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내일] 가을은 정말 이상한 계절

  • 오피니언
  • 오늘과내일

[오늘과내일] 가을은 정말 이상한 계절

송미나 대전중앙청과 대표

  • 승인 2022-10-23 09:28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송미나 중앙청과 대표
송미나 대표
가을이다. 그리고 지친 하루였다. 아침부터 시작된 회사의 일들은 끝나지 않을 듯 계속되었고 어제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은 오늘 역시 해결되지 않았다. 새로운 일들이 계속해서 발생했고 결정을 해야 할 일에 단호하지 못했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자는 프로답지 못한 마음으로 회사를 나왔다. ‘불친절한 세상에서 스스로를 지킨다는 게 참 어렵구나’라는 막막한 생각과 산다는 게 뭘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면서 쓸쓸한 발걸음을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막상 회사에서 나와서 집에 도착하려던 순간 집으로 들어가기가 머뭇거려졌다.

마침 경찰의 날을 맞이하여 유성경찰서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고 지인이 같이 가자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왠지 집에 이런 허탈감으로 들어가기가 싫어져서 집 근처 유성경찰서 뒷마당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동네 주민들과 어우러진 작은 음악회는 수통골에서 버스킹을 하고 있는 부부의 통기타 연주로 잔잔하게 시작되었다. 노래를 들으면서 올려본 하늘은 어둠으로 사라지기 전의 아쉬움을 달래듯 조금은 붉고 여전히 푸르고 그러면서 점점 회색빛으로 변해가는 마법을 부리고 있었다.

문득 통기타의 잔잔한 선율, 오묘한 하늘빛 그리고 제법 쌀쌀한 바람을 타고 나는 어느새 30여 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났다. 아! 이곳은 유성경찰서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 내가 다니던 유성여고의 등굣길이었다는 게 갑작스레 떠올랐다.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진 주변 풍경에 잊고 있었던 여고 시절의 내가 생각났다. 학교에 늦어서 뛰어가던 길,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나와서 팥빙수를 먹으러 가던 길, 비장한 마음으로 학력고사 대신 처음으로 치러지는 수능시험을 준비했던 길이었다. 비가 오면 다리에 물이 넘친다고 일찍 학교에서 보내주던 낡은 다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이 공간에서 나는 얼마나 많은 추억을 남겨놓았던 것이었을까 그냥 같이만 있어도 좋았던 고등학교 시절 친구의 얼굴이 그리워진다. 그 친구는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새삼 궁금해졌다.

어느덧 작은 음악회에서는 "나는 사업만 하느라 전문적으로 노래를 배운 것은 아닙니다만 노래가 그렇게 좋습니다"라고 하시며 준비하신 중절모를 쓰시고 수줍게 웃으시던 어르신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이 세상에 그 누가 부러울까요. 나는 지금 행복하니까"라는 가사를 이처럼 행복한 표정으로 부르는 사람을 본 적이 있었던가. 어르신의 표정에는 마치 숨겨진 너의 꿈은 무엇이냐고 너도 지금 행복하냐고 질문을 하는 것 같았다.

나의 꿈, 나의 행복이 무얼까 하는 생각이 깊어지기도 전에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학원에서 아들이 돌아올 시간이기에 부랴부랴 발길을 집으로 돌렸다. 하지만 발걸음은 훨씬 가벼웠다. 가을밤의 작은 음악회는 나에게 조금은 연약해도 되고 가끔은 안쓰러워도 괜찮다고 위로를 해주는 것 같았다.

서둘러 저녁밥을 차려주고 오늘따라 반찬 투정 없이 맛나게 먹는 아들이 고마웠다. 잠시 쉬었다가 설거지를 하려는데 무언가 아쉬워서 음악회가 끝나고 오면서 들렀던 편의점에서 산 맥주캔 하나를 살며시 들어본다. 휴대폰을 가져와서 부엌에서 유튜브로 어르신이 부르셨던 이문세의 '행복한 사람'을 틀어놨다.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다가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설거지를 하고 이러는 내 모습이 조금은 낯설어 피식 웃어본다.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데 무언가가 변했고 오늘 하루 종일 고민했던 일들이 내일이면 다 해결될 것 같은 날이었다. 완벽하지 않은 나를 보듬어주고, 누군가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아마도 이것은 가을밤의 작은 마법 같은 음악회 덕분이 아닐까? 쓸쓸함을 주었다가 위로를 주었다가 모든 이를 사랑하게 만든다는 가을은 참 이상한 계절이라는 법정 스님의 '가을은' 이란 글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정말 가을은 참 이상한 계절이다.

/송미나 대전중앙청과 대표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교단만필] 서글프지 않은 이별을 배우기까지
  2. '민주 박수현·국힘 김태흠' 충남지사 후보자 등록 완료
  3. 충남교육감 후보자 등록 첫날, 이병도·김영춘·이병학 등록 마쳐… 이명수 15일 등록으로 변경
  4. [스승의날-대전교사 신문고] 명퇴·퇴직 희망 교사 절반 이상… 빛바랜 스승의날 '씁쓸한 교사들'
  5. 목원대 라이즈 사업단, 동아리로 학생 창업 역량 키운다
  1. [스승의날-대전교사 신문고] "말도 안 되는 민원 안 받게…" "민원 안전장치 필요"
  2. 2022년 화재참사 현대아울렛 점장·소방업체 소장 실형 구형
  3. 대덕경찰, 오정중서 청소년 사이버도박 자진신고 상담
  4. 중국에서 돈 벌겠다 출국 후 보이스피싱 가담한 30대 징역형
  5. [스승의 날] '스승이 제자에게' 대전교사노조 범시민 교권회복 캠페인

헤드라인 뉴스


진영 바꾸고 공수 전환… 충청 광역단체장 `꿀잼 매치`

진영 바꾸고 공수 전환… 충청 광역단체장 '꿀잼 매치'

6·3 지방선거 후보 등록이 14일 시작된 가운데 여야 최대 승부처 충청권 시도지사 매치업 구도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거대 양당 후보가 정권교체로 이른바 공수교대 뒤 재대결이 이뤄졌거나 정치가와 행정가의 승부, 보수와 진보 진영을 서로 바꿔 경쟁하는 경우까지 꿀잼 매치가 즐비하다. 대전시장 선거에서 맞붙는 더불어민주당 허태정 후보와 국민의힘 이장우 후보는 4년 만의 리턴매치다. 흥미로운 점은 두 후보가 공수를 교대했다는 점이다. 2022년 제8회 지선에선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당시 여당이었던 이 후보가 연임을 노리던 허 후보에..

`제2회 올댄스페스티벌 전국댄스경연대회` 16일 대전서 막오른다
'제2회 올댄스페스티벌 전국댄스경연대회' 16일 대전서 막오른다

대전시댄스스포츠연맹은 16일 한밭체육관에서 '제2회 올댄스페스티벌 전국댄스경연대회'를 개최한다. 대전댄스스포츠연맹이 주최·주관하고 대전시와 대전시체육회가 후원한 이번 대회는 댄스스포츠를 비롯해 라인댄스, 힙합, 방송댄스, 코레오 등 다양한 장르의 댄스가 함께한다. 전국 각지에서 선수와 관계자 등 1000여 명이 참가할 예정이며, 참가자들은 장르별 무대를 통해 그동안 갈고닦은 기량과 개성 넘치는 퍼포먼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특히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도 함께 마련돼 눈길을 끈다. 대회 마지막 순서로 진행되는 라인댄스 무료 워크숍은 참가..

금강벨트 4개 시도지사 후보등록 직후부터 뜨거운 난타전
금강벨트 4개 시도지사 후보등록 직후부터 뜨거운 난타전

6·3 지방선거 공식 후보 등록 첫날인 14일, 충청권 광역단체장 4석이 걸린 금강벨트에서 여야 후보들이 일제히 등록을 마친 뒤 거세게 충돌했다. 각각 내란청산과 정권심판 프레임을 내 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후보들이 충청 지방 권력 쟁탈 혈전에 돌입하면서 헤게모니 싸움을 시작한 것으로 풀이된다. 4년 전 4개 시도지사를 모두 내주며 참패한 여당은 설욕을 위해, 당시 대승을 거둔 제1야당은 수성을 위한 건곤일척 혈투가 본격화된 것이다. 각 시도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대전, 세종, 충남, 충북 등 4개 시·도 광역단체장 후보들은..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바쁘다 바빠’…선거운동 앞두고 유세차량 제작 분주 ‘바쁘다 바빠’…선거운동 앞두고 유세차량 제작 분주

  • 전국동시 지방선거 대비 대테러 합동훈련 전국동시 지방선거 대비 대테러 합동훈련

  • 오늘은 내가 대전시의원…‘의정활동 체험 재미있어요’ 오늘은 내가 대전시의원…‘의정활동 체험 재미있어요’

  • ‘딸과 함께 후보자 등록’ ‘딸과 함께 후보자 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