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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률 대전한빛고 교사 |
"네" 또는 "모르셨어요?"가 돌아오는 대답이다.
그렇다, 나는 호구다. 여기서 호구란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지구에 태어나 육십갑자의 세월을 넘겼다. 그중 절반이 넘는 시간을 선생으로 보냈다. 그럼에도 세상을 모른다. 난 늘 사람들의 호구다. 동료 선생님 중에는 내게 세상에 나가면 사기당하기 딱 좋은 사람이니까 퇴직 후에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끔 자기에게 밥이나 사며 살라고 하는 이도 있다. 맞는 말일 게다. 그런데 난 이 호구의 삶이 크게 불편하지 않다. 세상을 그리 많이 알고 싶지도 않고, 지구인들과 아웅다웅 다투며 내 이익을 챙기기 위해 악착같이, 또는 매우 점잖은 척하기는 싫다. 이런 나를 보며 지인들은 말한다. 선생이 아니었으면 뭘 하고 살았으려나? 아마도 나는 선생이 아니었으면 신문지 두 장 들고 대전역에 있지 않을까 하고 답하며 웃는다. 그렇다고 내가 처음부터 선생님이 꿈이었던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 내게도 남들처럼 푸른 꿈이 있었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교직에 길을 걸으며 교사에서 선생으로, 그리고 지금은 스승이 되기를 꿈꾸며 익어가기를 바라는 것이 작은 바람이 됐다.
'손해 보는 듯 사는 게 편해, 사랑도 그래' 또는 '아빠처럼 순진하게 살아라, 그렇지만 바보는 되지 말아라.'
가끔 또 호구 짓을 했구나 싶을 때 혼자서 흥얼거리는 노래다. 성격이 어리석고 모질지 못해 호구 짓을 하기는 하지만, 즐거운 것은 아니니까 나름의 위로는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이렇게 덜떨어진 듯 호구로 사는 내게도 까다로운 점은 있다.
보통, 사람을 처음 만날 때 어떤 이는 옷차림으로, 어떤 이는 표정으로 그 사람을 판단한다고 한다. 나는 사람의 어투를 보고 판단하는 편이다. 말을 하면서 외국어를 자주 섞어 쓰는 사람을 만나면 신뢰하지 않는다. 대부분 그런 사람들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과 가까이하다 보면 불편한 일을 겪는 경우가 많다. 물론 편견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 경험엔 자신을 과장하거나 가식적이거나 이기적인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바른 언어생활이 중요하다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한다.
요즘 많은 어른들이 아이들의 어휘력과 문해력 등에 대해 걱정한다. 실제로 교실에서 수업을 하다 보면 실감하게 된다. 그런데 그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외국어의 남발이다. 방송에서조차 '빌드업', '리스펙', '인프라' 등의 말을 흔하게 듣게 된다. 특히 요즘은 '뷰'라는 말이 너무 설쳐 아예 우리말인 경치나 풍광 등의 말이 사라지고 있다. 아이들이 많이 보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심지어는 뉴스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아무 생각 없이 어른들이 하는 말을 아이들은 그냥 배운다. 우리 문법 체계까지 파괴하는 '현타' 등의 말이 난무하는 요즘의 현상을 보며 누가 먼저 반성해야 하나, 참 난감하다.
얼마 뒤면 한글날이다. 한글날이 되면 평소 우리말을 파괴했던 그 입으로 예능인들이나 아나운서들은 아무 생각 없이 또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고, 자랑스러운 우리말이라고 앵무새처럼 떠들어대겠지. 생각만 해도 부끄러워진다.
사회가 점점 아름다워지며, 서로 칭찬하는 분위기가 익어가고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고 하니까. 그러나 무한 칭찬은 게으름과 오만을 만들기도 한다. 가끔은 따끔한 비판이 필요하다. 이제는 우리가 스스로 돌아보고 채찍을 들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기 위해, 우리 어른들부터 바른 말 고운 말을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다행히 우리 학교는 자연친화적이고 개방적인 교육환경이 잘 갖춰져 있어 아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특히 야외학습장이 갖추어져 있어 야외수업도 가능하다. 꽃 피는 봄날 '한빛광장'에서의 수업은 아이들에게 평생의 추억으로 남음직하다. 이러한 경험이 중요한 이유는 경험은 다양한 어휘를 만들고 문해력을 해결해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은 영춘화, 진달래, 산수유, 해당화, 능소화 등 많은 꽃과 나무들을 보며 자란다.
아름다운 교정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성장하는 우리 아이들이 좀 더 책임감을 갖고 사회생활을 하는 지성과 교양을 갖춘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나 같은 호구가 아니라. 김성률 대전한빛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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