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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이파이브' 포스터. |
영화는 기본적으로 뭔가를 재현하는 장르입니다. 현실을 재현하든 이야기를 재현하든 합니다. 그중에서도 이야기를 재현하는 영화는 상상과 욕망을 전제로 합니다. 이야기가 바로 그런 위상을 지니는 까닭입니다. 현실에서 억압되었거나 제한된 것들을 펼쳐내는 공간, 상상 속에서라도 이뤘으면 하는 절박하고 애타는 욕망이 실현되는 곳이 바로 이야기입니다. 겉으로는 당연히 황당무계합니다. 위의 소녀처럼 말입니다. 아무리 새 심장을 받았기로 자동차보다 빨리 뛸 수 있을 리 만무합니다. 그러나 그 황당무계함 이면의 절박함과 애타는 욕망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는 진실의 통로라 할 만합니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 <어벤저스> 시리즈의 한국판 B급 패러디라 할 수 있습니다. 어벤저스 멤버들이 우주적이거나 전 세계적인 악당들과 맞서 싸운다는 것과 달리 영화 속 하이파이브 히어로들은 한국형 사이비 교주와 대결합니다. 물론 어벤저스가 더 위대하다든가 하는 접근은 무의미합니다. 상상과 욕망은 그 자체로 일정한 현실 반영의 진실을 갖고 있으니까요.
영화 속 히어로들은 장기 이식을 통해 타인의 능력을 전수받습니다. 뒤집으면 남의 능력이라도 받아서 나도 그렇게 돼 봤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게 해 봐야 그리 좋을 것도 없습니다. 영화 속 히어로들이 문신과 함께 갖게 된 저마다의 능력으로 나아진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부자가 되든, 승진이 되든 하지 못합니다. 여전히 그들은 아웃사이더들입니다. 외로운 처지 역시 피하지 못합니다. 그들이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악당과 맞설 때입니다. 사이비 교주이자 악당 역시 욕망합니다. 각 사람에게 흩어진 능력들을 다 모아 혼자 갖고 영생불멸하고 싶다는 겁니다. 영화가 문제시하고 비판하려는 부분이 무엇인지 확연합니다. 모든 걸 독차지하려는 탐욕과 종교가 결탁된 것을 악마로 표현합니다.
사이비 교주 영춘이 하이파이브에 의해 제압되니 통쾌하고 개운한가 하면 꼭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라도 그럴 수 있다는 욕망의 개연성이 우리를 씁쓸하게 합니다.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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