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시네레터] 약자 연대의 승리와 현실의 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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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생의 시네레터] 약자 연대의 승리와 현실의 각성

시민덕희

  • 승인 2024-02-01 16:51
  • 신문게재 2024-02-02 9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시민
'얼씨구나 절씨구야 돈 봐라 돈 봐라 / 잘난 사람도 못난 돈 못난 사람도 잘난 돈 / 맹상군의 수레바퀴처럼 둥글둥글 생긴 돈 / 생살지권을 가진 돈 / 부귀공명이 붙은 돈 / 이놈의 돈아 아나 돈아 / 어디 갔다 이제 오느냐 얼씨구나 돈 봐라.' 판소리 '흥부가'에 나오는 '돈타령' 한 대목입니다. 돈은 잘난 사람에게도, 못난 사람에게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돈이 힘든 사람에게는 생명처럼 소중하지만, 가진 자들의 탐욕에 결부되면 추악한 것이 됩니다. 이 작품은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시민 덕희의 피처럼 귀한 돈을 전화 사기로 빨아먹는 보이스피싱 사건을 다룹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흡사 흡혈귀 같습니다. 절박한 사람들의 상황과 심리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극악무도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없이 사는 이들의 돈이 탈취된 상황에 공공 기관인 경찰이 너무도 무심하다는 데 있습니다. 100억대 금융 사건을 수사하기에 바쁜 경찰에게 덕희의 돈 삼천 이백만원은 거들떠볼 것이 못 됩니다. "아줌마 때문에 피곤해 죽겠어. 우리 바쁜 거 안 보여요? 사건 종결됐는데 왜 자꾸 귀찮게 해?" 이럴 때 국가는 베네딕트 앤더슨이 말한 '상상의 공동체'일 뿐입니다. 이익이 안 되는 일과 사람을 가차 없이 내치는 천박한 신자유주의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 줍니다.

이제 덕희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할 일입니다. 다행인 것은 그에게 함께 할 동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이스피싱과 관련해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인 재민이 있습니다. 이들 약자 혹은 피해자의 연대가 영화의 진정한 주제일 수 있습니다. 살아남아야 하는 이들의 절박함이 불법적 탐욕의 보이스피싱 조직과 무늬만 공공 기관일 뿐 이익 집단에 가까운 국가 기관의 무심함을 이깁니다. 마침내 얻어낸 덕희의 승리가 영광이나 기쁨이 아니라 현실의 각성에서 비롯된 분노와 아픔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데 이 영화의 힘이 있습니다.

가까스로 탈출했지만 쓰러진 재민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덕희가 생각납니다. 슬픔은 슬픔끼리 상처는 상처끼리 서로를 보듬는 동병상련입니다. 직전까지 급박하고 강렬하게 펼쳐지던 액션의 흥분과 곧 이어질 범인 체포의 쾌감 사이에서 정적에 가까운 이 장면은 공감과 위안의 깊은 정서적 이완을 만들어냅니다. 아울러 이 작품은 피해자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범죄도시> 시리즈, <베테랑>(2015) 등 기존의 범죄물들과 다른 결을 보여줍니다.



-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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