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경찰정책에도 철학이 필요하다

  • 오피니언
  • 프리즘

[프리즘] 경찰정책에도 철학이 필요하다

이상훈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전 한국경찰학회장

  • 승인 2023-09-26 10:15
  • 신문게재 2023-09-27 19면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이상훈
이상훈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전 한국경찰학회장
'경찰'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궁금하다. 신고에 출동하고 범인을 추격하여 체포하거나 피의자를 수사하는 것을 떠올렸다면 반은 맞지만 반은 틀렸다. 놀랍게도 대학에서 경찰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조차도 일반 국민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같이 신고에 반응하는 경찰은 시민들의 개별적인 신고와 서비스 요구에 얼마나 빠르게 대응하느냐를 제일 큰 덕목으로 삼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경찰 운용은 당장의 현안을 신속하게 해결하는 것에 급급하고 사후반응적(reactive)이어서 이미 발생한 피해를 원상회복하지는 못한다. 특히 사건을 양산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외면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렇다 보니 모방범죄 등 유사한 사건이 반복될수록 시민들의 불안과 불만은 늘어가고, 경찰관들조차도 많은 시간을 신고를 기다리는 데 사용하기 때문에 지치고 무기력해지기 일쑤다.

의경제도 폐지로 경찰력의 양적 투입을 통한 치안활동은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빠듯한 국가재정에 경찰관을 무한정 늘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강력한 공권력 확보를 위해 '경찰관 1인 1권총'을 소지하는 정책이 추진되는 상황이다. 여기에서 한걸음만 더 나아가면 좋겠다. 소위 문제지향적 경찰활동(problem-oriented policing)을 통해 범죄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정조준할 필요가 있다.

문제지향적 경찰활동은 범죄나 무질서라는 증상(symptom)에 대증적으로 접근하는 것보다는 그 원인(causes)을 찾아 범죄와 무질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경찰철학이다. 구멍에서 무한반복적으로 튀어나오는 두더지를 망치로 때려잡는 두더지 게임에서는 결국 망치를 든 사람이 진다. 사회 곳곳에서 끝없이 발생하는 범죄와 무질서에 대응인력 투입 위주로 대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최근 현장경찰 중심의 경찰조직 개편 움직임이 이러한 대안적 경찰철학과 연계된다면 정책효과를 더욱 두텁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국민 불안을 급하게 해소하려는 단기의 정책목표만 가지고 출동할 수 있는 경찰관 확보에만 머문다면 절반의 성공에 그칠 것이다. 이번 조직개편의 골자는 지구대·파출소와 112치안상황실을 통합·운영하여 기존의 사건중심의 신속대응 경찰활동을 강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형사기동대와 기동순찰대로 운영하는 특화된 범죄예방활동을 강화하겠다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현장 중심 조직개편이 정책효과를 담보하기 위해서는 제반 경찰기능도 가세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경찰의 정보기능의 경우는 피의자, 피해자, 목격자 등 현안 사건 해결에만 집중하지 말고 사건의 저변에 놓인 지역 내의 근본적인 문제를 탐지하고 해결하려는 정책이나 전략의 생산과도 맞물려 돌아가는 식이다.

세상에 범죄는 한여름 모기처럼 넘쳐난다. 모기가 나타날 때마다 모기약을 뿌리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은 한계가 있다. 물웅덩이를 없애는 등 서식지를 줄여나가야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 신고받고 출동하는 전통적 경찰운용은 범죄자와 범죄피해자를 오히려 양산하는 결과를 낳는다. 사건 현장에 신속하게 출동하여 범인을 체포하고 처벌을 위해 증거를 수집하는 데 치중할 뿐, 발생한 사건의 근본적 문제에 대한 대안적 방안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공동체는 범죄와 무질서의 오징어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시민의 신고에 대증적 조치만 해 왔다면 이제는 경찰출동을 요청하게 된 지역사회의 문제를 파악하여 이를 영구적으로 해결하려는 대안을 찾는 것이 경찰의 역할이 되어야 한다. 경찰조직과 경찰을 둘러싼 경찰생태계가 완전히 바뀌었다. 우리는 상대적으로 나은 치안여건을 자랑하지만 범죄발생은 여전히 우리사회의 가장 큰 불안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불안한 국민들의 화급한 요구에 당장의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불가피한 입장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치안전문가임을 자부하는 경찰지휘부와 경찰정책가들만큼은 중장기적 안목과 철학을 가지고 국회와 정부를 설득하는 충심을 보여야 할 것이다.

이상훈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전 한국경찰학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갑천 야경즐기며 워킹' 대전달빛걷기대회 5월 10일 개막
  2. 수도 서울의 높은 벽...'세종시=행정수도' 골든타임 놓치나
  3. 충남 미래신산업 국가산단 윤곽… "환황해권 수소에너지 메카로"
  4. 이상철 항우연 원장 "한화에어로 지재권 갈등 원만하게 협의"
  5.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1. 충청권 학생 10명 중 3명이 '비만'… 세종 비만도 전국서 가장 낮아
  2. 대학 10곳중 7곳 올해 등록금 올려... 평균 710만원·의학계열 1016만원 ↑
  3.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4. [춘하추동]삶이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5. 2025 세종 한우축제 개최...맛과 가격, 영양 모두 잡는다

헤드라인 뉴스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이제는 작업복만 봐도 이 사람의 삶을 알 수 있어요." 28일 오전 9시께 매일 고된 노동의 흔적을 깨끗이 없애주는 세탁소. 커다란 세탁기 3대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노동자 작업복 100여 벌이 세탁기 안에서 시원하게 묵은 때를 씻어낼 때, 세탁소 근로자 고모(53)씨는 이같이 말했다. 이곳은 대전 대덕구 대화동에서 4년째 운영 중인 노동자 작업복 전문 세탁소 '덕구클리닝'. 대덕산업단지 공장 근로자 등 생산·기술직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일반 세탁으로는 지우기 힘든 기름, 분진 등으로 때가 탄 작업복을 대상으로 세탁한다...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올 시즌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는 프로야구 한화이글스가 9연전을 통해 리그 선두권 경쟁에 돌입한다. 한국프로야구 10개 구단은 29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휴식 없는 9연전'을 펼친다. KBO리그는 통상적으로 잔여 경기 편성 기간 전에는 월요일에 경기를 치르지 않지만,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프로야구 5경기가 편성했다. 휴식일로 예정된 건 사흘 후인 8일이다. 9연전에서 가장 주목하는 경기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리는 LG 트윈스와 승부다. 리그 1위와 3위의 맞대결인 만큼, 순위표 상단이 한순간에 뒤바..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생이 교직원과 시민을 상대로 흉기 난동을 부리고, 교사가 어린 학생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학생·학부모는 물론 교사들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찰과 충북교육청에 따르면 28일 오전 8시 33분쯤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특수교육대상 2학년 A(18) 군이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 4명과 행인 2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A 군을 포함한 모두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계성 지능을 가진 이 학생은 특수교육 대상이지만, 학부모 요구로 일반학급에서 공부해 왔다. 가해 학생은 사건 당일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해 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 ‘꼭 일하고 싶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

  •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