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파내지 않으면 안 될 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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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으로]파내지 않으면 안 될 묘가 있다

김재석 소설가

  • 승인 2024-03-12 09:16
  • 신문게재 2024-03-12 18면
  • 이상문 기자이상문 기자
김재석 소설가
김재석 소설가
요즘 영화 '파묘'의 인기가 극장가를 휩쓸고 있다. K-오컬트 영화의 진화라는 소리까지 나온다. OTT(Over The Top : 인터넷을 통한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의 성장으로 MZ세대 대부분은 휴대폰을 통해 영상을 보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 영화관은 대형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나 걸릴까, 더는 찾지 않는 사양산업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파묘는 호불호가 명확한 오컬트 영화인데도 영화관에서 블록버스터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오히려 같은 시기 상영관에 걸린 미국 블록버스터 영화 '듄2'와도 비교가 되지 않는 객석 점유율을 보인다. 오컬트 장르에 역사의식이란 옷을 입히자 완전히 다른 장르가 된 듯한 느낌이다. 나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N차 관람까지 했다.

영화 홍보측면에서 오컬트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파서는 안 될 묘를 팠다'라고 했지만 그 속에 담긴 역사의식으로 보면 '파내지 않으면 안 될 묘'를 건드린 것이다. 한국의 상위 1%는 풍수를 과학으로 믿는다는 말로 파묘는 시작한다. 명당이 존재하고, '그곳에 조상 무덤을 만들면 자손 대대로 복을 받는다'는 신앙까지는 아니지만 그런 믿음이 있다. 영화는 일본에 나라를 팔아넘긴 을사 5적 중 한 명의 묘에 대해 세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모티브로 했고, 그 파묘 과정에서 일어난 기묘하거나, 어쩌면 민족정기를 되살리려는 숨겨진 의도를 가지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 파묘가 케케묵은 반일감정을 부추기는 영화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관객은 일본 음양사가 한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해 백두대간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역사적 가설에 꽤나 흥미를 보이는 모습이다. 그런데 그 쇠말뚝의 정체가 진짜 철침이 아니고 임진왜란 때 왜군의 선봉장이었던 소서행장이라니…. 그의 무덤에서 파낸 관을 쇠말뚝으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반전의 묘미를 더한다.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란 영화의 대사처럼 일본 음양사가 풍수지리를 악용해서 백두대간에 박아놓은 쇠말뚝 저주를 한국의 지관이 음양오행의 기운을 담은 나무망치로 소서행장 도깨비불(귀신)을 처단하면서 영화는 클라이막스에 이른다.



공포스러운 오컬트 영화는 맞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오면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가 주는 신선한 의미에 그 주제를 되씹게 된다. 물론 일본이 강점기 동안 그런 저주를 퍼부었다고 해서 현재 한국을 보면 국운이 쇠퇴하거나 망했다고는 할 수 없다. 영화에 나오는 장의사역의 유해진 대사처럼 쇠말뚝 박았다고 우리가 못 먹고 못 산 것도 아니다. 다만 6,25 동란을 겪었고, 나라가 둘로 나눠져 아직도 휴전인 상태를 보면 이보다 더 큰 저주가 있을까 싶기는 하다. 여기에 더해서 우리는 일제가 남긴 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을 누구나 하고 있다. 독립운동가의 자손들은 가난에 처해 있는데 한국 상위 1%의 자리를 버젓이 지키고 있는 친일파 자손들이나 일본총독부 산하의 조선사 편수회가 만든 역사관을 그대로 답습하는 한국 강단사학자들, 친일이다, 친북이다 하면서 연일 국회에서 싸우는 정치권의 위정자들을 보면서 이런 잔재들이 언제 해소될까 싶다.

영화는 '파서는 안 될 묘'를 팠지만,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해 1만 명의 목을 베고 전쟁의 신이 되었다고 스스로 자랑하는 소서행장 쇠말뚝 귀신을 나무 몽둥이로 일벌백계하는 모습에서 카타르시스를 일으킨다. 이 땅-조상으로부터 이어온 민족의 정기가 서린-에 살아가는 우리, 그리고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파내지 않으면 안 될 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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