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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박씨 규정공파 영해공 사례를 중심으로 연구한 박 교수의 논문은 19세기 이 지역에 집성촌을 이뤄 담배재배로 연간 농업 수입의 30%를 현금으로 확보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약 300년 전 정착한 이 집성촌은 단순 자급자족을 넘어 서울시장과 연결된 상업 네트워크를 구축해 여성들의 양잠업으로 생산한 명주를 수도권에 판매했다.
특히 1857년 문중조직은 현재 지방자치단체와 유사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했다.
연간 300냥 예산으로 교육 30%, 구제사업 20%를 운영하며 1871년 대흉년엔 성씨 구분 없이 150석 구휼미를 배급하는 사회안전망 역할을 했다.
또한 하품리 지역 주어사 승려들과 유교 양반들이 학문토론을 벌이는 등 19세기 농촌에서도 종교간 대화가 활발했다.
박 교수가 연구한 이 논문은 족보, 고문서 등 다양한 사료를 활용한 실증적 연구방법론으로 관련 학계의 관심을 끌며 조선후기 미시사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했다는 평가다.
박 교수는 "조선 후기의 농촌이 생각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개방적이었다"며 "전통사회의 근대적 적응력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한편 박상혁 교수는 국무총리실 산하 국책연구원 평가위원, 행안부 평가위원, 육군사관학교 논문 심사위원, 합동군사대학교 논문심사위원 등 왕성한 학술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2017년 교수로 임용된 이후 이달 현재 약 110편의 연구논문을 한국연구재단 KCI(등재지)에 게재하며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괴산=박용훈 기자 jd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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