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시평] 월드컵 경기장과 AI 의료 시대, 대학의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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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시평] 월드컵 경기장과 AI 의료 시대, 대학의 사명

김용하 건양대 총장

  • 승인 2026-06-16 17:54
  • 신문게재 2026-06-17 18면
  • 정바름 기자정바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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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하 총장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는 월드컵 경기장을 바라보면, 오늘 우리가 선 문명사적 전환의 좌표가 그대로 겹쳐 보인다.

이번 월드컵은 그 어느 때보다 기술의 경연장이다. 오프사이드를 1초 만에 가려내는 반자동 판독 시스템(SAOT), 공 안에 박힌 센서가 읽어내는 선수의 미세한 움직임, AI 전술 분석 플랫폼까지 동원됐다. 오심은 줄었고 데이터는 빈틈이 없어졌다.

그러나 묻고 싶다. 그래서 축구가 더 재미있어졌는가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경기장에 열광하는 이유는 기술이 아니다. 각본 없이 터지는 선수의 한 방, 부상을 딛고 일어선 투혼, 끝내 눈물짓게 하는 드라마다.

기술이 정교해질수록 인간의 플레이는 오히려 더 빛난다. 완벽함이 감동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이 감동을 만든다.

같은 장면이 스포츠를 넘어 의료 현장에서 재현되고 있다.

의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암을 짚어내는 영상 진단 AI, 수개월 걸리던 신약 후보 물질을 며칠 만에 추려내는 플랫폼은 더 이상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AI 의료 시대'는 이미 도착했고, 의료의 패러다임 자체를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문제는 대학이다.

완벽한 심판과 데이터가 있어도 결국 그라운드를 뛰는 것은 인간이듯, 지식의 양과 습득 속도로는 결코 AI를 이길 수 없는 시대에 대학은 과연 어떤 인재를 길러야 하는가.

방대한 지식을 외운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을 찍어내던 과거의 의학교육은 이미 수명을 다했다. 이제 대학은 지식의 소유가 아니라 활용과 가치 창출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 세 가지 역량이 그 답이다.

첫째, 첨단 기술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또 통제하는 '융합적 디지털 역량(Digital Literacy)'이다.

감독이 AI 전술 데이터를 근거로 승부수를 던지듯, 미래의 의료인은 AI의 진단을 비판적으로 검증하고 가치 있는 정보를 가려낼 '디지털 안목'을 갖춰야 한다.

그러려면 대학부터 전공의 칸막이를 허물어야 한다. 의학·간호학·보건학의 데이터 사이언스와 바이오 인공지능을 결합한 융합 교육과정을 구호가 아니라 실제 학과의 형태로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AI가 끝내 흉내 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 '공감과 소통의 휴머니즘(Humanism)'이다.

완벽한 패스 지도보다 동료 간의 신뢰가 기적을 만들듯, 환자의 깊은 불안을 다독이고 삶을 위로하는 것은 결국 의료진의 따뜻한 눈빛과 말 한마디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환자의 마음을 읽는 정서적 교감과 생명에 대한 경외심은 대학이 끝까지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다.

셋째, 경기 흐름에 맞춰 전술을 바꾸듯 끊임없이 자신을 갱신하는 '평생 학습 역량'이다.

기술의 진화 속도는 어떤 교육과정에도 다 담기지 않을 만큼 빠르다. 그렇다면 대학은 완성된 지식을 주입하는 곳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 환경에 적응하고 스스로 문제를 정의해 답을 찾아가는 '학습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이 되어야 한다.

AI 의료 시대의 도래는 대학에 위기가 아니라 교육의 본질을 되찾을 기회다. 경기장에 첨단 센서가 깔려도 그라운드를 지배하는 것은 결국 뜨거운 심장을 가진 선수이듯, 기술이 발전할수록 대학은 인성적 자질과 미래적 전문성을 동시에 갖춘 주체적인 인재를 길러야 한다.

AI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결국 이를 움직이고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이다. 차가운 기술의 시대 속에서 인간 고유의 가치를 더 환하게 빛낼 인재를 키워내는 일, 그것이 바로 오늘날 대학이 마주한 가장 준엄한 사명이자 숙제다.

/김용하 건양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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