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미국 선거의 교훈

  • 오피니언
  • 세상속으로

[세상속으로]미국 선거의 교훈

이성만 배재대 항공운항과 교수

  • 승인 2020-11-30 10:28
  • 신문게재 2020-12-01 18면
  • 이상문 기자이상문 기자
이재만
이성만 배재대 항공운항과 교수
2020년 월드컵 때 우리는 축구에 열광했다. 그때 즐겼던 축구와 미식축구는 사뭇 다르다. 우리네 축구가 유럽에 뿌리를 둔 것이지만, 미식축구는 럭비가 대서양을 건너서 미국 취향에 맞게 바뀐 것이어서 꼭 '미식'축구라고 한다. 전자는 오직 발만 쓰지만, 후자는 주로 손을 쓴다. 미국의 정치도 축구마냥 유럽이나 우리와도 차이가 있다. 미식축구처럼 미국 민주주의도 그들만의 규칙을 따른다. 득표율이 낮은 후보자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선거제도는 그들에게는 유의미하겠지만 우리나 유럽인들에게는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는 몇 가지 교훈을 남겼다.

1972년에 초연된 연극 <점퍼스(Jumpers)>에서 톰 스토파드(Tom Stoppard)는 "선거가 아니라 개표가 민주주의다"고 얄궂은 말을 했다. 최근의 미국 대통령 선거를 생각하면 결코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패배자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여 선거 결과를 정당화하는 시스템이다. 선거의 객관성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은 미국의 명성을 훼손하는 행위이자 미래에 대한 우리의 기대 징후, 예컨대 미국의 선거를 넘어 여타 국가들에서도 이런 논란거리 선거가 확산될 수 있다는 조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분열된 국가에서 정당 지지자들은 규칙 위반이 아니라 상대 정당의 승리에서 민주주의의 결정적인 위험을 찾는다. 많은 사람들은 상대의 권력 장악을 막기 위해 더 강하게 시스템 자체를 파괴하려 들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서라면 헌법기관, 자유언론 같은 공정 기관들은 정치 도구화에 빠질 위험도 없지 않다. 게다가 미국 선거는 코로나19로 인한 충격과 손실이 국가적 통합과 집단적 목표로 이어지기보다는 기존의 균열 양상을 한층 더 심화시킬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AP통신의 분석에 따르면, 신규 감염자 수가 가장 많은 376개 카운티에서 93%라는 압도적 다수가 트럼프에게 찬성표를 던졌다.

미국의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에게는 경고의 메시지로 들린다. 봉쇄가 길어지고 경제가 위축된다면, 우리 사회는 작금에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혼돈스런 혼란과 닮아 갈 수 있다. 민주주의는 현대 사회에서 분열 극복의 능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찬사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지난 4년간의 미국에서의 경험에 비추면, 민주 정치가 분열을 고착·악화시키지 말란 법도 없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선거에서 단순히 두 정당이 아니라 전쟁을 치루는 서로 다른 두 나라가 되었다. 이러한 정치 전쟁은 단순히 트럼프의 패배로만 끝나지는 않을 듯하다.



미국의 정치 전쟁에 담긴 또 다른 메시지는 한 나라의 인구구조가 정치에서 결정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 구조의 숫자가 바뀌면 권력은 이 손에서 저 손으로 넘어간다. 이른바 '민주적 내러티브(narrative)'는 오랫동안 선거의 승리는 유권자들의 심경변화에 좌우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유권자가 바뀌면 권력 관계도 뒤집힐 수 있다. 이는 1960년대와 1970년대 서구 민주주의에서 그랬듯이 집단적 선호가 강한 신세대가 성인이 될 때 발생한다. 거대 집단의 신생 유권자들이 정치적 담론을 재구성할 때도 그럴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실제로 보편적 참정권이 도입되었을 때나 대규모 이민자들이 몰려들었을 때부터 여러 국가들에서 나타났다. 조 바이든의 인상적인 선거결과는 유권자들의 심경변화에서보다는 애리조나, 조지아 같은 연방주들의 인구통계학적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민족주의 정당들이 자국에서 날로 늘어나는 이주민들의 선택을 경제적·문화적 위협이자 정치적 위협으로 인식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자국에서 소수자가 되기를 두려워하는 소수 민족들은 미국을 넘어 세계 도처에서 민족주의 포퓰리스트들의 주요 지지자들이다. 아무튼 민주당원이 백악관에 복귀했더라도 세계가 트럼프 이전의 모습으로 회귀한 것은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성만 배재대 항공운항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이진숙 교육장관 후보자 첫 출근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립대·지방대와 동반성장"
  2. '개원 53년' 조강희 충남대병원장 "암 중심의 현대화 병원 준비할 것"
  3. 법원, '초등생 살인' 명재완 정신감정 신청 인용…"신중한 심리 필요"
  4. 33도 폭염에 논산서 60대 길 걷다 쓰러져…연일 온열질환 '주의'
  5. 세종시 이응패스 가입률 주춤...'1만 패스' 나오나
  1. 필수의료 공백 대응 '포괄2차종합병원' 충청권 22곳 선정
  2. 폭력예방 및 권리보장 위한 협약 체결
  3. 임채성 세종시의장, 지역신문의 날 ‘의정대상’ 수상
  4. 건물 흔들림 대전가원학교, 결국 여름방학 조기 돌입
  5. 세종시, 전국 최고 안전도시 자리매김

헤드라인 뉴스


야권에서도 비충청권서도… 해수부 부산이전 반대 확산

야권에서도 비충청권서도… 해수부 부산이전 반대 확산

이재명 정부가 강공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보수야권을 중심으로 원심력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충청권에서만 반대 여론이 들끓었지만, 행정수도 완성 역행과 공론화 과정 없는 일방통행식 추진되는 해수부 이전에 대해 비(非) 충청권에서도 불가론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원내 2당인 국민의힘이 이 같은 이유로 전재수 장관 후보자 청문회와 정기국회 대정부질문, 국정감사 등 향후 정치 일정에서 해수부 이전에 제동을 걸고 나설 경우 이번 논란이 중대 변곡점을 맞을 전망이다. 전북 익산 출신 국민의힘 조배숙..

李정부 민생쿠폰 전액 국비로… 충청권 재정숨통
李정부 민생쿠폰 전액 국비로… 충청권 재정숨통

이재명 정부가 민생 회복을 위해 지급키로 한 소비쿠폰이 전액 국비로 지원된다. 이로써 충청권 시도의 지방비 매칭 부담이 사라지면서 행정당국의 열악한 재정 여건이 다소 숨통을 틀 것으로 기대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1일 전체회의를 열어 13조2000억원 규모의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 관련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했다. 행안위는 이날 2조9143억550만원을 증액한 2025년도 행정안전부 추경안을 처리했다. 행안위는 소비쿠폰 발행 예산에서 중앙정부가 10조3000억원, 지방정부가 2조9000억원을 부담하도록 한 정부 원안에서 지방정..

대전·충남기업 33곳 `초격차 스타트업 1000+` 뽑혔다
대전·충남기업 33곳 '초격차 스타트업 1000+' 뽑혔다

대전과 충남의 스타트업들이 정부의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에 대거 선정되며, 딥테크 기술창업 거점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1일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는 '2025년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에 전국 197개 기업 중 대전·충남에선 33개 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이는 전체의 16.8%에 달하는 수치로, 6곳 중 1곳이 대전·충남에서 배출된 셈이다. 특히 대전지역에서는 27개 기업이 선정되며, 서울·경기에 이어 비수도권 중 최다를 기록했다. 대전은 2023년 해당 프로젝트 시행 이래 누적 선정 기업 수 기준으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수영하며 야구본다’…한화 인피니티풀 첫 선 ‘수영하며 야구본다’…한화 인피니티풀 첫 선

  • 시구하는 김동일 보령시장 시구하는 김동일 보령시장

  • 故 채수근 상병 묘역 찾은 이명현 특검팀, 진실규명 의지 피력 故 채수근 상병 묘역 찾은 이명현 특검팀, 진실규명 의지 피력

  • 류현진, 오상욱, 꿈씨패밀리 ‘대전 얼굴’ 됐다 류현진, 오상욱, 꿈씨패밀리 ‘대전 얼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