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화이트 큐브 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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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하추동]화이트 큐브 전시장

백향기 대전창조미술협회 회장

  • 승인 2023-10-10 17:38
  • 신문게재 2023-10-11 18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백향기 대전창조미술협회장
백향기 대전창조미술협회 회장
이번 달에 개인전이 계획되어 있어 작업에 매달려 지내고 있다. 매번 전시를 준비할 때마다 작업을 통하여 탐색한 내용과 이전과 달라진 작품들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서 소통하거나 인정을 받고 싶은 욕심이 늘 마음 한 쪽에 자리잡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전시할 그림을 준비하는 일 외에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전시장을 선택하는 일과 그림을 몇 점이나, 어떤 방식으로 디스플레이할 것인가 하는 일이다. 이것은 행사를 위한 부수적인 일들과는 달리 그림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이어서 신중하게 생각을 많이 해서 미리 계획하고 수정을 반복하고도 전시장에서 그림을 걸면서 조정하는 일을 계속하게 된다. 그림이 좋으면 나머지는 부수적인 일들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가 않다. 그림이 어느 공간에 어떤 방식으로 걸리는가는 그림의 분위기와 느낌, 전달하는 메시지 등에서 상당한 차이가 날 수 있어 신중한 계획과 결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림이란 캔버스에 그리는 일이지만 그것이 걸리는 공간의 특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그림을 모아서 전시하는 방식은 18세기부터 본격화했다고 하는데 영국의 대영박물관이나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은 모두 이 시기에 개관했다. 당시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 박물관은 세계적인 작품들을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벽면 가득 그림을 최대한 많이 걸어두고 볼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전시 방식은 많은 그림을 한 번에 보여주는 데에는 유리할 수도 있지만 산만할 뿐 아니라 그림이 가지고 있는 독자적인 이미지나 느낌을 전달하는 데에는 효과적이지 못할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 따라서 전시하는 그림을 눈높이에 한 줄로만 걸어서 전시작품을 대폭 줄이는 방법이 시도되기 시작하였는데 그 결과로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벽면들이 그림의 배경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액자들이 대부분 금색으로 칠해져 있는 것을 감안해 서로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고급스러운 붉은 색으로 벽면을 칠했다고 한다. 그런데 1930년대 독일을 중심으로 그림에 집중하기 좋은 장점으로 인해 흰벽이 표준색으로 지정되고 이 방식이 확산되어 결정적으로 미국 뉴욕의 현대미술관에서 이를 중심적 전시 방식으로 받아들이면서 전 세계로 정착되어 나갔다. 그리고 전시하는 그림의 수도 대폭 줄이는 시도들이 나타나서 심한 경우에는 벽면 한 곳에 그림을 한 점만 거는 파격적인 시도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전시 공간을 흰색으로 칠하고 다른 요소들을 최소화하는 방식을 화이트 큐브(white cube) 시스템이라 한다. 어느 이론가는 화이트 큐브 방식을 마치 중세 교회를 짓는 것과 똑같이 엄격한 원칙에 따라 건설하는 것이라 하면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바깥 세상이 전시장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단절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서 내부에 일체의 군더더기를 없애고, 창문을 없애고, 벽면을 흰색으로 칠하는 방식이 적용된다. 말하자면 그림에 집중하도록 공간이 내는 목소리를 최소한으로 삼가게 하는 것이 화이트 큐브 방식의 목적인 것이다. 이에 상응하여 작가는 전시하는 그림의 수를 줄임으로써 그림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공간과 작가는 그림을 위하여 최대한 삼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역설이라 할 수 있어서 작가가 전시작품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를 최대화하려면 전시하는 작품의 수를 늘리지 않고 삼가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막상 전시장에 그림을 걸 계획을 세우고 실제 전시장에 그림을 걸기 시작하면 욕심이 발동하는 경우가 많다. 한 작품 한 작품이 모두 많은 수고를 기울인 자식과 같은 생각이 들고 차마 전시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를 흔히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이트 큐브 방식이 단순히 전시공간을 희게 만든다는 단순한 의미보다는 자신을 삼가고 낮추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는 것을 이번 전시에서는 명심해야 할 듯하다./백향기 대전창조미술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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