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역사를 주목한 도시

  • 오피니언
  • 세상보기

[세상보기]역사를 주목한 도시

김병윤 대전대 명예교수(건축가)

  • 승인 2026-05-03 14:03
  • 이상문 기자이상문 기자
2026031901001523200064601
김병윤 대전대 명예교수(건축가)
반복되는 오래된 질문의 하나로, 신축이 어려운 시기에 건축은 어떻게 되어야 할까, 급격하게 변동하는 건축비의 증가는 짐작을 넘어설 만큼 폭등했고, 경영난으로 공사가 중단되는 일도 잦아지고 있다. 비단 우리만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고층 아파트를 짓던 명문 건설사가 도산 위기에 이른 사례가 등장한다. 계획 단계와 공사 단계의 계산이 순식간에 달라지면서 모두에게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 찾아왔고, 예기치 않은 멈춤의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이러한 멈춤의 시간은 많은 생각을 부르며, 그 안에서 주어지는 또 다른 형태의 지혜에 주목하게 한다. 이 멈춤은 단순한 위기가 아니라 과잉의 결과다. 건축은 쉴 새 없이 많이 지었고, 도시는 너무 빠르게 확장해 왔다.

이에 대한 대안과 답변은 다양하나, 결국 인적 자원에 비해 새로 지을 건축의 수는 줄어들었고, 과단한 계산이 가져온 과잉생산이 여러 문제를 낳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오히려 과잉으로부터 발생한 도시의 긴장은 용도 폐기라는 긴 공백의 시간을 불러오고, 때로는 헌 옷처럼 재활용되거나 버려지는 상황을 만든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버려진 벽돌을 모아 세운 건축이 세계적인 건축상을 수상한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수상의 이유가 단지 재활용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그 가운데서도 재활의 의미는 분명히 두드러진다. 더구나 그 상이 건축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이 주목했기 때문이다.

건축가 왕슈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진 인물이지만, 특히 주목할 만한 작업은 질박함과 묵직한 단순함으로 드러난다. 그의 건축은 버려진 변방의 낡은 성채와도 같은 우직함을 지니면서, 현재와 과거의 시간이 교차하는 기억의 장소로 읽힌다. 겉으로는 무겁고 오래된 성처럼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지역적 재료와 감각이 편안하게 드러난다. 그의 지역 역사 박물관은 중국 저장성 해안 도시 닝보에 위치한다. 이곳은 해상 교류를 통해 역사적 문화적 축적이 이루어진 실크로드의 길목, 그 도시의 맥락이 건축 속에 깊이 스며 있다.

이 박물관에서 중국 건축의 유전자를 읽어내는 일은 어렵지 않지만, 동시에 그것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해석과 유추를 요구한다. 산수화를 닮았다는 평가나 산의 일부가 다가오는 듯한 인상은 그의 건축이 기대고 있는 철학을 잘 드러낸다. 왕슈는 자신이 보고 자란 중국의 고대 문화와 역사 위에 디자인의 기반을 둔다. '아마추어'란 몸 낮춘 사무실 이름도 예사롭지 않고 유행보다는 토속적 근원성을 지향하는 태도가 깊게 다가온다.

급변하는 자본과 매끄러운 현대 건축의 흐름 속에서, 그의 작업은 역사와 자연, 인간 경험에 대한 깊은 존중을 보여준다. 지역적 요소를 건축 형태 속에 통합하고, 전통 기와나 직물과 같은 개념을 확장하여 하나의 랜드스케이프 건축으로 제시한다. 이는 중국 미술학원 샹산 캠퍼스에서도 잘 드러나며, 지역성과 환경을 함께 고려한 건축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닝보 역사박물관과 샹산 캠퍼스는 이러한 태도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술과 변화로 표현되는 현대 건축의 매끄러운 흐름과 달리, 그의 건축은 지형에 순응하며 경사지붕과 복잡하게 얽힌 계단을 통해 이동의 속도를 늦춘다. 엘리베이터 대신 이어지는 긴 동선은 신체적 경험을 강조하며, 건축을 단순한 기능이 아닌 몸의 운동구조로 바꾼다. 쉽지 않은 선택이나, 동시에 시대의 흐름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읽힌다.

지혜의 도시를 향한 흐름 속에서 랜드스케이프 건축이 자리 잡은 지는 이미 오래다. 그러나 그 위에 더해져야 할 것은 역사에 대한 감각이다. '역사를 주목한 도시'를 향한 태도는 선택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조건이며, 지금의 멈춤 속에서 더욱 절실하게 드러난다. 왜냐면 역사를 주목하는 도시는 과거를 보존하는 도시만으로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시간을 재료로 사용하는 도시에 더욱 주목한다. 그리고 지금, 멈춰 선 이 순간에 그 감각은 더욱 분명해진다. 건축은 더 이상 새로 짓는 일이 아니라 우리의 기억을 남기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김병윤 대전대 명예교수(건축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속보>대전 갈마동 타이어업체서 화재
  2. <속보>대전 타이어판매점 1차 진화 마치고 주변확산 차단 중
  3. '대전 예수' 와이스, 한화 돌아올까… 독수리 군단 마운드 재건 변수로
  4. 대전 갈마동 타이어 판매점 화재 진화완료…2~3층 창고에서 발생 추정돼
  5. 천안 폐기물재활용시설 화재...3억 3460여만원 피해
  1. 두 어머니를 향한 16년 간의 효심
  2. 대전 타이어전문점 화재
  3. 골프존 GDR아카데미 'GDR퍼포먼스' 출시
  4. '장애인과 함께 걸어온 10년'… 31일 세종서 자립생활 기념대회
  5. 한기대, 2026 STEP 모니터링단 해단식

헤드라인 뉴스


머크, 대전 추가투자 가능성 시사… 지역경제 동반성장은 과제로

머크, 대전 추가투자 가능성 시사… 지역경제 동반성장은 과제로

머크(Merck)가 대전 생산센터 준공을 계기로 추가 투자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대전 바이오산업의 확장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KAIST와 공동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다수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향후 연구시설 확충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대전이 머크의 아시아·태평양 생산거점을 넘어 연구개발 중심지로 성장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9일 열린 머크 대전 생산센터 준공식에서 머크 독일 본사와 독일 정부 관계자들은 대전시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대규모 생산시설 건립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됐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외국인투자지역 입주에 따..

대전 갈마동 타이어 판매점 화재 진화완료…2~3층 창고에서 발생 추정돼
대전 갈마동 타이어 판매점 화재 진화완료…2~3층 창고에서 발생 추정돼

30일 오전 10시 2분께 대전 서구 갈마동의 한 타이어 판매점에서 발생한 화재가 4시간 31분 만인 오후 2시 33분께 완전히 진화됐다. 짙은 연기와 거센 불길이 치솟으면서 화재발생 직후부터 150건 이상의 신고가 소방당국에 접수됐으며, 대전소방본부는 대전시와 산림청 헬기 2대와 소방장비 98대, 인력 238명을 투입해 화재 진압과 방수 작업을 벌였다.소방당국은 최초 신고 18분 만인 오전 10시 20분께 관할 소방서의 모든 소방력을 동원하는 대응 1단계를 발령했으며, 현장 주변에서는 교통 통제와 주민 대피도 진행됐다.타이어판매점..

`대전 예수` 와이스, 한화 돌아올까… 독수리 군단 마운드 재건 변수로
'대전 예수' 와이스, 한화 돌아올까… 독수리 군단 마운드 재건 변수로

한화이글스의 가을을 뜨겁게 달궜던 '대전 예수' 라이언 와이스가 다시 독수리 군단의 마운드에 오를 수 있을까. 미국 메이저리그(MLB) 재도전에 나섰던 와이스가 자유계약선수(FA) 신분으로 풀리면서 한화 복귀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30일 미국 현지 보도에 따르면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와이스에게 걸려 있던 2027시즌 500만 달러 규모의 구단 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바이아웃 50만 달러를 지급하면서 와이스는 새로운 소속팀을 찾을 수 있게 됐다. 와이스에게 올해는 아쉬움이 짙게 남는 시즌이었다. 지난해 한화에서의..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 타이어전문점 화재 대전 타이어전문점 화재

  • ‘더 화려하고 아름답게’ ‘더 화려하고 아름답게’

  • ‘포기마다 정성 담아’…맛있는 이웃사랑 ‘포기마다 정성 담아’…맛있는 이웃사랑

  • 미래 진로직업 체험 미래 진로직업 체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