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 칼럼] 짐 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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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人 칼럼] 짐 싸기

조부연 도자디자이너

  • 승인 2025-06-04 16:44
  • 신문게재 2025-06-05 19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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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연 도자디자이너.
작업실 이사를 앞두고 있다. 동네상권이 쇠락한 상가 1층에서 운 좋게 싼값에 월세 살아왔다. 이 동네에서 12년을 지냈다. 혼자만 쓰는 18평 작업실은 크지도 작지도 않다. 작업 중 만들어진 부산물을 쌓아 놓지 않고 그때그때 정리한 탓에 쉼 쉴 공간도 있다. 가마에서 나온 도자기를 촬영할 테이블도 항상 마련되어있고 손님들을 위해 작은 테이블과 의자도 준비해 놓았다. 물청소하기 좋게 단차를 높인 작업공간, 책과 아이맥이 있는 작은 사무실도 한쪽에 있다. 잡동사니와 전기가마를 설치한 차고 덕분에 짜임새 있고 혼자 쓰기 넉넉한 작업실이 되었다. 최근에 들인 3D 프린터도 출입문 환풍기 바로 아래 자리 잡고 열심히 프린트하고 있다.

필자가 만드는 도자기는 많은 기계장치가 필요하다. 부피도 크고 무게도 꽤 나간다. 선배 도예가 라영태의 정림동 밭에서 비 맞고 있던 발물레도 옮겨 놓았다. 모교에서 불용 처리된 무쇠 발판이 달린 이 발물레는 제작 된지 40년이 넘었다. 수동그라인더로 녹을 벗기고 회전축에 기름칠 하니 조금 끄덕대지만 쓸만했다. 사실 가장 좋아하는 도자기 기계다. 물레성형을 주로 하지 않지만 필자가 도자기에 입문했을 때 사용한 물레다 보니 더욱 애착이 간다. 발로 물레를 돌리는 게 전기물레를 쓰는 것보다 익숙하다. 그리고 폼도 그럴싸하다.

슬립(흙물)을 만드는 교반기도 두 대나 된다. 이놈들이 가장 크고 무게가 많이 나간다. 게다가 교반탱크 안에 슬립이 가득 차 있다. 도자기 기계나 가마를 중고 거래하는 사이트를 자주 들락거린다. 눈독 들이던 석고제형물레를 2년 전에 새로 들였다. 지거암이 달린 이놈을 서울 외곽 지하 작업실에서 꺼내오느라 꽤 고생 했다. 낡은 상판을 번듯한 자작나무 합판으로 교체하고 프레임을 정성 들여 칠했다. 좌우 회전과 저속 고속 조절이 가능한 최신식 석고제형물레다. 새것을 만들어 놓았다. 전에 쓰던 낡은 제형물레가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지금까지 30년이 넘게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석고를 다뤄왔다. 석고몰드는 석고와 물을 정확한 비율로 혼합해 만든다. 이때 석고와 물을 교반하게 된다. 20년 동안 수동교반을 해왔고 좋은 몰드를 만드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10년 전부터 오카리나 몰드를 주문받아 만들고 있다. 수동교반으로 만든 몰드보다 품질이 더 좋아야만 했다. 석고진공교반기라는 꽤 비싼 기계가 있다. 전라도 어딘가에서 30년이 넘은 중고를 백만 원에 구매해 진공펌프를 새것으로 교체해 사용하고 있다. 세상 편하다. 다른 기계보다 제일 먼저 구입했어야 했다고 쓸때마다 생각한다.

다른 욕심은 없는데 도자기를 만드는 기계나 도구에 대한 욕심이 많다. 한때는 제자들 사이에서 '도구의 왕'이라고 불리기도 했을 정도다. 목공 재료나 도구를 판매하는 상점이나 철물점을 가끔 산책하듯 돌아다닌다. 작업도구로 쓸만한 놈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딱 맞는 도구는 아니지만 작업실에 가져와 알맞게 고쳐 쓴다. 이렇게 만들어진 도구는 매일 쓰는 것도 있지만, 10년에 한 번 쓸까 말까 한 것도 있다. 이렇게 만든 도구를 보관하는 서랍이 작업테이블 곁에 빼곡하다.

연산 돌 공장에서 사 온 화강석판이 깔린 작업테이블에서 매일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일한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조각칼, 측정도구, 청소도구를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걸어 놓았다.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등받이 없는 스툴이 작업테이블과 항상 한 쌍이다. 최근, 병원에서 몹쓸 진단을 받은 연세 많은 집주인으로부터 퇴거 통보를 받았다. 막상 이사 준비를 하려니 그동안 만들어 놓은 석고몰드가 왜 이리 많은지, 기계들은 왜 이렇게 많이 사들였는지 약간 후회하는 중이다. 언제 이 짐을 다 싸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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