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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군 다산초당./강진군 제공 |
17일 강진군에 따르면 해군은 이에 앞서 지난 2024년 11월 함명제정위원회를 열고 다산 정약용 선생을 한국형 구축함(KDX)-3 배치(Batch)-2 2번함으로 명명했다.
해군은 전력발전업무 규정에 따라 구축함 명칭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국민으로부터 영웅으로 추앙받는 역사적 인물과 호국인물의 이름으로 제정하고 있다. 함명이 다산 정약용함으로 결정되면서 임금과 신하의 돈독한 관계였던 정조와 정약용은 각각 1번함과 2번함 함명으로 부활해 나란히 우리 바다를 지키게 됐다.
해군은 '자랑스러운 과학기술 강군 구현, 첨단과학기술 기반의 해군력 건설을 위한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부각하고, 국방혁신 4.0과 필승해군 4.0 과제를 행동화해 나가는 데 부합한다'라고 판단해 이같이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 선생은 각종 사회 개혁사상을 제시했다. 문학·과학·의학·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이뤘다. 특히 강진에서의 유배 18년 동안 흔히 '1표2서'라 불리우는 목민심서와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을 대부분 저술하고 후학을 양성했으며 청렴과 애민, 부국 강병 등을 주창했다. 다산은 유배 전 조선 제22대 왕 정조의 숙원사업인 수원화성의 건설을 맡기도 했다.
강진에는 다산의 흔적이 가득하다. 대표적으로 다산초당이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 유배 기간 중 10여 년 동안 생활하면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500여 권의 책을 저술한 곳이다. 다산은 유배 기간의 역경을 기회로 바꾼 것이다.
다산은 정조가 붕어한 후 천주교 탄압 사건에 휘말려 18년간의 유배 생활을 한다. 강진군은 다산초당, 동암, 서암, 천일각 등의 건물과 '다산 4경'이라 부르는 정석, 약천, 다조, 연지석가산 등을 '정약용 유적'으로 통합해 사적 107호로 지해 보호하고 있다. 다산초당 건물은 원래 목조 초가였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낡아지고 붕괴돼 없어졌던 것을 1957년 강진 다산유적보존회가 그 자리에 목조 기와집으로 중건했다. 현판에 판각된 '다산초당' 글씨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친필을 집자해서 목각한 것이다.
강진군은 다산박물관을 조성, 강진에 남겨진 다산의 훌륭한 발자취를 기념하기 선생의 청년 시절, 벼슬 시절, 유배 시절, 해배 이후 시절로 잘 정리해 보여주고 있다. 다산의 가계도와 다산가와 천주교, 다산과 정조, 다산과 다산학단, 다산의 제자 교육, 다산의 시문학, 다산의 개혁 사상, 청렴 사상, 애민 사상, 다산의 교우 관계, 그리고 많은 편지글을 볼 수 있다. 그의 생애와 사상을 동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다.
강진과 인연이 깊은 다산 정약용함에 앞서 '강진'이란 이름의 해군 함정은 또 있다. 바다의 지뢰인 '기뢰'를 탐색하는 '강진함'이다. 강진함은 520t급으로 50여 명의 승조원이 탑승하고 있다.
강진군은 지난 2013년 강진함과 자매결연을 맺었으며 당시 현 강진원 강진군수가 명예 강진함장으로 위촉됐었다.
다산 정약용함은 길이 170m, 경하 배수량 8200톤으로, 이전 세종대왕급 구축함 대비 길이는 4m, 배수량은 600톤 늘었다. 이지스 전투체계와 더불어 탄도 미사일 방어 체계를 갖췄고, 다기능 위상배열 레이더, 적외선 탐지·추적장비, 전자광학추적장비 등을 갖춰 탐지?추적 등의 대응 능력은 2배 이상 증가했다.
통합소나체계를 탑재해 잠수함 탐지 거리는 3배 이상 향상됐으며, 보조추진체계로 연료를 절감할 수 있도록 했다.
최대 속력 30노트(시속 55㎞)로 운항할 수 있으며 승조원은 약 300명이다. 함에 탑재되는 각종 전투체계와 이지스 체계 등은 현재 미국 해군이 운용중인 최신예 이지스 구축함과 동급이란 평가를 받고 있으며 특히 탄도미사일 궤적의 중간 단계와 종말 단계를 방어할 수 있는 함대공미사일 SM-3, SM-6가 탑재될 예정이다.
강진=이재선 기자 wotjs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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