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이라 하면 많은 이들이 가장 먼저 바다를 떠올릴 것이다. 서해안 특유의 잔잔한 물결, 해 질 무렵 붉게 물드는 수평선, 그리고 그 위로 갈매기 한두 마리가 날아가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처럼 마음을 다독여 준다. 그 바다를 걷다 문득, '시간도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조용히 물러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없이 다가왔다가, 고요히 사라지는 바다처럼.
그러나 보령의 진면목은 바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을의 보령을 이야기하려면 '옥마산'을 빼놓을 수 없다. 소박한 명산으로 알려진 옥마산은, 가을이 되면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이른 아침 산을 오르다 보면 안개 너머로 단풍이 수채화처럼 펼쳐진다. 붉은빛, 노란빛, 갈빛이 어우러져 자연이 직접 그려낸 풍경화 같다. 나무마다 지난 계절을 견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고, 나는 그 앞에서 한동안 말없이 서 있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자연을 바라보며, 사람도 계절을 닮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묵묵히 시간을 견디고, 제 빛을 찾아가며, 결국 한 계절을 살아내는 것. 내가 보령에서 마주한 가을은 그런 깨달음을 품고 있었다. 바다는 너그러웠고, 산은 단단했다. 그리고 그 둘 사이를 잇는 보령이라는 공간은 조용한 위로가 되어 주었다.
가끔은 여행보다 '머무름'이 필요한 때가 있다. 보령은 그런 곳이었다. 이름 모를 작은 골목, 노란 은행잎이 수북이 쌓인 오솔길, 바다 냄새가 스며든 바람, 그리고 산길에서 마주친 따뜻한 인사까지. 모두가 한 편의 가을을 완성해주었다.
가을은 어느새 조금씩 저물어가고 있지만, 나는 이 계절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 같다. 단풍이 물들었던 옥마산의 아침과, 잔잔했던 보령의 바다를 마음 깊이 담은 채로.
최춘애 명예기자(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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