주 보게 되고, 필요한 책은 수시로 사들이게 된다. 어느새 집안 곳곳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책으로 빼곡해진 지 오래다. 각종 자료철이며 공연 팜플렛이며, 잘 버리지 못하는 나의 습성까지 켜켜이 쌓인 서가는 고서점을 방불케 할 지경이다. 맡은 일 때문에라도 지속적으로 공부하는 웰다잉 관련 책이 자꾸 늘어나니 마음먹고 책장을 한번 정리하기로 한다.

해가 넘어가도록 한 번도 손이 가지 않은 책들이 수두룩한데 버리려 하면 하나같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책까지 있어서 더 이상 해결할 참이 없다. 정리하다 보니 오래된 수첩이나 사진 등등이 틈새에 발견되기도 한다. 순식간에 그때, 그 시간으로 나를 소환해 내는 오래된 기억들이다. 불현듯 정리해야 하는 것이 마치 시간의 조각인 듯 까마득한 옛 생각으로 나를 떠나보낸다.

남길 것과 버려도 될 것을 분류해 본다. 정리를 하다 보면 가장 오래 붙잡고 있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관계라는 끈이 아닌가 싶다. 끝내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들은 대개 사람과 얽힌 기억들이다. 어떤 관계는 이미 끝났고 어떤 사람은 이미 오래전에 멀어졌지만, 그 흔적은 여전히 내 삶의 한쪽 구석에 남아있었다. 정리는 그 흔적들을 하나씩 꺼내어 바라보는 일이다.

아팠던 기억,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순간, 끝내 멀어진 관계들, 계속 마음 안에 들어앉아 있던 그림자들이 일렁인다. 내게 기억되는 사람들, 그들에게 기억될 나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본다. 누구의 마음에서나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잣대 하나쯤 있는 법이니 타인의 시선에 연연해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도, 늘 보이는 나에 대해 의식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이다. 무시로 나는 과연 잘살고 있나 생각하는 나날과 도리없이 실수하는 나 사이에서 후회하고 다짐하는 날의 반복이다. 줄기차게 이제부터 시작이야를 외치며 나 자신을 위로한다.

소소한 주변 정리 역시 삶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라 믿는다. 그런 속에서 잘 살아내기 위해, 그렇게 잘 누리다 잘 떠나기 위한 웰빙과 웰다잉이라는 삶의 진실을 깨달아 가는 작은 기쁨을 누리기도 한다. 문득 얼마 전에 지역의 노인대학 학장으로 활동하시는 어르신께 들었던 사연이 생각난다. 사람이 갈 때는 아무것도 손에 쥐고 갈 수 없는데 안타깝게도 저마다 삶에 연연하며 살아간다면서 어떤 노부부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큰 평수 아파트에서 부러울 것 없이 사시던 두 분이 돌아가셨는데 그 마무리를 보면서 마음이 참 쓸쓸했다는 것이다. 장례가 끝나고 집안을 정리하던 모양인데 외지에 있는 자식들은 보이지 않고 폐기물 수거 차가 와서 숱한 가재도구며 집안 곳곳 살림들을 한 번에 끄집어내서 싣고 가던 것이란다. 평소에 잘 정리하면서 비우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첨언 하신다.

아끼면서 채웠을 삶의 모든 기억들이 한순간에 수거되는 소멸의 시간이라니, 허무하기 이를 데 없다. 문득 내가 가지고 있는 주변들은 잘 갈무리되고 있나 순간적으로 뒷골이 뜨끈했다. 하나하나 소중하게 여기며 채워온 내 안의 공간들, 기억들, 그런 것들이 나의 존재와 함께 사라질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자 잘 정리해야 한다는 엄숙한 고민이 들어선다. 비워내는 일과 채우는 일의 균형을 잘 맞추면서, 오늘 하루가 내게 주어진 마지막 날인 것처럼 여기며 잘 살아야 한다는 웰다잉 교육의 주제를 환기해본다.

누구나 세상에 한 번 왔다가 언젠가는 떠나는 것이 삶의 본연이다. 생각해보면 우연한 기회에 공부하게 된 웰다잉 교육이 십여 년의 세월을 지나는 동안, 보이게 보이지 않게 내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죽음 준비 교육을 통해 배웠던 오늘을 값지게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은 삶에 대한 소중함을 더욱 성찰하게 만들어 주었다. 언제가 마주하게 될 죽음이라는 명제 앞에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지게 했다.

한 사람이 이 세상에 다녀가는 긴 여정 속에서 기록되는 모든 흔적이 나라는 존재가 소멸된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닫는 순간 오늘의 삶을 허투루 살 수 없게 된다. 물론 우리는 완전할 수 없는 인간이기에 늘 부딪히고 갈등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실수를 통해 배워가는 삶 속에서 어제와 다른 오늘을 채워가는 일에 결단이라는 용기를 내게 하는 웰빙과 웰다잉의 조각보 잇기는 삶의 행복한 줄다리기로 나를 불러 세운다. /홍인숙 대전웰다잉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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