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좌담회] 기호유학 400년 재조명 충청권 지상좌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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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좌담회] 기호유학 400년 재조명 충청권 지상좌담회

  • 승인 2021-07-19 14:39
  • 신문게재 2021-07-19 10면
  • 한세화 기자한세화 기자
지상좌담회-메인사진
임병양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후 조선 효종은 일대 혁신 개혁을 통한 북벌(北伐)계획을 단행했지만 사회전반이 이에 대한 충분한 준비와 이해가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여전히 친청파세력의 견제와 사회전반의 문란 그리고 지도층의 기강 해이 등 북벌은 그 추동력을 잃게 되고 우암, 동춘, 초려선생 등 산림(山林)을 중심으로 시도한 새로운 왕도정치는 주변강국들의 노골적인 간섭으로 때를 놓쳤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근 중국몽, 반일감정 정서 속에서 국정 쇄신과 외교 정책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찌감치 경세철학과 경세 사상을 바탕으로 새로운 정치방향을 모색하는 우암 송시열, 동춘당 송준길, 초려 이우태, 시남 유계, 미촌 윤선거 선생 등 기혹유학의 대표학자인 '충청5현'이 주목받고 있다.



중도일보는 대전을 본거지로 둔 기호유학의 대표 인물인 충청 5현의 사상을 통해 현재 우리나라의 해법과 향후 기호유학 400년의 미래를 되짚어본다.

이연우 초려문화재단 이사장의 사회로 허태정 대전시장, 이춘희 세종시장, 양승조 충남지사, 이시종 충북지사 등 충청권 4개 광역지자체장이 충청 5현의 사상과 의미에 대해 토론한다. <편집자주>



-먼저 동춘당 송준길에 대해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허태정
허태정 대전시장
▲허태정 대전시장=동춘당 송준길은 조선 인조부터 현종 때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입니다. 우암 송시열과 함께 양송(兩宋)으로 일컬어질 정도로 영향력이 컸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선생이 살았던 17세기는 동아시아 전반에 걸쳐 큰 변화가 나타난 시기였습니다.

중국은 쇠약해진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주도권이 넘어갔고, 일본에서는 막부가 교체됐습니다. 조선 역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양란을 겪으며 피폐해져 200년을 지속해온 국가 체제의 재정비가 시급한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조선 정치가들은 구습과 현실이 만들어내는 모순을 어떤 방향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지 끊임없이 논쟁하며 국가 질서를 재확립하고자 했습니다.

선생이 올린 상소에서 그의 개혁적 성향과 당시 조선이 처한 상황을 볼 수 있습니다. "전하께서 보시기에 지금의 나라 형세가 어떻다고 여기십니까? 백성들의 곤란함이 이미 심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 그러니 지금이 어찌 전하께서 변통할 줄을 모르고 그 전 잘못을 답습하거나 구습에 젖어 있을 때이겠습니까?."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사회 기반을 중심으로 살았지만, 선생의 이 같은 언급은 급변하는 국내외 환경과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전 세계적인 위기 속에서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선생에 대해 알아보면서 우리가 어려움을 극복할 단초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선생의 가문인 은진송씨는 조선 초 충청도 회덕현에 입향 하면서부터 대전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선생은 서울에서 태어나 8살에 조상의 고향인 현재의 대전(회덕 송촌)으로 내려와 살았습니다. 관직을 역임하며 서울에 살았던 1년 남짓 시간을 제외하고는 인생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가 중앙정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이유는 조선 후기 정치사에서 주목되는 산림(山林)이었기 때문입니다.

산림은 지방에 머물며 각 지역의 여론을 주도하는 자리에 있었던 학식과 덕망이 높은 선비들입니다. 이들은 사화나 양란을 겪으며 중앙정계에 진출하지 않았지만, 중앙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산림 세력 중 가장 두각을 나타냈던 인물들이 바로 충청지역의 선비들이었습니다.



==이춘희
이춘희 세종시장
-시남 유계 선생의 생애와 학문에 대해서도 간략히 정리해 주시겠습니까? .

▲이춘희 세종시장=시남 유계 선생은 우암 송시열과 같은 해에 태어나 인조와 효종, 현종 때 정치를 주도한 인물입니다.

유계 선생은 선조 40년(1607) 수원 서촌에서 태어나 19세 때인 인조 3년(1625) 사계 김장생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했습니다.

당시 동문수학한 인사는 우암 송시열을 비롯해 동춘 송준길, 미촌 윤선거, 초려 이유태 등 '충청5현'으로 불렸던 당대 서인계의 대표적인 인물들로 그의 학문과 학풍을 이해하는 좋은 단서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유계 선생은 인조 8년(1630)에 진사과에 합격하고 인조 11년 식년문과에 급제해 벼슬길에 올랐습니다. 관료 생활 동안 그는 부국강병, 군정의 폐단 시정 등 군사적인 문제와 언로의 확대를 통한 공론 정치의 활성화, 붕당정치의 극복, 민생 문제에 주로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이는 광해군 때 대북 정권의 폐해와 집안 내의 복잡한 당색, 인조 14년 병자호란을 직접 겪었던 면이 크게 작용한 결과라 하겠습니다.

초임 때 실리보다 명분을 우선시하는 정치관을 보였으며, 병자호란 때 척화를 주장하다가 화의가 이뤄지면서 유배를 당했지만, 이후 점차 공론 정치의 활성화와 민생의 안정을 도모했던 민본주의적 정치가, 어려운 정국 상황에 대안을 제시한 경세가(經世家)로 변모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학문적 관심은 천문, 지리, 의약, 복서, 음양, 이수, 상수 등 매우 광범위했습니다. 어려서부터 경학에 치중했으며, 집에서는 윤리를 바로 하고 은의를 돈독하게 했습니다. 조정에서는 임금의 마음을 바로잡고 백성의 어려움을 등한시하지 않고자 했습니다.

그의 묘비명이 '이(利)보다는 항상 의(義)를 도모했다'라는 것으로 보아 그의 학문적 태도와 자세, 시국관을 미루어볼 수 있습니다.

선생은 율곡 이이의 학통을 잇는 정치사상을 피력하면서 당시 사회, 경제정책을 개혁해간 정치가이기도 합니다. 특히 선생은 정심으로 근본을 세우고 관리 임용을 핵심으로 한 다음 민을 도탄에서 구하고 이상사회를 이루는 것을 정치의 급무로 삼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선생은 백성을 구하는 폐단을 개혁해야 하며, 조종의 법이라도 폐단이 있으면 반드시 개혁해야 한다고 주창했습니다.

이러한 개혁으로 공납과 군역의 개혁을 들고 있습니다. 특히 공납이 오래되면서 문란해지고 방납의 폐단이 생겼는데 이를 개혁하기 위한 대안으로 대동법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창했습니다이러한 민본주의적인 유계 선생의 철학과 사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현대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할 것입니다.



==양승조
양승조 충남도지사
-기해봉사로 널리 알려진 초려 이유태 선생의 경세사상에 대해서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양승조 충남지사=충남도를 대표하는 유현 중 한 분이신 초려 선생은 예학에 밝은 성리학자셨지만, 동시에 당대의 문제를 정확히 지적해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던 실천적인 지식인이기도 합니다.

선생의 경세사상(經世思想)은 1659년에 북벌(北伐)을 위해 제진한 장문의 대상소문인 기해봉사(己亥封事)에 자세히 나타나 있습니다,

율곡 이이와 남명 조식 선생의 봉사와 함께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3대 봉사 중 하나로 꼽히는 기해봉사에 담긴 선생의 개혁 사상은 현대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하겠습니다.

기해봉사는 유교 국가였던 조선사회에 '성인의 법이라도 시대의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한다'고 지적하고 당시 정치와 사회의 문제점을 7가지로 정리해 지적하면서 날카로운 현실 인식을 보여주었습니다. 기해봉사의 핵심은 '구폐(救弊)' 즉 '폐단을 바로잡는' 방법들을 제시한 부분입니다. 여기서 선생은 풍속을 바로잡고 인재를 기르며, 오랜 폐단을 혁파해야 한다는 3가지 강령을 세운 후 다시 각 강령의 실행을 위한 세부 17가지 조목을 상세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즉, 풍속을 바로잡기 위해 향약 보급을 비롯해 오가작통법을 시행하고 사창(社倉)을 운영하며, 인재를 배양하기 위해서는 학생을 기르는 향교와 인재를 초빙하는 연영원(延英院)을 운영하고 과거제와 오위(五衛)제를 잘 운영해 문무를 두루 갖춘 인재를 선발하면서 그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군자별창(軍資別倉)도 설치해야 함을 주장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가장 시급한 경제문제는 '양극화'입니다. 상위 1%가 소득의 12.2%를 차지하고, 상위 10%의 소득집중도가 43.3%에 달하고 있는 현실에서 지속 가능한 국가의 미래는 없을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기해봉사의 내수사 혁파는 양극화 해소를 목표로 삼고 있는 민선 7기 충남 도정의 기본 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경제 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약자에 대한 배려입니다. 기해봉사에서 볼 수 있는 민생 경제에 대한 배려는 초려 선생의 경제사상의 기본이며, 또한 충남 경제 정책의 기본 정신이기도 합니다.





==이시종
이시종 충청북도지사
-우암 송시열 선생에 대해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시종 충북지사=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선생은 조선 후기 큰 영향력이 있었던 정치가이자 학자입니다. 그의 유학사상은 율곡 선생의 학통을 계승해 기호학파의 주류를 이루었으며, 인조부터 숙종까지 4대에 걸쳐 노론의 대표로 정계에서 활약했습니다.

17세기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피해를 극복하고 국가 재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또 변화하고 있는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했습니다. 혼란스러운 현실에 직면한 조선은 강력한 국가 지도 이념을 구상하고 추진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 인물이 송시열 선생이었습니다.

우암 선생은 민생 안정과 국력 회복을 국정의 중점으로 생각해 여러 정책을 제시했습니다. 예(禮)를 통치의 이념으로 내세워 무너진 사회 질서를 회복하고, 사회 정의를 구현하고자 선생의 활동은 국가 재건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충북도는 선생과 인연이 깊은 곳입니다. 선생의 출생지가 옥천군 이원면입니다. 괴산군 화양동은 송시열이 거처를 마련해 오랫동안 활동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선생은 화양동에 암서재(巖棲齋)를 짓고 거주하면서 곳곳에 많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경천벽 아래쪽에 '화양동문(華陽洞門)'이라 쓴 선생의 글씨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바위마다 '만절필동(萬折必東)', '비례부동(非禮不動)' 같은 선현의 필체나 제왕의 어필을 새겼습니다.

이러한 흔적들은 선생이 얼마나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소신 있는 학자였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선생의 영향력은 충북뿐만 아니라 전국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선생의 영향력은 사후에 더 커졌습니다. 선생은 화양서원을 비롯하여 전국 70여 개 서원에 제향됐습니다. 송자(宋子)로 존칭되고 그의 문집이 '송자대전'으로 발간됐습니다. 이러한 점들은 선생의 역사적 지위가 더욱 견고하게 확립되고 존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선생은 조선 후기 영향력이 컸던 인물로서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도 긍정.부정적으로 다양하게 논의됐습니다.

그렇지만 선생은 국가 재건을 숙명으로 삼아 적극적으로 방안을 모색하고 소신을 지킨 선비의 표상인 것은 분명합니다.





-마지막으로 미촌 윤선거 선생의 학문과 사상에 대해서도 정리하겠습니다.
==이연우
이연우 초려문화재단 이사장
▲이연우 초려문화재단 이사장=미촌(美村) 윤선거(는 '호서5현'가운데 한 분으로 팔송 윤황의 아들이며, 우계 성혼의 외손자로 명재 윤증의 아버지입니다.

17세기 초 조선 예학으로 대표되는 김집의 총예를 받은 문인으로 사계와 신독재 문하의 송시열, 송준길, 이유태 등과 교류하며 율곡의 성리학과 사계의 예학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문집에 나타난 선생의 학풍의 중요 특성은 탈성리학(脫性理學)적 경향으로 무실(務實)을 중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선생은 소학, 가례, 근사록, 심경 등 4가지 책이 하나의 문호를 세울 수 있다고 평하고 시남 선생 등과 가례, 근사록, 태극도를 공부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전문집을 통해 성리학에 관한 전문적인 글은 아예 빠졌거나 찾아볼 수 없음이 매우 특이하다고 하겠습니다. 선생은 그만큼 현실적 학문을 중시하고 실학과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중요하게 생각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선생은 학자의 근심과 걱정이 실심을 세우는 데 있고, 궁행의 독실에 있어 '실심궁행'을 학문의 요체로 삼았습니다. 조정은 허명(虛名)과 허식을 숭상해 실심이 서지 못함을 근심했으며, 사진선소(辭進善疏)에서는 "진실로 허명으로 선비를 구함을 그치지 아니하면 비록 임금이 두터운 예로 어진 사람을 부르고 날로 초야에 내리더라도 족히 조가(朝家)의 글을 갖춘 하나의 정사일 뿐이니 국사에 무슨 보탬이 있겠는가? "라며 매사에 형식과 허례에 치우치는 폐단을 비판하고 경계했습니다.

이는 조선 중기 이후 최고의 경세사상가인 초려 이유태 선생과도 그 뜻을 같이합니다.

정의가 바로 서지 못하면 명분도, 기강도, 법의 권위도 모두 설 수 없다고 진단했습니다.

당시 정치적 파장이 심각하고 권간의 횡포가 극심한 상황에서 군자와 소인, 정의와 불의, 공정과 반공정, 선과 악의 가치적 질서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역설한 분은 오직 미촌 선생 뿐임은 동시대 기호유학으로 대표되는 선비들이라면 모두 다 아는 일입니다.
정리=한세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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