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 칼럼] 134. 과연 친한 친구도 믿지 말아야 하나?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염홍철 칼럼] 134. 과연 친한 친구도 믿지 말아야 하나?

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 승인 2025-09-04 12:00
  • 현옥란 기자현옥란 기자
염홍철칼럼
우리나라 속담에 '열 길의 물속은 알아도 한 길의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문화에서 오래 전해 내려오는 인간 이해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는 속담이지요. '열 길의 물속'은 어렵기는 하겠지만 일단 도구를 통해서 측정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 길의 사람 속'은 사람의 마음을 가리키기 때문에 손쉽게 잴 수도 없고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아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이는 사람의 마음은 쉽게 단정하거나 믿기 어려우므로 조심하고 신중해야 한다는 교훈을 알려준 속담이지요.

요즘 이혼하는 부부가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절친이라고 여겨졌던 사람들도 어떤 계기가 되어 헤어지거나 오히려 앙숙이 되기도 합니다. 평생을 살면서 누구에게나 한두 번씩 경험하는 일이지요. 저도 예외는 아니고 사람 관계에서 이와 관련한 크고 작은 경험을 하였지요. 마음이 아파 몇 날 잠 못 이루기도 하였지요. 여기서 고민의 본질은 상대의 배신적(?) 행위가 아니라 상대에 대한 믿음이 깨졌다는 사실이 더 아픈 것입니다. 이러한 고민에 대해 니체는 답했습니다. 저도 니체의 글을 읽고 다소나마 위로를 받았지요.

니체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과 '도덕의 계보' 등에서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욕망과 권력 의지에 움직인다고 강조했습니다. 따라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말이나 행동은 그 깊은 동기를 가리거나 왜곡할 수 있습니다. 니체는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에게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낸 환상에 실망하는 것이다"라는 취지의 말을 여러 저작에서 하였습니다. 즉 사람을 믿었다가 실망하는 이유는 대게 그 사람이 배신해서라기보다 우리가 그에게 과도한 기대를 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처음부터 사람을 무조건 신뢰하기보다는, 인간은 복잡하고 불완전하다는 전제 위에서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 니체가 말하는 현실적인 태도입니다.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자신이 일방적으로 상대에게 과도한 기대를 했으면서도 거기에 조금 어긋나면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합니다. 더 근본적으로 살펴본다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보존과 권력 확대를 추구하기 때문에 겉으로는 친절과 도덕으로 포장하지만, 내면에는 자기 이익에 대한 계산이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니체는 인간을 '가면을 쓰는 존재'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대부분 도덕이나 체면이라는 가면 뒤에 진짜 동기가 숨겨져 있기 때문에 상대를 곧이곧대로 믿으면 언젠가는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상대'라고 표현했는데 상대는 바로 자기 자신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니체의 주장을 전적으로 수용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도 믿지 말라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니체가 말한 대로 인간은 원래 불완전하다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고 하여도 그로 인해 오히려 사람과의 관계가 더 튼튼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상대를 불신하는 원천적인 이유를 제외하고, 인간관계에서 불신을 만드는 매개체가 있습니다. 즉 중간에 제3자가 있는 것이지요. 우리말에 '귀가 얇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남의 말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라는 비유적 의미이지요. 그런데 귀가 얇은 것은 특정한 사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사람은 '자신에 관한 얘기'는 쉽게 영향을 받게 되지요. 그런데 누구나 명심해야 하는 것은 비록 자신에 관한 얘기일지라도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새겨서 듣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그 말 뒤에 있는 진심까지 이해하려는 자세가 중요하지요. 역지사지도 포함한 말입니다. 상대에 대해 너무 큰 기대도 하지 말고 그렇다고 경계만 하는 것도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자신이 베푸는 것만큼 기대하고, 자신이 믿는 것만큼 상대를 믿으면 됩니다.

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인천 연수구, 지역 대표 얼굴 ‘홍보대사 6인’ 위촉
  2. 시흥시, 별빛 축제 ‘거북섬’ 점등식
  3. "아산으로 힐링 가을여행 오세요"
  4. 행정수도와 거리 먼 '세종경찰' 현주소...산적한 과제 확인
  5. 대전 방공호와 금수탈 현장 일제전쟁유적 첫 보고…"반전평화에 기여할 장소"
  1. 호수돈총동문회, 김종태 호수돈 이사장에게 명예동문 위촉패 수여
  2. [경찰의날] 대전 뇌파분석 1호 수사관 김성욱 경장 "과학수사 발전 밑거름될 것"
  3. 초등생 살해 교사 명재완 무기징역 "비인간적 범죄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4. "일본에서 전쟁 기억은 사람에서 유적으로, 한국은 어떤가요?"
  5. KAIST 대학원생 2명중 1명 "수입 부족 경험" 노동환경 실태조사

헤드라인 뉴스


사실상 큰산 넘은 CTX… 행정수도 완성에 발맞춰야

사실상 큰산 넘은 CTX… 행정수도 완성에 발맞춰야

대전과 세종, 충북을 급행철도로 연결하는 '충청권 광역급행철도(CTX)'가 민자적격성조사 문턱을 넘을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조국혁신당 황운하 의원(비례)이 행정수도 세종 완성을 위한 CTX의 조기 개통 로드맵 마련을 주문했다. 황 의원은 21일 대전 동구 한국철도공사 본사에서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한국철도공사(코레일)·국가철도공단·에스알(SR)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 50번에는 행정수도 세종 완성이 있고, 그 주요 내용을 보면 전국 접근성 개선에서 서울에서 1시간 전국 주요 도시에서 2시간 접근 가능한 교..

2025 AAPPAC 대전총회 개막…"지역의 영감이 세계로 확산되다"
2025 AAPPAC 대전총회 개막…"지역의 영감이 세계로 확산되다"

과학과 예술의 도시, 대전시가 세계 공연예술의 중심에 우뚝 섰다. 21일 대전예술의전당에서 개막한 '2025 아시아·태평양 공연예술센터연합회(AAPPAC) 대전총회'가 3일간의 일정에 돌입했다. '지역적 영감에서 세계적 영향으로(From Local Inspirations to Global Influences)'를 주제로 열린 이번 총회에는 세계 20개국 80여 개 공연예술 기관 관계자가 참석해, 지역이 품은 창의성과 상상력이 세계로 확산되는 길을 함께 모색했다. 첫 번째 세션 '세계 문화를 선도하는 K-컬처'에서는 한국 문화예술이..

대전 방사능 위협 여전한데…유성구 뭐했나
대전 방사능 위협 여전한데…유성구 뭐했나

대전 유성구 최대 현안 중 하나인 원자력안전 교부세 신설이 수년째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입법이 좌절된 이후 올해 초 또다시 관련법이 제출됐지만,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성 나아가 144만 대전시민의 안전과도 직결된 사안인데 행정당국의 이슈파이팅 부족으로 현안 관철은 멀기만 해 보인다. 21일 취재에 따르면 지난 1월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의원(대전유성을)이 대표발의 한 이른바 '원자력안전교부세법'(지방교부세법 일부개정안) 7월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됐다. 현재 위원회 차원에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최고의 와인을 찾아라’ ‘최고의 와인을 찾아라’

  • 제80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 제80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

  • 즐거운 대학축제…충남대 백마대동제 개막 즐거운 대학축제…충남대 백마대동제 개막

  • 올 가을 들어 가장 추운 날…‘두꺼운 외투 챙기세요’ 올 가을 들어 가장 추운 날…‘두꺼운 외투 챙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