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인복 있는 교사로 살기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 인복 있는 교사로 살기

보령 월전초등학교 교사 이용희

  • 승인 2025-08-21 15:23
  • 신문게재 2025-08-22 18면
  • 오현민 기자오현민 기자
20250821_보령 월전초 교사 이용희
보령 월전초 교사 이용희.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기도했었다. 그러나 시인의 바람처럼 '선생님'이라는 이름 앞에 떳떳할 것임을 맹세한 것이 무색하게 선택의 기로에선 비겁해지기 일쑤다. 학급 배정을 받고 '바꿔주세요'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중도입국 학생이 둘이라니. 언어가 통하지 않는 캄보디아, 베트남 아이들을 데리고 수업을 할 수 있을까? 무거운 마음으로 3월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국적인 피부색,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한 듯 긴장한 눈빛, 한눈에 아이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걱정스러웠던 마음이 무색하게 아이들은 모습도, 행동도 사랑스러웠다. 선생님의 표정과 몸짓 하나라도 놓칠세라 집중하며 따라 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예쁜지. 아이들과 마주하는 첫날 그렇게 아이들에게 홀딱 마음을 빼앗겼다. 아이들을 마주하는 순간 이기적이었던 내가 어찌나 한심하게 느껴졌던지. 중도입국 학생이라는 편견으로 무장했던 어리석음을 가슴 깊이 반성했다.

한국 학교에 처음 다니기 시작한 황O은 교육청의 찾아가는 한국어 교육을, 작년 겨울에 입학해 이미 한국어 교육을 받았던 해O는 연구 담당 선생님과 상의해 교육지원청의 학습코칭을 신청했다. 학급에서 수업을 받을 때는 번역 프로그램을 사용해 의사소통을 하고자 노력했다. 엉뚱하게 번역이 되어 까르르 웃게 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하루가 다르게 한국어 실력이 늘어가는 황O과 해O의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한 달 새 쉬운 낱말들을 사용해 학교의 아이들과 소통을 했다. 아이들은 오히려 편견없이 황O과 해O를 받아주었다. 완성된 문장을 만들어 대화를 시도하려는 나보다 낱말만으로도 쉽게 소통하고 이해하는 아이들이 신기하고 대견했다.

한 달쯤 지났을까? 황O에게 학교생활에 대해 물었다. "학교 좋아. 재밌어. 선생님 좋아." 아이는 천천히 또박또박 한국어로 대답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황O의 늘어난 한국어 실력에 대한 감동인지, 학교와 선생님을 좋아하는 그 마음이 고마웠던 건지 잘 모르겠다.

한 학기가 지날 즈음엔 한국어로 일상의 소통이 거의 가능해졌다. 조용하고 얌전한 아이였던 황O과 해O는 180도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개구쟁이 그 자체였다. 어떻게 숨기고 살았을까? 해O보다 한국에 늦게 입국해 한국어 사용이 많이 서툴렀던 황O은 수다쟁이가 되었다. 끊임없이 재잘거렸다. 말문이 트인 세 살배기 아이처럼 "왜?"를 달고 살았다. 업무 처리로 컴퓨터에 눈을 붙이고 있는 날이면 "선생님, 바빠? 왜 바빠?"를 외쳤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씨익 웃으며 반말을 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황O은 엄마와 함께 살 수 있는 지금이 매우 행복하고 선생님이 있어서 참 좋다며 출근하는 보람과 기쁨을 만들어주었다.

스키캠프로 스키장에 갔을 때였다. 황O에겐 한국에서의 경험이 모두 신기했겠지만 특히 눈을 보며 흥분했다. 베트남에는 눈이 없다며 바닥의 눈에 다짜고짜 손을 대었다. "으아, 차가워!" 놀란 토끼눈이 되어 소리를 지르며 눈덩이를 얼른 내 손에 내려놓던 황O의 모습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강습을 시작할 때는 스키를 태워도 되는 걸까 고민이 될 정도로 뒤처지는 듯 보였으나 마지막 날에는 혼자서 짧은 경사를 내려올 수 있게 되었다. 발갛게 언 볼에 함박웃음을 물고는 이제 자기 혼자서 탈 수 있다며 다음에는 꼭 보여주겠다고 호언장담하는 호기로움에 나도 따라 함빡 웃었다.

일 년을 끝마칠 때가 되니 황O은 몰라보게 성장해 있었다. 한국어 실력은 물론 학교생활에 대한 적응까지, 아이의 처음 모습을 기억하는 선생님들은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고생했다는 교직원들의 따뜻한 응원에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내가 무엇을 했단 말인가? 오히려 아이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 것은 나였다. 낯선 상황이나 어려움에 직면할 때마다 물러섬 없이 도전하며 끝내 성취하는 용기와 끈기를 가르쳐 준 황O과 해O에게 고마울 뿐이다. 언젠가 내게 인복이 있다고 말해준 이의 탁월한 혜안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교단을 떠나는 순간까지 매순간 귀한 인연에 감사하며 축복같은 인복을 누리고 살아야겠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세종시 '탄소중립 실천', 160개 경품은 덤… 24일 신청 마감
  2. 대전장애인IT협회, 제46회 장애인의 날 기념행사서 '발달장애인 드론날리기 대회' 성황
  3. [아침을 여는 명언 캘리] 2026년 4월24일 금요일
  4. 충청권 총경 승진 10명… 대전 3명·충남 4명, 세종 1명·충북 2명
  5. [현장에서 만난 사람]송재소 (사)퇴계학연구원 원장
  1. 대전 오월드 결국 전체 사육시설 중지명령… 당분간 재개장 어려울듯
  2. [교정, 사회를 다시 잇다] 김재술 대전교도소장 "과밀수용·의료처우 개선에 최선, 지역사회 관심을"
  3. 대전·충남 교원 10명 중 6명 "독감 걸려도 출근" 단기 대체인력 투입 쉽지 않아
  4. 세종금강로타리클럽, 일본 나라현 사쿠라이 로타리클럽과 교류 추진
  5. 따뜻한 손길로 피어난 봄, 함께 가꾼 희망의 화단조성

헤드라인 뉴스


대전오월드 전체 사육시설 중지명령… 당분간 재개장 어려울듯

대전오월드 전체 사육시설 중지명령… 당분간 재개장 어려울듯

늑대 탈출 사건이 발생한 대전 오월드 동물 사육시설 전체에 대해 금강유역환경청이 안전관리 조치명령을 내리고 완료때까지 운영중지를 명령했다. 과거 퓨마가 탈출했을 때는 해당 개체가 머물던 사육시설만 1개월 폐쇄 명령했던 것에서 이번에는 오월드 사육시설 전체에 대해 개선조치 완료 때까지 운영중지를 명하고 해제 시점을 정하지 않았다. 23일 기후에너지환경부 금강유역환경청에 따르면, 한국늑대 복원종인 '늑구'의 탈출사건이 발생한 오월드에 대해 4월 20일 사육시설 안전관리 조치명령을 내렸다.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동..

대전 오월드 결국 전체 사육시설 중지명령… 당분간 재개장 어려울듯
대전 오월드 결국 전체 사육시설 중지명령… 당분간 재개장 어려울듯

늑대 탈출 사건이 발생한 대전 오월드 동물 사육시설 전체에 대해 금강유역환경청이 안전관리 조치명령을 내리고 완료때까지 운영중지를 명령했다. 과거 퓨마가 탈출했을 때는 해당 개체가 머물던 사육시설만 1개월 폐쇄 명령했던 것에서 이번에는 오월드 사육시설 전체에 대해 개선조치 완료 때까지 운영중지를 명하고 해제 시점을 정하지 않았다. 23일 기후에너지환경부 금강유역환경청에 따르면, 한국늑대 복원종인 '늑구'의 탈출사건이 발생한 오월드에 대해 4월 20일 사육시설 안전관리 조치명령을 내렸다.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동..

5월 7일 `행정수도특별법` 공청회… 22년 한풀이 하나
5월 7일 '행정수도특별법' 공청회… 22년 한풀이 하나

2004년 신행정수도특별법 무산 이후 22년 간 깨지지 않은 위헌 판결의 덫은 이제 제거될 수 있을까. 수도권 과밀 해소와 국가균형성장이란 국가적 아젠다를 품은 신행정수도 건설은 매번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2018년 개헌안부터 2020년 행정수도특별법 발의 무산 과정을 포함한다. 이재명 정부 들어 맞이한 첫 지방선거 국면은 다를 것이란 의견이 많았다. 더불어민주당 3건, 조국혁신당 1건, 민주당·국민의힘 공동 1건까지 모두 5건의 행정수도특별법이 국토교통위원회에 상정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여·야 대표들도 별다른 이견 없이 '국회와..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4차 석유 최고가격제 동결…저렴한 주유소로 몰리는 차량들 4차 석유 최고가격제 동결…저렴한 주유소로 몰리는 차량들

  • 꽃밭에서 펼치는 투표참여 캠페인 꽃밭에서 펼치는 투표참여 캠페인

  • ‘장애·비장애 경계 허물고’ ‘장애·비장애 경계 허물고’

  • ‘에너지 절약 동참해주세요’ ‘에너지 절약 동참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