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의 눈] 소녀를 기억하는 방법

  • 오피니언
  • 미디어의 눈

[미디어의 눈] 소녀를 기억하는 방법

  • 승인 2016-03-24 17:28
  • 신문게재 2016-03-25 23면
  • 고미선 편집부장고미선 편집부장
▲ 고미선 편집부장
▲ 고미선 편집부장
#평화의 소녀상
내가 처음 소녀를 만난 그 날은, 코끝까지 에이는 칼바람과 함께 함박눈이 회색 하늘을 뒤덮은 오후였죠. 도심 속 공원입구 차디찬 의자에 앉아있던 소녀의 맨발이 안쓰러워 손에 쥐고 있던 우산을 내밀어 보았어요.

올해 중학생이 된 우리 딸아이와 비슷한 또래일까…. 귀밑 단발머리와 뜯겨진 머리카락, 단호하게 꼭 말아 쥔 주먹이 슬퍼 보이네요.

소녀에게 유일한 친구는 어깨위에 앉아있는 작은 새 뿐인 듯 싶은데, 옆에 놓인 부재(不在)의 빈 의자는 그 누구를 위한 걸까요. 땅에 닿지 않는 발 뒤꿈치 만큼이나 불편하고 외로운 모습, 텅 빈 눈동자에 흐르는 미처 말하지 못한 진실과 염원들이 마음을 마구 헤집어 아파옵니다.

그 소녀가 처음 대전으로 온 날은 2015년 3월 15일, 둔산동 보라매 공원에서 아직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군요.
어서 빨리 만나서 소녀가 더 이상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귀향
며칠동안 소리 없이 앓았다.

생각만 해도 숨이 가빠지고, 코끝부터 물기가 차올라 눈을 꼭 감아버리고 만다.

끔찍하고 불편할 것이라고 예감은 했었다. 꼭꼭 감추고만 싶었던 역사의 민낯을 마주할 용기가 없으니까 말이다.

위안부 피해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귀향(鬼鄕)의 귀는 귀신(鬼神)의 귀다. 죽어서야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가슴 아픈 제목의 의미를 뒤늦게 알았다.

7만5000명이 제작비를 보탰고, 조정래 감독이 14년간에 걸쳐 만든 영화란다.

일제강점기 시대 20만명의 소녀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단지 238명만이 돌아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생존자는 줄어들고 사람들의 관심도 희미해 질 것이다. 20년 후엔 교과서에서만 위안부 이야기를 접할 수 있을 것 같아 조금 두렵다.

혹자는 이런 영화를 100번 만든다고 무엇이 달라지냐고 묻는다. 글쎄…. 나라를 빼앗기고도 방 한구석에 앉아 거리의 만세운동가들을 어리석다고 비난할 그들에게 해줄 말이 있을까.

국민들이 만든 영화, 엔딩 크레딧이 흐르고 있을 때 아무도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 순간 75,270명의 후원인 명단에 내 이름이 없다는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딸, 미안해
겨우 13살, 14살의 소녀들이랍니다.

꽃다운 아이들이 '근로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전쟁터의 성노예로 끌려갈 때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죠. 더 지옥같은 현실은 세월이 지나 해방이 된 이후에도 우린 침묵했다는 사실입니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협상 발표를 기억합니다. 그 협상의 중심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없었습니다.

몇십년 동안 받은 정신적 고통을 겨우 10만엔(약 100억)으로 치유될 수 있을까요. 이제 한국정부는 정부차원에서 위안부 문제를 발언할 수 없고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을 치운다는 조항까지 있다고 하니, 잊혀질 일만 남은 거군요.

그날의 13세 소녀가 89세의 할머니로 오버랩 되는 오늘, 딸을 둔 엄마는 무기력한 나라와 무관심한 어른들이 부끄럽고 미안합니다.
반성 없는 합의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역사는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힘 있는 정치인과 대통령이 먼저 나서서 시대의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한 노력에 동참해야 합니다.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는 유대인의 말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고미선 편집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시 국방 과학수도 날개단다
  2. [우리동네 정비사업] 대전 대표 노후지 대덕구, 사업성 악화로 상당수 정비사업 '제동'
  3. [편집국에서]대한민국 축구와 민선9기 대전시
  4. "논쟁 휘둘려 기회 놓치면 안돼"…연내 특별법 제정 역량결집 시급
  5. [현장취재]크리스천리더스클럽, 제주헤리티지로 비전트립 다녀오다
  1. [월요논단] '온통대전'을 넘어, 시민이 설계하는 고향사랑기부제
  2. [옅어진 대전 문인의 흔적] 단재도 서포도 백호도…대전만 낯선 지역의 인문자산
  3. 무더위 피해 서점에서 북캉스
  4. 장마 주춤한 사이 활짝 핀 개망초
  5. 검찰청 폐지 석달도 안 남아… 보완수사·경찰 인사까지 여전히 혼선

헤드라인 뉴스


정부 공공기관 이전 앞두고 민선 9기 대전시 역량 시험대

정부 공공기관 이전 앞두고 민선 9기 대전시 역량 시험대

정부의 2차 공공기관 이전 계획 발표가 임박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지역 발전에 견인할 핵심 공기업 유치를 위한 대전시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지고 있다. 1차 공공기관 이전 당시 철저히 배제된 만큼, 혁신도시 완성을 통한 원도심 활성화·도심 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한 기관을 유치하기 위해서다. 20일 지역 정치권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안에 2차 공공기관 이전 내용을 발표할 방침이다. 김윤덕 국토부 장관이 최근 한 방송에 출연해 "실무적인 부분은 상당 부분 진행됐고, 가능하면 8월이나 늦어도 9월까지는 윤곽을 마련해 대통령께..

한화, 불펜 흔들리고 중심타선 공백…후반기 전력 어쩌나
한화, 불펜 흔들리고 중심타선 공백…후반기 전력 어쩌나

후반기 반등을 노리는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전력에 경고등이 켜졌다. 불펜이 흔들리며 마운드 운영에 부담이 커진 가운데 새 외국인 투수를 영입해 선발진 재정비에 나섰지만, 중심타선마저 부상 악재를 맞으며 전력 운용에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한화가 후반기 첫 과제로 떠오른 숙제는 불펜이다. 키움 히어로즈와의 후반기 첫 4연전에서 리드를 지키지 못하는 장면을 반복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특히 19일 경기에서는 8-1로 앞서던 승부를 지키지 못한 채 연장 11회 9-9 무승부로 마무리했다. 류현진의 한·미 통산 2500탈삼진이라는 대기록과..

충남문화관광재단 대표 인선 논란 증폭…박수현 지사 인사 잡음 잇따라
충남문화관광재단 대표 인선 논란 증폭…박수현 지사 인사 잡음 잇따라

박수현 충남지사의 취임 이후 인선을 둘러싼 잡음이 잇따르고 있다. 정무부지사 임명을 둘러싼 논란과 민선 9기 도정 첫 조직개편에 대한 비판에 이어 이번에는 충남문화관광재단 대표이사 임용 절차를 놓고 노동조합이 특정 자격 미달 인사를 위한 '맞춤형 규정 개정' 의혹을 공개적으로 지적하면서다. 지역 시민사회에 이어 공직사회와 산하기관 노동조합까지 잇따라 인사와 조직 운영을 둘러싼 문제를 제기하면서 박 지사의 첫 인선 기조가 연이어 시험대에 오르는 모습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충남문화관광재단지회는 20일 성명을 통해 "충남도와 재단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함께 지킨 자유, 영원한 감사’ ‘함께 지킨 자유, 영원한 감사’

  • 전통시장에 바람이 솔솔…‘시원하게 장보세요’ 전통시장에 바람이 솔솔…‘시원하게 장보세요’

  • 장마 주춤한 사이 활짝 핀 개망초 장마 주춤한 사이 활짝 핀 개망초

  • 무더위 피해 서점에서 북캉스 무더위 피해 서점에서 북캉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