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내일] 꾸어다 놓은 김부장 이야기

  • 오피니언
  • 오늘과내일

[오늘과내일] 꾸어다 놓은 김부장 이야기

신동철 법무법인 유앤아이 변호사

  • 승인 2026-08-02 17:30
  • 신문게재 2026-08-03 19면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신동철
신동철 변호사
소지섭 주연의 드라마 '김부장'이 장안의 화제라고 한다. 그런데 요즘 내 머릿속에는 또 다른 김부장이 산다. 드라마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회사 속 사람들의 이야기다. 어떤 회사에 새 대표이사가 취임했다. 새 대표는 인사파트의 핵심 업무를 오래 맡아 온 김부장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함부로 내칠 수는 없는 사정이 있어 자리는 그대로 둔 채 업무에서 빼기로 했다. 김부장 밑의 이과장에게 일과 권한을 몰아준 것이다. 원래는 대리들이 한 일을 이과장이 취합해 김부장에게 보고하고, 김부장이 검토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시켜 이사회에 보고하는 구조였다. 이제는 김부장은 명목상 자리만 남고, 승진한 지 얼마 안 돼 부장을 달아주기는 부담스러운 이과장이 인사파트를 총괄한다. 깐깐한 김부장을 평소 탐탁잖게 여기던 사람들은 속이 시원하다며 반겼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이과장이 전권을 쥐면서 인사파트의 업무는 점점 불투명해졌고, 일은 다시 그 아래 남대리에게 몰렸다. 남대리는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내던 정사원의 비위를 눈감아 주었고, 괴롭힘을 호소한 최사원의 고충은 접수만 해 놓고 방치했다. 내부에서 수군거림이 커지자 남대리는 뒤늦게 이과장과 상의했고, 이과장은 고민 끝에 '일단 덮자'고 했다. 지금 위에 보고하면 일이 더 커지니 적절히 무마해 보자는 계산이었다. 예전 같으면 김부장에게 보고를 해야 하니 방치하거나 눈감아 주는 것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김부장은 이제 아무 역할이 없다. 그사이 조직은 곪아 갔다. 참다못한 최사원이 외부에 고발하고 나서야 비슷한 피해자가 한둘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이어 정사원의 횡령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사실까지 줄줄이 드러났다.

상상 속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지난 7월 31일 검사의 보완수사권을 전면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 수립 이래 78년간 유지돼 온 검찰의 수사권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그동안 검찰이 미덥지 않았던 이들은 환호할지 모른다. 검찰에게도 허물이 있었을 수 있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다르게 판단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답은 권한을 통제하고 일하는 방식을 고치는 개선에서 찾는 것이 맞다. 그런데 지금 국회가 선택한 것은 개선이 아니라 배제에 가깝다. 미운 사람을 치우면서 그가 수행하던 '검증'이라는 기능까지 함께 내다 버린 것이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도, 최근 온 국민을 분노케 한 장윤기 사건도, 경찰이 단순 사건으로 처리하려던 것을 검찰의 보완수사가 성폭행 목적의 범행이라는 실체를 밝혀낸 경우였다. 앞으로 이런 사건에서 수사의 빈틈은 누가 메울 것으로 기대할 수 있을까.

또한, 견제받지 않고 확인받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문제를 일으킨다. 이야기 속 이과장과 남대리가 특별히 악한 사람들이어서 사달이 난 것이 아닐 것이다. 자신의 판단을 들여다보고 바로잡아 줄 눈이 사라지는 순간 누구든 덮고 싶은 것을 덮게 된다. 권력의 속성이 그렇고, 경찰이라고 다를 리 만무하다. 개정안에 남은 보완수사 요구권이나 불송치 이의신청, 중대범죄수사청에 전담 부서를 두겠다는 후속 대책이 거론되지만, 요구를 받은 쪽이 스스로 제 수사의 허물을 들춰내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또한 '요구'에 불과해 응하지 않으면 혼선만 가중될 뿐이다. 법조계와 여성계, 장애인단체와 범죄 피해자들이 한목소리로 신중한 판단을 호소했지만 개정안은 예정된 수순처럼 본회의를 통과했다. 검찰의 권한 집중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오히려 경찰에게 권한을 집중시킨 셈이다. 개혁의 명분만을 앞세우며 견제 시스템부터 허물어 놓고 문제가 생기면 그때그때 보완하겠다는 것은 국민의 안전을 담보로 한 실험이자 참으로 무책임한 발상이다.

이야기 속 김부장은 오늘도 사무실에 있지만, 입이 있어도 말한마디 못 하고 묵묵히 서류만 나르고 있다.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가 된 김부장. 지금은 그에게 채워진 족쇄가 개혁의 상징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통제받지 않는 또다른 권력을 만든 대가는 우선적으로 약자들로부터 시작해 사회 전체가 치르게 될 것이다. 제2, 제3의 장윤기 사건이 나오지 않기를 운에나 맡겨야 할까.

/신동철 법무법인 유앤아이 변호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예산사과농장 한관수 대표, 10㎏ 사과 500박스 후원, 나눔과 지원 활동 지속
  2. 충남대 통합신청서 부결 후폭풍… 보직교수 5명 일괄 사표
  3. [기자수첩] 충주댐 40년…단양은 언제까지 '희생의 청구서'를 받아야 하나
  4. 과기부 소관 공공기관 일부 통폐합…국립과학재단 신설
  5. 충남대·공주대 통합 멈췄지만 끝 아니다… 연말까지 재논의 여지
  1. 대전 동부소방서, 추석 앞 화재안전 점검
  2. [함께 지켜온 물, 대청호의 다음 25년] 규제 충돌 넘어선 24년 동행… 충청 유역공동체로 이어진 물길
  3. 충남교육청, 추석 명절 전 특별 공직 감찰 실시
  4. 위성 15기 싣고 우주 향하는 누리호 5차… 대전 기술력 '시험대'
  5. 대전세종충남혈액원, 충남대서 생명나눔 헌혈 캠페인 펼쳐

헤드라인 뉴스


與 지도부 "공공기관, 의료원, 교도소…대전 현안 전폭 지원"

與 지도부 "공공기관, 의료원, 교도소…대전 현안 전폭 지원"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대표 등 여당 지도부가 16일 대전을 찾아 산적한 지역 현안에 대한 전폭 지원을 약속했다. 공공기관 제2차 지방 이전, 대전 의료원 건립 등 허태정 대전시장과 지역 여권이 요청한 미래성장 동력에 대한 드라이브를 걸며 충청 민심 껴안기에 나섰다. 이 같은 행보는 민족 최대 명절 추석을 일주일 가량 앞두고 정책 및 예산권을 가진 집권 여당의 힘을 과시하면서 지역 밥상머리 이슈를 선점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김 대표는 이날 대전시청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전의 2차 공공기관 이전 요구와 관련해 "지방의 의견을..

대전서 1년 새 매매가격이 가장 많이 오른 아파트는 어디?
대전서 1년 새 매매가격이 가장 많이 오른 아파트는 어디?

대전지역에서 최근 1년 새 매매가격이 가장 많이 오른 곳은 서구 둔산동 한마루아파트로 나타났다. 16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서구 둔산동 한마루아파트 전용면적 101.94㎡는 지난해 9월 9억 1000만 원에서 올해 9월 12억 원으로 2억 9000만 원 상승했다. 동일 단지·동일 전용면적이라도 층수 등에 따라 매매가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같은 면적의 실거래가는 1년 새 3억 원가량 차이를 보였다. 상승액 2위는 서구 탄방동 공작한양 84.90㎡로 지난해 9월 4억 4000만 원에서 올해 9월 6억 7000만..

‘2030년 짐 싸는’ 국정자원 본원…충남·세종·대전 유치 ‘3파전’
‘2030년 짐 싸는’ 국정자원 본원…충남·세종·대전 유치 ‘3파전’

지난해 화재 발생 이후 본원 이전 절차가 본격화된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을 두고 충청권 지자체 간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2030년까지 기존 대전 본원이 폐쇄되는 상황에서 충남도와 세종시, 대전시가 저마다의 명분을 내세우며 유치전에 사활을 걸고 나섰다. 16일 충청권 각 자치단체와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현재 대전 유성구 화암동에 위치한 국정자원 대전 본원은 2030년까지 전면 폐쇄된 뒤 새로운 장소로 이전·재설립될 예정이다. 적절한 이전 부지를 발굴하기 위한 정보화전략계획 용역은 내년 상반기 완료를 목표로 진행 중이며, 이에 맞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사랑의 송편 나눔’…명절 꾸러미 한가득 ‘사랑의 송편 나눔’…명절 꾸러미 한가득

  • 대전 동부소방서, 추석 앞 화재안전 점검 대전 동부소방서, 추석 앞 화재안전 점검

  • ‘대한민국의 情을 보냅니다’ ‘대한민국의 情을 보냅니다’

  • 경영악화로 폐업하는 대전서남부터미널 경영악화로 폐업하는 대전서남부터미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