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여행] 47-아련한 추억의 소리 "천안 명물 호두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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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여행] 47-아련한 추억의 소리 "천안 명물 호두과자~"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 승인 2024-09-09 16:54
  • 신문게재 2024-09-10 10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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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귀금 삼복순 부부가 하던 호두과자 가게 학화 (사진= 김영복 연구가)
천안의 명물이라고 하면 뭐니 뭐니 해도 호두과자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특히 열차가 천안역에 다다르면 "천안 명물 호~두~과~자~~~"라는 소리와 함께 팥소와 함께 호두가 한 조각 들어 있는 호두과자를 파는 행상들이 있어 이를 사서 입안에 넣으면 고소하게 씹히는 호두 맛은 달콤한 팥소와 함께 호두과자의 이름값을 톡톡히 해준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불과 2년여 인 1956년 3월18일 동아일보 사회면에 실린 '차중의 호소'라는 기사가 호두과자에 얽힌 당시의 절박한 사회상을 잘 말해 주고 있다.

'기차가 천안역에 도착하면 수많은 장사꾼 여객 앞으로 달려들며 여러 가지 음식과 함께 "호두과자 사세요! 맛 좋은 호두과자!"라며 호두과자를 권한다.

천안의 호두과자는 한국전쟁 이전인 1934년 대흥동 천안역 앞에서 제과점을 경영하던 조귀금(趙貴金, 1910~1987), 심복순(沈福順, 1915~2008)부부가 호두를 첨가한 실제 크기의 호두 모양 과자를 개발하면서 천안의 명물로 자리를 잡았다.

조귀금(趙貴金) 부부는 예로부터 차와 과자를 즐기던 조상의 풍속을 생각하고 이를 우리 생활 속에 되살려 보고자 하는 뜻에서, 여러 종류의 재료 중 특히 천안의 유서 깊은 특산물인 호두가 영양분이 풍부하고 맛이 좋으며 열매의 형상도 독특하다는 점을 고려하여 과자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그것이 오늘날 호두과자의 탄생 유래가 되었다.

한편 천안 역 앞에는 조귀금(趙貴金) 부부 외에도 1년차를 두고 태극당에서도 호두과자를 만들어 팔았다.

어찌 보면 이 두 집이 천안 호두과자의 원조집이라 할 수 있다.

천안에는 20세기 초 철도가 부설된 이후에도 경부선과 호남선 열차가 경유하는 천안역이 들어섰고, 특히 천안이 1922년 부설된 장항선의 시발역(始發驛)이 되면서 근대 이후에도 철도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특히 열차들이 신호대기 또는 배차조정을 위해 분기점인 천안역에서 잠시 정차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때 상인들이 열차 안 밖으로 몰려 와 호두과자를 팔기 시작 했다.

천안 호두과자가 전국에 알려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홍익회(弘益會)의 전신인 재단법인 철도강생회(鐵道康生會)가 1936년에 설립하면서 1969년부터는 손수레를 끌고 다니며 영업하는데. 1950년대에는 도시락과 담배, 1960년대에는 오징어, 땅콩, 소주, 삶은 달걀, 1970년대에는 호두과자를 납품하여 영호남 열차에서 판매하므로 여행하는 사람들에 의해 전국으로 소문이 나게 되어 지금은 천안에 50여개의 호두과자점이 있으며 전국의 고속조로 휴게소에서도 판매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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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광덕사 호두나무. (사진= 김영복 연구가)
천안의 호두과자는 조귀금(趙貴金)·심복순(沈福順)의 개발이 계기가 되었지만, 천안은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일대에 유청신의 후손과 지역민의 노력으로 현재 26만여 그루의 호두나무가 재배되고 있었다.

1998년 천연기념물 제398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천안 광덕사 호두나무는 광덕사 대웅전 정면에 있는 보화루(普化樓) 입구에 서 있다. 20여m의 높이에 둘레가 약 3m 정도 되는 고목으로, 오랜 세월 지역민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서 살아온 나무이다.

광덕사 호두나무는『고려도경(高麗圖經)』과 『목은집(牧隱集)』에 호두가 나오는데, 고려말 통역관이던 유청신(柳淸臣)이 고려 충렬왕 16년(1290년) 9월에 중국 원나라에 갔다가 임금의 수레를 모시고 돌아올 때 호두나무 묘목과 열매를 가져와 나무는 광덕사 안에 심고, 열매는 유청신의 고향집 뜰 앞에 심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유청신(柳淸臣)이 가져와 광덕사에 심었다는 나무는 현재의 호두나무 앞에 나무의 전설과 관련된 '유청신 선생 호도나무 시식지'란 빗돌이 세워져 있다. 이 자리가 바로 유청신(柳淸臣)이 720년 전에 호두나무를 심은 자리이며, 이 호두나무는 오래전에 고사(枯死)하였고, 고사(枯死) 전(前) 뿌리가 옆으로 뻗어나가 자라난 나무가 현재 서 있는 나무로 수령이 약400여년이 되었다고 한다.

문화재청의 설명을 따르면, 광덕 마을에서는 이것이 우리나라 호두나무 중에 가장 오래된 나무라 하여 그로 인해 이곳을 호두나무 시배지라 부르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 호두가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광주 신창동 저습지 유적에서 초기 철기 시대 호두가 출토된 것으로 보아 원삼국 시대에 유래되었고, 신라시대 인구조사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민정문서(755년, 경덕왕 14년)에 호두나무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호두 재배의 역사는 오래 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호두나무는 식물학상 호두나무과(Juglandaceae)에 속한다. 터키 · 이란 · 이라크 · 소련 남부의 일부지방 · 히말라야 산록 등지가 원산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도(胡桃)는 진(晉) 나라 장화(張華)의『박물지(博物志)』 권6에 "장건(張騫)이 서역에서 가지고 돌아왔다." 하였다.

宋(송)나라 太宗(태종)의 명으로 李昉(이방)이 편찬한『태평어람(太平御覽)』(권971)에는 호도의 원산지는 강호(姜胡)라고 씌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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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태극당. (사진= 김영복 연구가)
호도(胡桃)는 외견상 복숭아와 비슷해서 '오랑캐 나라의 복숭아'란 뜻의 호도가 된 것이다. 호도육(胡桃肉)은 한약재로 우리가 흔히 먹는 호두다.

『고려사(高麗史)』에 실린 「한림별곡(翰林別曲)」을 보면 「당당당 당추자(唐唐唐 唐楸子)」라는 내용이 있다.

조선 전기인 1415년(태종 15) 기록에도 당추자라는 말이 나온다. 중국을 통하여 들어온 추자[가래나무 열매]와 비슷한 과실이라며 호두를 당추자라고 한 것이다.

옛 기록에 호두나무는 호도, 우리나라 재래종인 가래나무는 추자로 기록되어 있으나 엄밀히 구분하여 사용한 것 같지는 않다. 굳이 지역으로 보자면 중부 이남에는 호두나무가, 중부 이북의 추운 지방에는 가래나무가 잘 자란다. 『고려사』에는 1101년(숙종 6)에 "지금의 평안도 평로진(平虜鎭) 관내의 추자밭을 백성들이 경작하도록 나누어 주었다."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여기에 나오는 추자 밭은 가래나무 밭이었다. 또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태종실록(太宗實錄)]태종 15년 (1415) 4월 20일에 보면 호도(胡桃)를 당추자(唐楸子)라고 나온다.

조선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李裕元·1814~1888)이 지은『임하필기(林下筆記)』제19권 / 문헌지장편(文獻指掌編)에 의하면 宋나라의 사신(奉仕高麗國信書狀官)으로 고려 숙종 8년(1103) 고려에 왔던 손목(孫穆)이 고려어(高麗語) 360여 어휘를 채록하여 분류, 편찬한『계림유사(鷄林類事)』에 보면 고려시대에 호두[胡桃]를 갈래(渴來)라고 하였다고 나온다.

[세조실록(世祖實錄)]세조 3년 (1457) 10월 22일자에는 "본궁(本宮)의 종[奴] 독동(禿同)과 전농시(典農寺)의 종 윤생(尹生) 등이 수박[西瓜]과 호도(胡桃)를 가지고, 노산군(魯山君)을 알현하기를 요구하였으니, 그 죄가 능지처사(凌遲處死)하고, 적몰(籍沒)하는 데 해당하니, 연좌(緣坐)를 율(律)과 같이 하소서."하니, 임금이 다만 장(杖) 1백 대를 때리도록 명하였다. 즉 호도를 가지고 폐위 된 단종(端宗)을 만나러 갔다가 발각이 되어 곤장 백대를 맞은 것이다.

세조 5년 (1459) 4월 12일에는 호도가 명나라 사신의 선물 중 하나이기도 했다.

『종묘의궤(宗廟儀軌)』에 호두〔胡桃〕는 7월의 천신(薦新) 품목으로 나와 있고,『각사등록(各司謄錄)』[경상감영계록(慶尙監營啓錄)]고종(高宗) 9년(1872) 6월 19일 "천신 진상(薦新進上)인 호도(胡桃)는 으레 7월 초3일에 봉진(封進)합니다"라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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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과자. (사진= 김영복 연구가)
호도주 빚는 법[胡桃酒釀法]은 호도 2말에 원 누룩가루 1말을 칼에 짓빻아서 술밑에 넣어 섞어서 빚는다.

『산림경제(山林經濟)』는 입맛이 없을 때 '호도(胡桃) 두 개를 먹으면 즉시 밥이 생각난다.'라고 되어 있다.

조선 후기의 학자 이긍익(李肯翊:1736~1806)이 지은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별집 제12권 정교전교(政敎典故) 속절(俗節)의 잡희(雜) 정월 보름날 약밥[藥飯] 만드는 법이 나오는데, '약밥을 짓는 방법은 찹쌀[粘米]을 씻어 쪄서 밥을 짓고, 가늘게 자른 곶감[乾]과 익힌 밤·대추와 말린 고사리[乾蕨]와 새발버섯[鳥足茸] 등의 재료에다가 꿀과 간장을 섞어서 다시 찐다. 또 잣[松子]과 호두(胡桃)를 드문드문 박으면 그 맛이 매우 달고 좋은데, 이것을 '약밥'이라 이른다. 속담에 이르기를, "약밥은 까마귀가 일어나기 전에 먹어야 한다." 고 한다.'고 나온다.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 충청도(忠淸道)편에 공물로 호도(胡桃)가 기록 되어 있고,『세종실록(世宗實錄)』을 보면 "천안의 토산물은 오곡과 조, 팥, 참깨, 뽕나무, 추자이다."라고 했는데, 이때의 추자는 호두나무로 봐야 할 것이다.

이처럼 천안 광덕면은 호두나무 생장의 최적지로 일컬어지는데 호두나무의 서식지가 주 생산지로 되게 된 것은 이곳의 토양과 햇빛, 온도 등 환경이 알맞은 때문이다.

천안에서는 149농가가 호두재배에 참여해 158ha의 재배면적에서 112t을 생산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경기도를 기준으로 그 남쪽 지역 중 표고 400m 아래에서 잘 자란다. 천안시 광덕면의 호두는 껍데기가 얇고 알이 꽉 차서 우리나라 호두 중 최고의 품질로 인정받고 있으며 천안의 대표 특산물로 손꼽히고 있다.

호두의 90%이상을 생산해 오고 있는 천안(天安)군 광덕(廣德)면 농민들은 수년전까지만 해도 좋은 가격을 유지, 벼 농사대신 호두를 생산해 `호두 한말과 쌀 세말을 바꾸지 않을 정도'로 값이 괜찮았던 시기 자녀 교육까지 시키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조선에서 천신제(薦新祭)를 지낼 때 올리던 제물의 하나로, 식용·약용으로 사용한 호두나무의 열매로 호두나무의 열매인데, 과육 안에 단단한 핵이 있고, 그 안의 인(仁)을 식용한다. 조선에서는 7월의 천신 물품이었다.

10월에 익는 열매인 호두는 민간에서는 호도육이 뇌(腦)의 모습과 비슷하게 생겨서 호두를 먹으면 뇌기능이 좋아지고 총명해진다고 생각해서 수험생에게 호도육과 잣을 권하기도 한다. 또한 호두 전체의 모습이 고환과도 닮았다고 해서 정력제로 많이 사용되기도 했다.

호두의 껍데기를 깨면 네 개의 방에 속살이 차곡차곡 들어가 있는데, 지방 59.4%, 단백질 18.6%, 탄수화물 14.5%, 수분 4.5%, 회분 1.8%, 섬유 1.2%, 기타 칼슘, 인, 철분, 비타민 등이 들어 있다. 한의학에서는 감기나 불면증, 자양·강장, 변비, 기억력 증진에 복용하며,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호두는 신경쇠약증 효능이 있으며 고질적인 부스럼에는 호두 일곱 개를 태워 가루로 만들어 먹으면 좋다."라고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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