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 칼럼] 85. 모정의 두 표정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염홍철 칼럼] 85. 모정의 두 표정

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 승인 2024-09-12 12:00
  • 현옥란 기자현옥란 기자
염홍철칼럼
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언젠가 합천에 있는 황매산에서 산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선홍빛 철쭉꽃 군락이 장관을 이루었으나 막상 1000미터 이상 되는 산의 벌거벗은 바위를 오르다 보니 이것은 산행이 아니라 산악 훈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군데군데 기암절벽의 아름다움이 저의 땀을 식혀주었지요.

내려오는 길에는 산나물 파는 여인들이 길게 늘어서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로 손님을 부르고 있었는데, 시골 장터 풍경이어서 정감을 느꼈습니다. 그 가운데 조그만 천막을 치고 막걸리와 커피를 파는 젊은 여인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바로 옆 침상에는 한 살 도 안 되어 보이는 갓난아기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지요. 저 젊은 여인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면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을까? 하루 벌이는 얼마일까? 남편은 무슨 일을 할까? 아기가 더위를 견뎌낼 수 있을까?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캔맥주와 '카수'들의 열창에 웃음바다가 되어 잠시 잊고 있었지만, 집에 와 잠자리에 누워서는 낮에 본 황매산 자락에서 막걸리를 팔던 젊은 여인의 무표정한 얼굴이 떠올라 편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어두운 잠자리에서의 그 느낌을 머리에 새겨두었다가 다음 날 아침에 다음과 같은 글을 흰 종이에 써 보았습니다.

젊은 여자는
바람 불면 날아가는 천막치고
막걸리와 커피와 라면을 판다

옆 침상에 갓난아기 햇볕 그대로 받으며
곤하게 잔다
여자의 그을은 얼굴엔 아무런 표정 없다

그 여자는 손님 한번, 아기 한번 돌아보며
빠르게 손 움직인다, 제 生을 판다

"초장 좀 더 주소" 오이를 든 손님 주문하면
초장 건네면서도 그 여자의 눈은 뒤척이는
아기에 가 닿아있다

"잘 마셨수다"
천원짜리 지폐 던져주고 떠나는 손님 뒤로
빈 바람만 휑, 따라간다

여자는 돈도 챙기지 않고 아기에게 다가간다
땀을 닦아 주고 기저귀 갈며
옅은 미소, 얼굴에 스쳐간다

한 손으로 콧잔등 땀 훔쳐대며
한 손으론 행주질 놀림 빨라지는데

햇볕 받으며 딱딱한 침상에 잠든
아기는, 감기 한번 만나지 않고
튼실한 장년 되어 금옷 입고 돌아온다

백발이 된 여자는 장한 아들 생일상 받으며
콧잔등 흐르는 땀을 닦아낸다
그러나 환한 웃음 얼굴에 그득하다

(이 시는 염홍철 시집 <한 걸음 또 한 걸음> 28~29 게재)

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李정부 2차 공공기관 이전 초읽기…대전 '우선 배치' 촉각
  2. 가을 제철 수산물 가격 들썩… 꽃게·전어 두 배 급등
  3. 온통대전, 카드 없이 QR코드로 결제한다… 정부 지원율 변화도 관심
  4. 스토킹 피해 신고했던 전 연인 살해 40대 구속
  5. 대전혁신센터, 스케일업 투자지원 민간운영사 업무협약
  1. 대전시의회, 이효식 대전도시공사 사장 후보 '인사청문회'
  2. 국정자원 대전 잔류 위해 추가 부지 발굴… 유치 경쟁 속 대응 본격화
  3. '양성자 암치료센터' 건립 나선 세종, 중부권 첨단의료 거점 노린다
  4. '충효예 정신' 충남 교육현장에 본격… ‘사랑의 일기’는 축소 운영
  5. 박수현 충남지사, 'UNDP AI 허브' 충남 유치 사활

헤드라인 뉴스


`세종 행정수도` 11월 중대 기로…법안 심사에 예산 확보전까지

'세종 행정수도' 11월 중대 기로…법안 심사에 예산 확보전까지

세종 행정수도 완성을 위한 입법과 예산 확보 절차가 맞물리면서 중대 분수령을 맞이했다. 11월 국회에서 행정수도특별법 심사와 중앙행정기관 추가 이전을 뒷받침할 재원 확보가 시험대에 함께 오르면서다. 여기에 세종시 재정 문제와 얽힌 핵심 법안까지 일몰을 앞두고 마지노선에 봉착하면서 정기국회 내 현안들을 매듭지을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8일 국회에 따르면 내달부터는 내년도 본예산에 대한 상임위원회별 예비심사가 본격화할 예정이다. 당장 이번 예산 심사에선 지난 13일 정부가 발표한 2차 중앙행정기관 세종 이전 계획안을 다루게..

대전이노베이션아카데미, `AI 혁신의 새 장을 열다`
대전이노베이션아카데미, 'AI 혁신의 새 장을 열다'

대전의 미래 산업과 대한민국 소프트웨어(SW) 생태계의 패러다임을 바꿀 거점인 '대전이노베이션 아카데미'가 28일 14시 대전시 서구 월평동서 공식 개소식을 갖고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간다. 교육 과정은 AI 활용 인재를 양성하는 네이티브 과정(5개월)과 인공지능 올인원 과정(18개월)으로 운영된다. 대전시와 진흥원은 대전이노베이션아카데미 개소를 시작으로 지역 AI 및 소프트웨어(SW) 생태계를 이끌어갈 핵심 거점으로 이끄는 한편, 대전시는 대전이노베이션아카데미가 대한민국 ICT 생태계의 판도를 바꾸고, 지역 성장의 새로운 동력을 창..

[르포] 합친 지 27년, 도시 이름까지 바꿨다… 단바사사야마의 생존법
[르포] 합친 지 27년, 도시 이름까지 바꿨다… 단바사사야마의 생존법

수도권 일극 체제와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할 해법으로 추진된 충남·대전 행정통합이 첫 출범 목표를 이루지 못한 채 다시 출발선에 섰다. 하나의 경제·생활권을 구축하고 지역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구상이었지만, 주민 동의와 재정·권한 이양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분명해졌다. 행정구역을 하나로 묶는 것만으로 통합의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앞서 행정통합을 경험한 일본과 대만 역시 행정 효율화와 재정 기반 강화라는 기대 속에 주민 갈등과 재정 부담, 지역 간 불균형이라는 숙제를 마주했다. 본보는 일본의 헤이세이 대합병과 오사카 행정체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미래 진로직업 체험 미래 진로직업 체험

  • 올가을 들어 가장 추운 날씨 올가을 들어 가장 추운 날씨

  • ‘스토킹에 의한 여성 살해 국가가 책임져라’ ‘스토킹에 의한 여성 살해 국가가 책임져라’

  • 스토킹 살해 피의자 영장실질심사 스토킹 살해 피의자 영장실질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