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인공지능과 학벌시대의 종말

  • 오피니언
  • 시사오디세이

[시사오디세이] 인공지능과 학벌시대의 종말

김정태 배재대학교 글로벌비즈니스학과 교수

  • 승인 2024-01-08 17:07
  • 신문게재 2024-01-09 18면
  • 이현제 기자이현제 기자
clip20240108104137
김정태 교수
예전에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이 있었다. 주어진 환경이 매우 열악한 사람이 위대한 업적을 이루거나 매우 높은 지위에 올라 성공하는 일을 개천과 용에 빗댄 속담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옛말이 되었다. '대학 입학과 성과에 나타난 교육 기회 불평등과 대입 전형에 대한 연구'(조세재정 브리프, 2021년)는 부모의 교육수준과 수입이 대학입시를 좌우하며, 가구의 소득 수준이 낮으면 명문대에 진학하지 못할 확률이 최소 70%에 이른다고 보고했다.

2018년 서울대 주병기 교수는 부모의 학력, 소득 수준과 자녀의 수능 고득점과 고소득 획득 등 성공의 여부를 측정하는 개천용지수(기회불평등지수)를 소개했다. 이 지수는 소득 하위 20%에 속하는 학생이 학업성적 상위 20%에 오르지 못할 비율로 정의되며, 수치가 높을수록 기회 불평등의 정도가 크다는 의미다. 주 교수는 1990년 이후 26년 동안 한국의 기회 불평등 정도는 두 배 가량 커졌으며,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이런 추세는 지속하였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나는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이 추세는 동일할 것으로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학벌주의 사회이다. 대학교의 간판과 최초 직업이 평생의 성공을 결정하는 듯 보인다. 최근에 이런 사회 현상은 더욱 심화해 나타나고 있다. 2022년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에서는 2,131명이 의대 진학을 위해 학업을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대한민국의 사회상은 대학 서열화가 초래한 학벌주의와 특정 직업 쏠림 현상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출현한 챗GPT로 대표되는 인공지능 기술 발달의 가속화는 학벌주의를 빠르게 붕괴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2023년 한국은행이 발표한 'AI와 노동시장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직업별 AI 노출 지수를 근거로 고학력, 고소득 노동자일수록 인공지능에 더 많이 노출돼 대체 위험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큰 직업은 의사, 회계사, 변호사, 자산운용가 등 고소득 전문직이라는 분석결과가 나왔다. 반대로 인공지능으로 대체 가능성이 낮은 직업으로는 기자, 성직자, 대학교수, 가수나 경호원 등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의 결과는 인공지능은 인간의 단순 반복 업무를 넘어서 창의적인 직무까지도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지만, 대면 업무에 수반되는 인간적인 관계는 항상 필요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교육 분야는 인공지능에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가? 현재 대부분 대학교의 교육과정은 지식과 정보 전달 위주의 매뉴얼로 편성돼 있다. 그 속에서도 대면 교육을 하는 교수자의 지식 전달은 동영상 강의, 메타버스 교육 플랫폼 등을 통해서 대체 되고 있다. 그러나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의 막강한 능력은 교육계에 소리 없이 내 앞에 다가와 있는 회색 코뿔소와 같이 침투해 있다. 이런 변화의 물결에 올라타지 못하거나 거부하는 고등교육은 빠르게 소멸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 배울 지식의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인간 교수자와 인공지능의 능력의 차이는 두드러지게 차별화될 것이다. 정형화된 지식이나 이론 전달에 인공지능 교사는 반복적인 피드백을 정교하게 학습자에게 전달해 줄 수 있다.

반면에 인간 교수자는 학습의 철학적인 측면, 동기부여 코칭을 통해 학습자 개인의 역량 개발을 촉진할 수 있다. 인간 교수자는 학습자가 목표를 설정하도록 돕고, 포기하지 않고 학습을 지속하도록 하며, 학습과정에서 인간관계를 맺는 소통과 협력기술을 배우도록 돕고, 갈등 해결을 도우며 학습자의 정서를 공감하고 관리함으로 동기부여를 해 줄 수 있다.

조만간 우리 사회에서도 대학교의 간판이 아니라 인공지능 기술의 활용 여부가 새로운 학벌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도 채용시장에서는 명문대 간판이 아니라 뛰어난 소통능력으로 협력을 잘해 단단한 팀워크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재가 선호된다. 이에 더하여 회사는 학벌이 아닌 인공지능 기술을 자신의 비서로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재 양성을 요구할 것이다. 조만간 인공지능 기술이 촉발한 학벌주의의 몰락이 시작될 것이다. /김정태 배재대학교 글로벌비즈니스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준비 안된 채 신입생만 받아"… 충남대 반도체 공동 연구소 건립 지연에 학생들 불편
  2. [편집국에서]배제의 공간과 텅빈 객석으로 포위된 세월호
  3. '복지부 이관' 국립대병원 일제히 반발…"역할부터 예산·인력충원 無계획"
  4. '수도권 대신 지방의료를 수술 대상으로' 국립대병원 복지부 이관 '우려'
  5. [건강]대전충남 암 사망자 3위 '대장암' 침묵의 발병 예방하려면…
  1. ‘수험생 여러분의 꿈을 응원합니다’
  2. 태권도 무덕관 창립 80주년 기념식
  3. 설동호 대전교육감 "수험생 모두 최선의 환경에서 실력 발휘하도록"
  4. 대청호 녹조 가을철 더 매섭다…기상이변 직접 영향권 분석
  5. [대입+] 2026 수능도 ‘미적분·언어와 매체’ 유리… 5년째 선택과목 유불리 여전

헤드라인 뉴스


주가 고공행진에 충청권 상장기업 시총 174조원 돌파

주가 고공행진에 충청권 상장기업 시총 174조원 돌파

대외 불확실성이 완화되면서 코스피 지수가 사상 처음으로 4000선을 돌파하자 충청권 상장사들의 주가도 고공행진하고 있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의 대규모 매수세가 이어지면서 한 달 새 충청권 상장법인의 시가총액이 전월 대비 19조 4777억 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거래소 대전혁신성장센터가 11일 발표한 '대전·충청지역 상장사 증시 동향'에 따르면 10월 충청권 상장법인의 시가총액은 174조 5113억 원으로 전월(155조 336억 원) 보다 12.6% 늘었다. 10월 한 달 동안 충북 지역의 시총은 27.4% 상승률을 보였고,..

조선시대 해안 방어의 핵심 거점…`서천읍성` 국가유산 사적 지정
조선시대 해안 방어의 핵심 거점…'서천읍성' 국가유산 사적 지정

국가유산청은 충남 서천군에 위치한 '서천읍성(舒川邑城)'을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했다고 11일 밝혔다. 서천읍성은 조선 세종(1438~1450년) 무렵에 금강 하구를 통해 충청 내륙으로 침입하던 왜구를 막기 위해 쌓은 성으로, 둘레 1645m 규모에 이른다. 조선 초기 국가가 해안 요충지에 세운 방어용 읍성인 연해읍성 가운데 하나다. 산지 지형을 활용해 쌓은 점이 특징이며, 일제강점기 '조선읍성 훼철령(1910년)' 속에서도 성벽 대부분이 원형을 유지해 보존 상태가 우수하다. 현재 전체 둘레의 약 93.3%(1535.5m)가..

세종 청소년 인구 1위 무색… "예산도 인력도 부족해"
세종 청소년 인구 1위 무색… "예산도 인력도 부족해"

'청소년 인구 최다' 지표를 자랑하는 세종시가 정작 청소년 예산 지원은 물론 전담 인력조차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에 이어 청소년 예산까지 감축된 흐름 속에 인력·자원의 재배치와 공공시설 확충을 통해 지역 미래 세대를 위한 전사적 지원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11일 세종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아동청소년 인구(0~24세)는 11만 4000명(29.2%)이며, 이 중 청소년 인구(9~24세)는 7만 8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20%에 달하고 있다. 이는 전국 평균 15.1%를 크게 웃도는 규모로, 청소년 인구 비..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문답지 전국 배부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문답지 전국 배부

  • ‘보행자 우선! 함께하는 교통문화 만들어요’ ‘보행자 우선! 함께하는 교통문화 만들어요’

  • ‘수험생 여러분의 꿈을 응원합니다’ ‘수험생 여러분의 꿈을 응원합니다’

  • ‘황톳길 밟으며 가을을 걷다’…2025 계족산 황톳길 걷기대회 성료 ‘황톳길 밟으며 가을을 걷다’…2025 계족산 황톳길 걷기대회 성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