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대전大田

  • 오피니언
  • 문화人 칼럼

[문화人칼럼] 대전大田

김희정 시인(미룸 갤러리 관장)

  • 승인 2021-03-03 16:05
  • 신문게재 2021-03-04 19면
  • 오희룡 기자오희룡 기자
김희정
김희정 시인
고향 떠나온 지 36년, 버리지 못한 것이 고향 말이다. 시장을 가든 술집을 가든 내가 전라도 산産이라는 것을 금방 안다. 말이라는 것이 쉽게 바뀌지도 않지만 바꾸겠다고 노력해 본 적도 없다. 듣는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엄마에게서 배운 말은 아직도 포근하다. "거시기" "그랬당게" 에 의미를 부여한 적은 없지만 단어에 공간이 넓게 느껴져서 좋다.

말이나, 문장은 마음을 실을 때 아름답다. 부사나 형용사를 아무리 많이 사용해도 마음이 담긴 문장을 이길 수 없다. 언어라는 것이 상대방과 소통을 하기 위해 쓰이는 도구이지만 이것은 단순한 해석이고 단어가 모여 문장이 되고 문장이 이야기로 만들어져 내 생각을 전달할 때 꼭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몸에 깊숙이 살고 있는 고향 말이다.

편한 사람을 보면 고향 말이 술술 나온다. 거의 대부분이 시장이나 술집이나 식당이다. 좌판에서 상추를 파는 할매를 보면 어김없이 "할매, 얼마요?"를 외친다. 그런 나를 보고 "이쪽에 사는 사람이 아닌가 보네!" 라고 묻는다. "무안이요!" 물론 지금은 그런 것조차 묻지 않는다. 이제 내가 어디 산産인지 알기 때문이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지 7년이 지났다. 시장 좌판에서 할매(할머니)나, 아짐(아주머니)을 보면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도 좌판에서 식구들을 먹여 살렸다. 그 모습을 아직 잊지 않고 있어 좌판의 할매나 아짐을 보면 엄마가 알려준 말이 술술 나온다.



내가 대전에 뿌리를 내린 지, 26년이다. 고향에서 살았던 시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대전에서 보내고 있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대전에 자리를 잡고 산 시간만큼 고향 말은 더 깊게 마음에 뿌리를 내렸다. 엄마가 보고 싶으면 중앙시장에 갔다. 고향 가는 길이 그리워지면 서대전역에 들린다. 무안 남산이 생각나면 보문산을 걷는다. 고향에 있는 사람들이 그리워지면 대전에서 만난 인연들을 만난다.

26년 전, 중앙시장도, 서대전역도, 보문산도 낯설었다. 혼자라고 생각했다. 학업만 마치면 대전을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간이역이라고 여겼던 대전을 떠나지 못하고 대전 사람이 되었다. 대전에서 아내를 만났고 아이가 태어났고 엄마를 보내드렸다.

가끔 고향에 행사가 있어 가면 대전이 고향이라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웃음이 터지는 이유가 있다면 말투 때문이다. 말은 전라도인데 고향이 충청도라고 하니 사람들이 웃는 것이다. 말과 고향이 일치하지 않지만 나의 고향은 대전(大田)이다. 큰 밭에다 마음의 고향에서 가져온 고구마도 심고 양파도 심고 푸성귀도 심는다. 가끔 뻘낙지나, 홍어에 대해 일장 연설도 빼놓지 않는다.

이제 무안에 가면 대전 이야기를 한다. 두부두루치기와 칼국수는 물론이고 보문산, 대전역, 중앙시장을 건너 대전 천을 꺼내오고 갑천과 성심당도 단골 메뉴처럼 차린다. 단골 밥집(부안 집밥)이나 술집(대전부르스, 아리랑)에 고향에서 온 인연을 모시고 가겠다고 호객행위까지 한다.

26년 전 대전과 지금의 대전이 변한 것이 있다면 마음이다. 황량하기 그지없던 대전이 엄마가 알려준 말로 대전을 이야기하고 있다. 봄이 다가오니까 엄마 생각이 나서 고향 타령을 하고 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지금의 내 고향은 대전이다. 고향은 마음을 포근하게 해주고 어떤 풍파에도 안아주는 힘이 있다. 그런 곳이 나에게 대전이다.

오늘 중앙시장에 가서 삼겹살 한 근 끊어 굽고 상추 한 근 할매한테 사야겠다. 빼놓지 않고 소주(린)도 한 잔 해야겠다. 물론 엄마가 알려 준 고향 말로 가격을 물어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런 것이야 말로 지역사랑이라고 말해도 될까 모르겠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갑천 야경즐기며 워킹' 대전달빛걷기대회 5월 10일 개막
  2. 수도 서울의 높은 벽...'세종시=행정수도' 골든타임 놓치나
  3. 충남 미래신산업 국가산단 윤곽… "환황해권 수소에너지 메카로"
  4. 이상철 항우연 원장 "한화에어로 지재권 갈등 원만하게 협의"
  5.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1. 충청권 학생 10명 중 3명이 '비만'… 세종 비만도 전국서 가장 낮아
  2. 대학 10곳중 7곳 올해 등록금 올려... 평균 710만원·의학계열 1016만원 ↑
  3.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4. [춘하추동]삶이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5. 2025 세종 한우축제 개최...맛과 가격, 영양 모두 잡는다

헤드라인 뉴스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이제는 작업복만 봐도 이 사람의 삶을 알 수 있어요." 28일 오전 9시께 매일 고된 노동의 흔적을 깨끗이 없애주는 세탁소. 커다란 세탁기 3대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노동자 작업복 100여 벌이 세탁기 안에서 시원하게 묵은 때를 씻어낼 때, 세탁소 근로자 고모(53)씨는 이같이 말했다. 이곳은 대전 대덕구 대화동에서 4년째 운영 중인 노동자 작업복 전문 세탁소 '덕구클리닝'. 대덕산업단지 공장 근로자 등 생산·기술직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일반 세탁으로는 지우기 힘든 기름, 분진 등으로 때가 탄 작업복을 대상으로 세탁한다...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올 시즌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는 프로야구 한화이글스가 9연전을 통해 리그 선두권 경쟁에 돌입한다. 한국프로야구 10개 구단은 29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휴식 없는 9연전'을 펼친다. KBO리그는 통상적으로 잔여 경기 편성 기간 전에는 월요일에 경기를 치르지 않지만,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프로야구 5경기가 편성했다. 휴식일로 예정된 건 사흘 후인 8일이다. 9연전에서 가장 주목하는 경기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리는 LG 트윈스와 승부다. 리그 1위와 3위의 맞대결인 만큼, 순위표 상단이 한순간에 뒤바..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생이 교직원과 시민을 상대로 흉기 난동을 부리고, 교사가 어린 학생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학생·학부모는 물론 교사들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찰과 충북교육청에 따르면 28일 오전 8시 33분쯤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특수교육대상 2학년 A(18) 군이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 4명과 행인 2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A 군을 포함한 모두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계성 지능을 가진 이 학생은 특수교육 대상이지만, 학부모 요구로 일반학급에서 공부해 왔다. 가해 학생은 사건 당일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해 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 ‘꼭 일하고 싶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

  •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