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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 충남농업기술원장 |
가을을 대표하는 꽃, 국화를 예로 들어보자. 같은 국화라도 꽃의 모양, 색, 크기, 피는 시기가 다르며, 어떤 국화는 진한 향기로 다가오고, 어떤 국화는 은은한 색으로 눈길을 끈다. 한 종 안에서도 성격과 특성이 다른 것을 '품종'이라 한다.
품종은 다른 개체와 구별된다는 이유만으로 인정받지는 않는다. '식물신품종보호법'에 따르면, 품종이 공식적으로 보호받기 위하여 신규성, 구별성, 균일성, 안정성 네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하고, 하나의 고유한 품종명칭을 반드시 부여해야 한다. 신품종은 기존 품종과 명확히 구별될 수 있어야 하고, 동일한 형질을 반복적으로 재현할 만큼 균일하고 안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요건을 충족한 후에 이름을 지어주면 그 품종은 심사를 거쳐 국가에 등록된다.
육종 연구자는 수년간의 연구를 통해 만든 다양한 계통 중 하나를 선발해 새로운 '이름(품종명)'을 부여한다. 품종명은 법적 기준에 따르며 몇 가지 규칙이 있다.
규칙은 '국내 생산·유통·판매되는 품종은 국내외에서 1개의 고유한 품종명칭을 가져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미 등록된 이름과 유사한 명칭은 사용할 수 없으며, '서울', '청정', '명품', '골드', '슈퍼'처럼 지리적 표시나 품질 상태, 우수성을 직접·간접적으로 연상시키는 단어는 소비자의 혼동을 막기 위해 금지된다.
아무리 황금빛을 띠는 쌀이라도 '골드라이스'라 할 수 없고, 향이 뛰어난 딸기라도 '명품향'이라 이름 붙일 수 없다. 품종명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국가가 인정하는 지식재산이자 그 작물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육종 연구자는 이름 하나를 짓기 위해 작물의 특징과 성격을 가장 잘 담아내면서도 소비자에게 쉽게 기억될 수 있는 단어를 찾으려 수없이 고심한다.
품종명은 작물 특성을 반영해 병해충에 강한 품종에는 '강' 자를 넣어 강한 생명력을 표현하고, 향이 좋은 품종은 '향' 자를 넣어 소비자에게 이미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때로는 개발자의 염원을 담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충남농업기술원에서 개발한 국화 품종 '엔젤루팡'이 있다. '엔젤'은 천사의 날개처럼 흰색 꽃잎을 연상하게 하고, '루팡'은 이 꽃으로 사람의 마음을 훔치게 하고 싶다는 연구자의 마음이 담겨 있다.
다른 품종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벼 '빠르미'는 '빠르다'와 쌀을 뜻하는 '미(米)'를 결합한 이름이다. 생육이 빨라 모내기 후 80여 일 만에 수확이 가능한 초조생종 특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소비자에게 가장 익숙한 딸기 '설향'은 '눈 속에서 피어난 향기로운 딸기'를 뜻한다. '킹스베리'는 이름 그대로 '딸기의 왕(king)'이라는 뜻이다. 크고 품격 있는 딸기 이미지를 표현했다.
마늘 '생미향'도 흥미롭다. '생으로 먹어도 매운맛이 적고, 향이 은은해 다른 마늘보다 먹기 편하다'는 특성을 이름에 담았다. 보통 '춘산', '홍산'처럼 마늘을 뜻하는 한자인 '산(蒜)'이 대부분 들어가지만, '생미향'은 소비자가 이름만 들어도 맛과 향을 떠올릴 수 있다.
하나의 품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실험실에서 수천 번의 교배와 실험, 수년의 연구와 평가가 이어진다. 마침내 화룡점정처럼 연구자는 이름을 부여한다.
시 마지막 구절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처럼 육종 연구자는 누구에게도 잊히지 않는 품종명을 짓기 위해 오늘도 고심하고 있다./김영 충남농업기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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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효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