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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미 당진 기지유치원 원감 |
'오뉴월 하룻볕'이라는 옛말이 있다. 아이들의 발달단계 마다 성장 속도가 하루하루 다르다는 뜻이다. 그런데 하룻볕이 아니라 5살에서 7살까지 1000일 볕의 차이가 나는 아이들 20명을 혼합학급으로 운영하던 때였다. 이런 학급을 운영하다 보면 황당하고 난처할 때가 자주 생겼다.
유치원 일과 중 가장 어려운 시간은 점심 급식이었다.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이었기에 유치원 교실에서 손을 씻고 실내화를 신은 다음 초등학교의 긴 복도를 지나, 본동과 후동을 연결하는 통로를 걸어가 급식실에 도착 후, 차례로 줄을 서서 식판에 음식을 받아 자기 자리로 가서 앉는 것은 유아들에게는 어려운 미션이었다. 식탁에 앉아서도 수저를 놓치는 유아, 자기 자리를 못 찾아서 우는 유아, 편식이 심한 유아, 먹는 속도가 너무 느린 유아 등 개성이 다른 유아들이 함께 같은 음식을 정해진 시간에 먹는다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 형님들의 급식 시간이 되기 전에 자리를 비워야 하는 상황. 먼저 급식을 마친 열 명을 시니어 선생님이 출근하며 교실로 데려가고, 늦게 밥을 먹는 유아 열 명은 내가 데리고 유치원으로 돌아가는 것이 급식 운영의 방법이었다.
내 교직 생활 중 최악의 사건은 그렇게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식판을 정리하는 유아를 도와주고 먼저 식판을 정리한 유아들이 줄 서는 곳으로 돌아갔을 때, 우리 반 개구쟁이 F4 중 2명이 없어진 것이었다. 교실로 먼저 간 것일까 서둘러 교실에 가보니 교실에도 없었다.
시니어 선생님께 유아들을 부탁하고 다시 급식실로, 초등학교 교실로, 운동장으로 유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세 바퀴 돌아도 □□와 ○○는 찾을 수 없었다. 유치원은 한적한 시골 마을이어서 유괴에 대한 염려는 적었으나 차도와 가까운 문제가 있어서 늘 교통 안전교육을 중시하곤 했다. 안전사고는 빠른 시간에 조치해야 한다는 지침에 따라 초등학교 선생님들과 차도까지 유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찾아다녔다. 어느 곳에서도 유아들은 대답을 들려주지 않았다. 부모님께 연락해 봐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머리카락이 선다는 말을 체험한 40분의 시간이 지나고 마을 이장님께서 방송을 하자 거짓말처럼 두 아이가 유치원으로 뛰어왔다.
무사히 돌아왔다는 반가움과 함께, 학교 전체를 발칵 뒤집어 놓은 대형 사고에 놀란 마음과 걱정을 섞어 "너희 둘이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거야?" 화가 난 교사의 말에 심각함을 인지한 두 아이의 눈은 놀란 토끼 눈 됐다.
"급식실 앞에 하얀 강아지가 와서 강아지 따라갔어요"
"너희들 선생님이 부르는 소리 들었어? 못 들었어?"
"들었어요" 약속이나 한 듯이 둘이서 동시에 대답했다.
"야 그런데 왜 대답 안 했어?, 누구 먼저 그러자고 했어?"
"마음이 그러자고 했어요." ○○의 대답.
아이의 모든 것을 초월한 듯 정직한 대답이 나에게 알 수 없는 영감을 주면서 마무리됐다. 그래. 마음을 꾀어 데려가는 것이 "유괴"의 뜻이라면 이 둘은 강아지에게 유괴당한 것이다. 유치원에서 정한 규칙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강아지를 따라가 쓰다듬어 주고 싶은 것이 동심이었으리라.
살면서 나도 모르게 마음을 유괴당할 때가 있었다. 사시사철 변신하는 이름 모를 들꽃의 변화, 1년 동안 애쓰고 키워 낸 열매를 아낌없이 주는 나무, 휴식하는 대지를 천사의 날개로 덮어 눈이 많은 날, 자연이 아니어도 열정을 다하는 가수의 노래 한 소절에.
이제 와 돌이켜보면 나에게 이런 것보다 큰 마력이 있는 것이 따로 있었다. 언제나 정해진 대답이 아닌 동심이라는 대답을 들려준 다채로운 색깔의 유아들이다. 동심을 가진 유아들과 30년의 시간을 함께했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동심과 함께 한 교직이 행복했고, 앞으로도 내가 받은 순수한 행복을 유아들에게 나누며 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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