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잠시 멈춘 교실, 충만한 유아의 놀이 동반자가 되기까지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 잠시 멈춘 교실, 충만한 유아의 놀이 동반자가 되기까지

송진선 연세유치원 교사

  • 승인 2026-06-19 00:00
  • 이은지 기자이은지 기자
연세유치원 (송진선)
송진선 연세유치원 교사
공립유치원 4년 차 교사가 되었을 때, 나는 잠시 현장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유아 중심·놀이 중심을 표방하는 개정 누리과정은 유아의 놀이를 통한 배움을 강조하고 교사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분명 매력적인 교육과정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해를 거듭할수록 놀이를 향한 나의 혼란스러움은 커져만 갔다. 교실에서 마주하는 아이들의 놀이는 놀이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보다 끊임없는 궁금증과 질문을 던져주었다. '아이들의 놀이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과연 내가 진정한 놀이 지원자의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라는 솔직한 판단과 고민 끝에 나는 한국교원대학교 석사과정 파견에 지원했고, 작년부터 지금까지 배움의 여정을 이어오고 있다.

하루하루 숨 가쁘게 보냈던 현장에서 벗어나 대학원에서 유아교육에 관한 깊이 있는 수업을 듣고 자유로운 사유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과 함께한 4년의 시간을 되돌아보니, 내가 유아와 놀이, 배움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가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변화무쌍하고 예측 불가능한 아이들의 놀이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기보다 '미성숙한 유아', '성숙한 교사'의 위치에서 아이들을 끊임없이 내가 정해둔 배움의 길로 이끌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동안 나에게 있어 아이들의 배움은 결국 정해진 도달점, 즉 성인을 닮아가는 것을 의미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놀이에는 한 가지 배움만 존재하는가? 놀이는 그저 초등학교에 가기 전 혹은 성인이 되기 위한 발달의 수단에 불과한 것인가? 대학원에서 마주한 새로운 철학적 사유들은 오랜 시간 유아교육을 지배해왔던 발달주의 패러다임에 커다란 흠을 만들어주었다. 포스트 휴머니즘과 신유물론, 차이생성의 철학을 접하며 나는 인간 중심적이고 선형적인 발달의 틀 너머의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은 미래의 성숙한 성인이 되기 위해 선형적으로 발달단계를 따라야 하는 미성숙한 존재가 아니었다. 또한 교사의 가르침 속에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었다.

삶을 살아가듯 유아는 놀이하며 그 과정에서 우연히 만나는 물질들과 얽혀 끊임없이 무언가가 '되어가는(becoming)' 존재였으며, 성인의 잣대로 편집되고 삭제될 수 없는 무수하고 역동적인 배움들이 놀이 속에 숨 쉬고 있었다. 연령에 따라 달라진다고 믿었던 놀이의 모습은, 사실 놀이의 본질이 아니라 성인들이 자신의 편리와 기준에 맞춰 놀이를 명명하고 구획하여 편집한 결과물에 불과했던 것이다. 오로지 교육적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놀이만이 살아남게 되었다.

유아라는 존재와 놀이를 새롭게 바라보니 과거 유치원 현장에서 아이들이 보여주었던 반짝임의 순간들이 머릿속에 불현듯, 그리고 강렬하게 떠올랐다. 당시에는 교육적으로 가치가 없거나 그저 산만하다고 치부하며 지나쳤던 아이들의 사소한 몸짓, 반복적인 형태의 놀이, 갑자기 전환되는 놀이 사건들이 모두 그 자체로 충만한 배움의 순간들이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결국 놀이를 이해하는 첫 번째 발걸음은 유아의 놀이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 깨달음은 나에게 커다란 해방감과 동시에 묵직한 책임감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현재의 나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장으로 돌아갔을 때 아이들에게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하는가를 계속해서 사유하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충만함을 온전히 믿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정제된 언어로 자신의 생각을 다 표현하지 못할지라도, 온몸으로 세계와 만나며 변화해가고 있는 아이들의 경험을 읽어주는 교사가 되고 싶다. 말이라는 성인의 잣대에 갇히지 않을 때 비로소 아이들의 진짜 세계를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아이들의 놀이를 '지도'하는 교사가 아니라 아이들의 충만한 놀이에 '함께 존재하고 또 함께 항해할 수 있는' 동반자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송진선 연세유치원 교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KTX 세종선·CTX 연장' 충청권 합의로 새 국면
  2. 서산 지곡면에 '문화예술 새 거점' 들어선다, 내포-서산 창작예술촌 건립 속도
  3. 진주 M2 페스티벌 7일 개막
  4. 천안시, 원성커뮤니티센터 건축설계 최종보고회 개최
  5. 장기수 천안시장, 복지현장서 폭염 대비 안전점검
  1. 천안시, 민선 9기 출범 맞춰 안전·보건경영방침 개정
  2. 與 당권주자, 지역 현안 실종된 순회경선에 비판 고조
  3. 남서울대, 롯데마트 성정점서 탄소중립 조형물 전시회 성료
  4. 천안시청공무원노동조합, 이색 청렴 캠페인 전개
  5. 천안시, 'K-컬처박람회' 앞두고 선제적 방역소독 총력

헤드라인 뉴스


폭염보다 더 힘든 희망고문…대전 쪽방촌 개발사업 또 표류하나

폭염보다 더 힘든 희망고문…대전 쪽방촌 개발사업 또 표류하나

연일 체감온도 33도 이상 불볕더위에 대전에서 폭염특보가 발효 중인 가운데, 정동 쪽방 주민들은 폭염보다 더 힘든 희망고문에 시달리고 있다. 주거 취약계층 지원과 역세권 정비를 위한 이곳 쪽방촌 공공개발 사업이 지난해 9월 2년 반 만에 기본조사가 재개돼 기대감을 모았으나 최근 완공 시점이 2032년으로 변경된 데다 여전히 토지건물주 이견에 벽을 넘지 못해서다. <중도일보 2025년 1월 14·20·21·23일 자, 7월 9·10일 자, 8월 6일 자 1면 보도 등> 사업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올 연말까지 기본조사를 마친..

서남부터미널 폐업 초읽기… 조속한 교통대책 마련 필요
서남부터미널 폐업 초읽기… 조속한 교통대책 마련 필요

대전 서남부터미널 운영업체의 '경영 악화'로 터미널 폐업이 사실상 불가피해지면서 지자체의 조속한 폐업 결정과 교통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최근 단 하나 남아있던 금남고속마저 '이용객 감소'를 이유로 유성복합터미널로 기점 변경을 신청, 충남도가 본격적인 검토에 들어가면서 사실상 폐업 초읽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운송업계에선 폐업을 늦추는 것보단, 조속한 이동권 확보 방안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2일 운송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금남고속은 충남도에 기점 변경을 신청했다. 금남고속은 도시철도 2호선 트램 공사로 서남부터미널 진입..

금융당국,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 겨냥 `긴급조치권` 카드 꺼냈다
금융당국,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 겨냥 '긴급조치권' 카드 꺼냈다

금융당국이 증시를 뒤흔드는 주범으로 지목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을 겨냥해 긴급조치권이라는 강도 높은 카드를 꺼내 들었다. 기본예탁금 상향 등을 골자로 하는 보완책에 이어 발표된 추가 대책 일환으로, 글로벌 반도체 종목 쏠림 현상에 레버리지 상품까지 겹쳐 극도로 높아진 시장 변동성을 관리한다는 차원이다. 2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긴급한 상황에서 시장 안정화 조치를 취할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금융감독원과 함께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마련한다. 최근 홍콩의 가변 레버리지 배율 사례를 참조했다. 홍콩 증권선물위원회(SFC)는..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민주당 당대표·최고위원 충청서 순회경선 시작 민주당 당대표·최고위원 충청서 순회경선 시작

  • 북적이는 계곡과 한산한 도심 북적이는 계곡과 한산한 도심

  • 장종태 의원 민주당 대전시당위원장 선출 장종태 의원 민주당 대전시당위원장 선출

  • 과태료 부과 무시한 채 불법광고물 부착 과태료 부과 무시한 채 불법광고물 부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