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시네레터] 슬픔을 빙자한 지적 유희 '슬픔의 삼각형'

  • 오피니언
  • 김선생의 시네레터

[김선생의 시네레터] 슬픔을 빙자한 지적 유희 '슬픔의 삼각형'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 승인 2023-06-22 08:39
  • 정바름 기자정바름 기자
KakaoTalk_20230621_103456161
이 영화는 대단히 정치적입니다. 계급과 권력, 자본의 문제가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그러나 현실이라기보다 우화에 가깝습니다. 1부, 2부, 3부로 구성된 비교적 긴 내용에서 가장 현실과 유사한 것은 1부의 모델 커플 에피소드입니다. 2부 호화 유람선, 3부 무인도 이야기는 주제를 구현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공간이 조작되고, 거기서 벌어지는 일들 역시 작위적입니다.

이 작품은 이른바 신좌파(new left) 혹은 지적 좌파의 논리와 접근 방식을 보여줍니다. 러시아의 소비에트 혁명으로 대표되는 정치적 좌파는 계급 혁명을 위한 투쟁을 목표로 하는 데 비해 1930년대 이후 유럽의 유대인 지식인들이 중심이 된 프랑크푸르트학파 등의 지적 유물론은 물질적 조건 하의 인간 문제에 대해 논리적으로 체계화했습니다. 명쾌하고 상징적이며, 이론적으로 파급력을 지녔지만, 복잡다단하고 변화무쌍한 현실을 과도하게 단순화한 한계를 지닙니다.

1부의 중심인물인 칼과 야야가 2부, 3부까지 출연하면서 계급화된 상황 속에서 어떻게 권력이 이동하고 작용하는지를 경험하는 영화의 내용은 갈수록 현실성을 상실하고 상징적이고 우화적으로 진행됩니다. 인물들은 개성적 주체가 아니라 계급의 전형으로 도식화되어 표현되고, 그들의 행동과 언어 역시 그러합니다. 가장 문제적인 것은 감독이 상황을 전지적 위치에서 관찰하고 조소한다는 점입니다. 코스모스 한 잎에도 우주의 섭리가 담기고, 인간 개개인이 소우주일 수 있음을 간과합니다. 물론 시대나 사회적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한 점이 있다 해도 인간은 거대한 체스판의 말이 아니며 존엄과 의지를 상실한 채 욕망에만 허우적대는 존재는 아니란 점을 놓치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지난해 칸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인 이 작품은 켄 로치 감독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와 분명히 다릅니다. 물질적 조건 속의 계급 구조를 다루면서도 인간의 존엄을 놓치지 않는 이들 작품이 주는 감동과 슬픔이 없습니다. 블랙 코미디 작품답게 조소와 풍자가 있을 뿐입니다.

많은 이들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과 이 영화의 유사점을 지적합니다. 과도함, 우스꽝스러움, 비웃음 등. 그러나 현실과 유사하지만 현실과 유리된 한계를 분명히 드러냅니다. 인간이 조건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흔들리기도 하고, 비참하게 굴종하기도 하지만 분연히 투쟁하고 저항하며 존엄한 가치를 위해 삶을 버리기도 하는 존재임을 알지 못합니다.



/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당신을 노리고 있습니다”…대전 서부경찰서 멈춤봉투 눈길
  2.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3. 대전·충북 회복기 재활의료기관 총량 축소? 환자들 어디로
  4. 충남도, 국비 12조 확보 위해 지역 국회의원과 힘 모은다
  5. 경영책임자 실형 선고한 중대재해처벌법 사건 상소…"형식적 위험요인 평가 등 주의해야"
  1. 충남도의회, 학교 체육시설 개방 기반 마련… 활성화 '청신호'
  2.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3. 대전동부교육지원청, 학교생활기록부 업무 담당자 연수
  4.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5. 충남권 역대급 더운 여름…대전·서산 가장 이른 열대야

헤드라인 뉴스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전국 4년제 대학 중도탈락자 수가 역대 최대인 10만 명에 달했던 지난해 수도권을 제외하고 충청권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학교를 떠난 것으로 조사됐다. 대전권에선 목원대와 배재대, 대전대 등 4년제 사립대학생 이탈률이 가장 높아 지역 대학 경쟁력에서도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4일 종로학원이 발표한 교육부 '대학알리미' 분석에 따르면, 2024년 전국 4년제 대학 223곳(일반대, 교대, 산업대 기준, 폐교는 제외)의 중도탈락자 수는 10만 817명이다. 이는 집계를 시작한 2007년 이후 역대 최대 규모인데, 전년인 2023년(10..

꿈돌이 컵라면 5일 출시... 도시캐릭터 마케팅 `탄력`
꿈돌이 컵라면 5일 출시... 도시캐릭터 마케팅 '탄력'

출시 3개월여 만에 80만 개가 팔린 꿈돌이 라면의 인기에 힘입어 '꿈돌이 컵라면'이 5일 출시된다. 4일 대전시에 따르면 '꿈돌이 컵라면'은 매콤한 스프로 반응이 좋았던 쇠고기맛으로 우선 출시되며 가격은 개당 1900원이다. 제품은 대전역 3층 '꿈돌이와 대전여행', 꿈돌이하우스, 트래블라운지, 신세계백화점 대전홍보관, GS25 등 주요 판매처에서 구매할 수 있다. 출시 기념 이벤트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 유성구 도룡동 엑스포과학공원 내 꿈돌이하우스 2호점에서 열린다. 행사 기간 ▲신제품 시식 ▲꿈돌이 포토존 ▲이벤트 참여..

서산 A 중학교 남 교사, `학생 성추행·성희롱` 의혹, 경찰 조사 중
서산 A 중학교 남 교사, '학생 성추행·성희롱' 의혹, 경찰 조사 중

충남 서산의 한 중학교에서 남성 교사 A씨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개월간 성추행과 성희롱을 했다는 고소장이 접수돼 경찰이 수사 중이다. 일부 피해 학생 학부모들은 올해 학기 초부터 해당 교사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반복된 부적절한 언행과 과도한 신체접촉을 주장하며, 학교에 즉각적인 교사 분리 조치를 요구했다. 이에 학교 측은 사건이 접수 된 후, A씨를 학생들과 분리 조치하고, 자체 조사 및 3일 이사회를 개최해 직위해제하고 학생들과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했으며, 이어 학교장 명의의 사과문을 누리집에 게시했다. 학교 측은 "서산교육지원청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 동구 원도심에 둥지 튼 대전일자리경제진흥원 대전 동구 원도심에 둥지 튼 대전일자리경제진흥원

  •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 늦더위를 쫓는 다양한 방식 늦더위를 쫓는 다양한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