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트로트 가수 진성을 키운 47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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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만필] 트로트 가수 진성을 키운 4700원

  • 승인 2020-10-14 14:54
  • 수정 2021-06-24 13:52
  • 신문게재 2020-10-09 14면
  • 김흥수 기자김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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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용 홍성여고 교장
사상 초유의 감염병인 코로나19가 장기화 되면서 세상이 침울해 졌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길어지면서 사람들과의 만남이 멀어지고 마음의 허전함이 이어진다. 허전한 시간을 달래느라 TV 채널을 자주 돌리게 된다. 방황을 거듭하던 채널이 나도 모르게 트로트에 자주 머물게 된다. 온통 트로트 열품이 불다 보니 '미스터 트롯', '사랑의 콜센타', '보이스 트롯', '트롯신이 떴다' 등 본방과 재방이 이어지고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토로트 가수들이 섭외 1순위인 모양이다. 어쩌다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서로가 좋아하는 트로트 가수의 '찐팬'임을 경쟁한다.

내가 좋아하는 트로트 가수는 '보릿고개'와 '안동역에서'로 유명한 진성이다. 그의 구성진 목소리와 노랫말이 가슴에 와 닿는 이유도 있지만 굴곡진 삶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긍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삶을 향한 태도를 좋아한다.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그는 세 살 때 그를 버려야만 했던 어머니의 심정까지도 이제는 받아들인다며 효도를 약속한다. 자신을 낳아주시고 자신에게 노래라는 달란트를 선물하신 것만으로도 어머니께 감사하고 사랑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나에게도 그의 인생사 중에서 감동을 주는 장면이 남아 있다.

가까스로 초등학교를 마치고 동네에서 방황하고 있던 그에게 차비와 식비를 더해 4700원을 쥐어주며 서울로 올라가 돈을 벌라고 한 담임 선생님이다. 1970년대 시절 박봉으로 살아가던 교사봉급에 4700원이면 분명 적잖은 금액이고, 더구나 졸업한 제자 아이에게 아내 몰래 덥석 현금을 쥐어 주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4700원은 절망 속에 방황하던 어린 진성에게 삶의 크나큰 희망과 용기를 주었으니 4억원 이상의 가치가 되고도 남았으리라.



우리의 선배 교사들은 그렇게 아이들을 가르치셨다. 정성을 다해서 가르치고 때로는 없는 살림에 사재를 털어서 학생들의 삶을 보듬고 영혼에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다. 트바로티라는 별칭을 가진 가수 김호중에게도 훌륭한 선생님이 계셨다. 폭력배들과 어울리며 방황하던 고등학생 김호중의 재능을 발견한 서수용 선생님이 헌신적인 사랑과 열정으로 그를 훌륭한 성악가이자 트로트 가수로 거듭나도록 가르쳤다.

바야흐로 결실의 계절 가을이다. 세상은 힘들어도 들판의 꽃들은 속절없이 만개해 벌과 나비를 유혹한다. 왜 그들에게도 인간의 바이러스 같은 고난과 시련이 없었으랴.

한여름의 폭염과 장마와 태풍을 거치며 바람에 흔들리고 비에 젖으면서도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들을 보며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 곧게 세웠나니… 후략 -흔들리며 피는 꽃(도종환)"

지금도 교실에는 마음이 힘겨운 아이들이 많이 있다. 요즘처럼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세상이 힘들고 경제가 어려울수록 가정마다 힘겨운 사정이 있기 마련이다. 무언가 삐딱해 보이고 공부에 관심이 없는 학생들을 무작정 혼낼 일이 아니다. 그들에게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들이 많다. 차마 선생님께 털어놓지 못하는 이야기들도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어주고 아픔을 어루만져 주며 용기를 넣어주는 것이 우리 학교와 교사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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