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유세, 경청이 먼저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유세, 경청이 먼저

양동길/시인, 수필가

  • 승인 2024-03-22 11:09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우리 선거문화에서 사라진 것 중 하나가 대중 유세다. 광장이나 학교 운동장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지인이 출마한 경우에 더러 가보았다. 말로 설득하는 것이어서 말솜씨가 중요하다. 나름 운치가 있었던 기억이다. 신익희의 한강 백사장 유세나 김대중의 장충단 공원 유세, 김영삼의 여의도 유세 등이 인구에 많이 회자되었다. 수십만에서 수백만 유권자가 참여했기 때문이다.

유세는 자신의 정책이나 소속 집단의 주장을 선전하며 대중에게 호소하는 것이다. 유세의 역사는 아주 깊다. 익히 알고 있는 중국 주나라 강상(강태공)과 무왕이 나눈 대화가 시초라는 주장도 있다. 역사시대 이전이라 확언하기 어렵지만, 강상은 문왕에게 유세하여 그의 신하가 되었다. 은나라를 멸망시킨 주나라 건국주역으로 제나라 제후에 임명 된다.



흔히 알고 있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도 모두 유세객이다. 공자는 후대에 끼친 엄청난 영향력에 비해 생애 자체는 보잘 것이 없다. 노나라에서 20전후에는 창고지기, 가축사육장 관리였다. 40대 후반에야 제대로 된 벼슬길에 올라 50대 초반 대사구에 이른다. 그나마 수년에 불과하다. 이상을 펼치기 위해 56세부터 12년여 제자들과 함께 다른 나라 떠돌며 유세한다. 아무 곳에서도 받아주지 않는다. 유세 도중 봉변당하기도 하고 제자들과 고난에 처하기도 한다. 정의와 신념에 불타 행동하는 양심만 남겼다.

합종연횡의 소진과 장의도 각각 유세하였다. 소진은 먼저 쇠잔해진 주나라를 찾았으나 현왕을 만나지도 못한다. 진나라 혜문왕 역시 소진의 유세에 흥미가 없다. 조나라에서도 등용해주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연나라에 찾아가 천하통일 계책으로 유세하였다. 합종책이다. 문후가 받아들여 재상으로 등용한다. 다시 순회하며 유세하여 6국이 동맹하였으며, 소진은 6국의 재상이 된다. 이로서 진나라의 동쪽 진출이 15년이나 막혔다.



장의는 진나라에 유세하여 진의 재상이 되었다. 6국이 일시적으로 동맹하였으나, 모든 나라의 궁극적 목적이 중원 패권차지에 있음을 간파하고, 이간계로 합종을 깬다. 진나라와 각각 동맹하도록 유도하여 연횡하게 한다.

시인묵객도 마찬가지다. 은일로 일관한 사람은 예외이나, 출사한 사람은 시로서 유세하였다. 이백은 고관이었던 하지장에게 유세하여 당 현종을 알현한다. 현종에게 인정받아 한림공봉에 임명된다. 이백이 관리보다 시적재능을 펼쳐주길 바란 탓에, 유명무실한 한직에 불과했다. 조정에 나가 자신의 포부를 마음껏 펼치고 싶었던 이백에겐 실망이 컸다. 술로서 소일하다보니 권세가들과 마찰이 잦았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유랑 길에 오른다.

두보는 명문가 후손이다. 출사하여 집안 위상을 높이겠다는 공명심이 남달랐다. 학문과 시, 모두 출중하였으나 명망가들에게 그의 유세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치열한 삶을 통하여 겨우겨우 출사하게 되나, 안녹산의 난으로 임명장만 받고 그마저 좌절된다. 때문인지 황실에 대한 충정내용이 있는가 하면, 제도적 불합리 타파, 민중 구제에 대한 시가 많이 전한다.

유세 내용에 대해 언급하려다 너스레가 길었다. 과거의 유세는 당연히 자신이 속한 조직의 번영과 안녕에 있다. 어떻게 나라와 사회에 기여할 것인가, 자신의 철학과 정책, 소신을 알리는 것이다. 오늘날은 어떤가? 국민에게 남의 악담, 험담, 저주만 늘어놓는다. 그것은 유세가 아니다. 그에 놀아나는 것은 또 무엇인가?

유세는 말하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말 하나 더 살피자. 공자가 자신을 뒤돌아보며 한 말이다.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고, 서른에 서게 되었다. 사십에 미혹되지 않았고, 오십에 하늘의 뜻을 알게 되었다. 육십에 귀가 순해지고, 칠십에는 하고자 하는 바대로 마음 따라 해도 법도에 거스르지 않았다." 소박한듯하면서도 때에 따라 무엇을 해야 하는지 조근조근 일러주고 있다.

육십에 '이순(耳順)'이라는 말이 나온다. 귀에 거슬리는 것이 없다, 경청한다는 말이다. 말하기보다 듣기가 먼저다. 한자 '성(聖)'을 파자해 보라. 잘 듣고 말하는 자는 왕의 위에 있다. 곧 성인의 경지다. 아는 만큼 들리기 때문이다. 이청득심(以聽得心)이라하지 않는가? 잘 들어주어야 남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유권자 표를 얻는 최고의 지혜다.

필자 또한 민심이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귀에 거슬리는 것이 많은 것은 공부와 수양이 부족한 탓이리라.

양동길/시인,수필가

양동길
양동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천안 쌍용동 아파트서 층간소음 문제로 살인사건 발생
  2. [이차전지 선도도시 대전] ②민테크"배터리 건강검진은 우리가 최고"
  3. 대전시 2026년 정부예산 4조 8006억원 확보...전년대비 7.8% 증가
  4. 대전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공유재산 임대료 60% 경감
  5. [문화人칼럼] 쵸코
  1. [기고]농업의 미래를 설계할 2025년 농림어업총조사
  2. [대전문학 아카이브] 90-대전의 대표적 여성문인 김호연재
  3. 농식품부, 2025 성과는...혁신으로 농업·농촌의 미래 연다
  4. [최재헌의 세상읽기]6개월 남은 충남지사 선거
  5. 금강수목원 국유화 무산?… 민간 매각 '특혜' 의혹

헤드라인 뉴스


충남도, 당진에 2조원 규모 `AI데이터센터` 유치

충남도, 당진에 2조원 규모 'AI데이터센터' 유치

충남도가 2조 원 규모 AI데이터센터를 유치했다. 김태흠 지사는 4일 도청 대회의실에서 오성환 당진시장, 안병철 지엔씨에너지 대표이사, 정영훈 디씨코리아 대표이사와 당진 AI데이터센터 건립을 위한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 따르면, 지엔씨에너지는 당진 석문국가산업단지 내 3만 3673㎡(1만 평) 부지에 건축연면적 7만 2885㎡ 규모로 AI데이터센터를 건립한다. 이를 위해 지엔씨에너지는 디씨코리아 등과 특수목적법인(SPC)을 구성하고, 2031년까지 2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지엔씨에너지는 이와 함께 200여 명의 신규 고용..

꿈돌이 협업상품 6개월 만에 23억 매출 달성
꿈돌이 협업상품 6개월 만에 23억 매출 달성

대전시는 지역 대표 캐릭터 '꿈돌이'를 활용한 지역기업 협업 상품 7종이 출시 6개월 만에 23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고 4일 밝혔다. '꿈돌이 라면'과 '꿈돌이 컵라면'은 각각 6월과 9월 출시 이후 누적 110만 개가 판매되며 대표 인기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첫 협업 상품으로 성공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11월 말 기준 '꿈돌이 막걸리'는 6만 병이 팔렸으며, '꿈돌이 호두과자'는 2억 1100만 원의 매출을 올리며 청년일자리 창출과 사회적경제 조직 상생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이 밖에도 '꿈돌이 명품김', '꿈돌이 누룽지',..

2025년 세종시 `4기 성과` 토대, 행정수도 원년 간다
2025년 세종시 '4기 성과' 토대, 행정수도 원년 간다

2022년 7월 민선 4기 세종시 출범 이후 3년 5개월 간 어떤 성과가 수면 위에 올라왔을까. 최민호 세종시장이 4일 오전 10시 보람동 시청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행정수도를 넘어 미래수도로 나아가는 '시정 4기 성과'를 설명했다. 여기에 2026년 1조 7000억 원 규모로 확정된 정부 예산안 항목들도 함께 담았다. ▲2026년 행정수도 원년, 지난 4년간 어떤 흐름이 이어지고 있나=시정 4기 들어 행정수도는 2022년 국회 세종의사당 기본계획 확정 및 대통령 제2집무실 법안, 2023년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을 위한 국..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6학년도 수능 성적표 배부…지원 가능한 대학은? 2026학년도 수능 성적표 배부…지원 가능한 대학은?

  • ‘추울 땐 족욕이 딱’ ‘추울 땐 족욕이 딱’

  • 12·3 비상계엄 1년…‘내란세력들을 외환죄로 처벌하라’ 12·3 비상계엄 1년…‘내란세력들을 외환죄로 처벌하라’

  • 급식 차질로 도시락 먹는 학생들 급식 차질로 도시락 먹는 학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