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우리 '반'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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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만필] 우리 '반'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

서정민 해밀초 교사

  • 승인 2023-03-02 08:16
  • 이승규 기자이승규 기자
서정민 사진
서정민 교사
벌써 4년째 '스스로 더불어', '또래 학습'이라 불리는 수학협력수업을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이 짝과 함께 서로 질문하고 답하는 수업 형태의 전환, 배움이 잘 일어날 수 있도록 개별 확인과 질문을 위한 옆 반 선생님과의 코티칭이 핵심이다. 서로 질문하고 답하면서 형성된 학생-학생 사이의 친밀함과 협력하는 분위기, 사전 협의와 사후 협의를 포괄하는 수업 나눔을 통해 형성된 주교사와 보조교사 사이의 공동체 의식은 수학협력수업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는 그중에서도 수학협력수업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었던 나와 짝반 아이들의 관계 맺기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작년 나의 짝반은 같은 복도에 있는 6학년 마루반이었다. 지난 한 해 동안 나는 6학년 다솜반의 담임 교사임과 동시에 일주일에 세 시간씩 마루반의 수학 시간에 보조교사로 함께 했다. 짝반 아이들을 관찰해보니 학습결손이 누적된 아이들이 몇몇 보였다. 나는 주교사인 마루반 담임 교사와의 협의 끝에 학습결손이 누적된 몇몇 아이들을 전담하기로 했다. 그중에서도 한 아이를 집중적으로 도와주었다. (글에서는 '해밀이'라 칭하겠다)

해밀이는 어디서부터 학습결손이 생겼는지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어떤 때는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반면, 어떤 때는 곱셈과 나눗셈 계산에도 어려움을 보였다. 적극적으로 선생님을 찾거나 주위 친구들에게도 잘 묻지 않아서 잠시 다른 학생을 봐주고 오면 엉뚱한 답을 써놓거나, 빈칸으로 남겨둔 채 가만히 있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해밀이 옆에 앉아 차근차근 함께 문제를 해결했다. 때론 3~4학년의 곱셈과 나눗셈 방법을 다시 알려주기도 하고, 이제는 혼자서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끙끙거리며 문제와 씨름하는 걸 가만히 기다려주기도 했다.

수학 시간만큼은 어쩌면 담임 교사보다 나와 함께한 시간이 더 길 텐데도 불구하고 1학기가 다 지나도록 해밀이는 좀처럼 내 눈을 마주쳐 준 적이 없었다.

여름방학이 지나고 다시 짝반 아이들을 만났다. 이제는 헷갈리지 않고 짝반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줄 수 있게 되었다. 해밀이와의 수학 시간도 다시 시작되었고 1학기와 마찬가지로 옆에 앉아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아니 다시 해볼게요! 잠시만요!", "와 진짜 맞았어요?" 아직 기본 개념이 부족해 여전히 문제 해결에 어려움을 겪지만, 이전과는 분명히 다른 배움에 대한 의욕이 느껴졌다. 여전히 눈을 마주치지 않지만, 내가 다가가면 이렇게 푸는 게 맞는지 먼저 질문하기 시작했다. 내가 무슨 반 담임인지도 모르던 해밀이가 어느 날 내 이름을 묻더니 학년이 끝날쯤엔 '서정민 선생님'이라며 내 이름도 불러주었다. 일 년간 자연스럽게 형성된 공동체 의식과 신뢰를 해밀이에게서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수학 시간마다 보조 교사로 함께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반 전담 시간이 되면 나는 협력 수업을 위해 짝반으로 향한다. 조용히 뒷문을 열고 들어가면 '정민샘 오셨다!' '정민샘 안녕하세요!'라고 반겨주는 아이들, 조용히 눈을 마주치고 찡긋 웃어 보이는 아이들이 있었다. 해밀이뿐만 아니라 우리 반이 아니지만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 아이들, 수학 시간에 어떻게 성장하고 변화했는지 자신 있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수학협력수업의 가장 큰 역할은 '관계 맺기'이다. 수학 시간마다 함께 공부했기에 형성된 보조교사인 나와 짝반 아이들의 이 묘하고도 끈끈한 관계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학년 초 교육과정 설명회 또는 해밀마실이라 불리는 학부모와의 만남이 있을 때 학부모님께 꼭 부탁드리는 것이 있다. '내' 아이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로 학급의 모든 아이들을 따뜻하게 바라봐 달라는 것이다.

수학협력수업을 통해 교사인 나도 내 학급 아이들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학년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게 되었고, 다양한 아이들과 더불어 살아가기에 한 발 더 다가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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