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추야술회(秋夜述懷)

  • 오피니언
  • 문화人 칼럼

[문화人칼럼] 추야술회(秋夜述懷)

백남우 대전향토문화연구회장

  • 승인 2025-11-26 16:50
  • 신문게재 2025-11-27 19면
  • 최화진 기자최화진 기자
2024042401001890500074491
백남우 대전향토문화연구회장
대전광역시 중구 어남동 도리미 마을에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생가터가 있다. 그 터에는 안채와 곳간으로 생가가 복원돼 있다. 안채에 딸린 툇방의 벽에는 단재 선생의 '백두산 도중'(白頭山途中)과 '추야술회'(秋夜述懷)시가 액자로 걸려 있다. 일제강점기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 그리고 『조선상고사』 등을 저술한 위대한 역사학자였던 단재는 이 시를 통해 고난 속에서도 민족의 정신을 잃지 않으려 했던 불굴의 의지와 고뇌를 깊이 있게 담았다. '백두산도중'은 '백두산 가는 길에'라는 뜻으로 이 시에서 선생은 백두산을 향해 가면서 느꼈던 깊은 회한과 고뇌를 담았다. 시의 첫 구절 "인생사십태지리(人生四十太支離)"는 '내 인생 사십 여 년이 너무도 힘들구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선생이 40대에 접어들면서 겪었던 고달픈 삶과 시대적 어려움 속에서 느꼈던 지친 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독립운동가의 길을 걸으면서 겪었던 수많은 역경과 고뇌가 시 속에 스며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시는 단순히 백두산을 오르는 여정이 아니라, 민족의 독립을 향한 험난하고 지리한 길 위에서 선생이 느꼈던 심경을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추야술회'는 '가을밤에 회포를 읊다'라는 뜻으로, 가을밤의 정취 속에서 외롭고 고독한 심정을 토로하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외로운 등불 가물가물 시름을 돋우는데/단심을 다 태워도 마음은 편치 않다/창 들고 나갔으나 나라 운명 못 돌리고/무딘 붓으로 청구 역사 그려본다/이역 방랑 십 년, 수염에는 서리 내리고/병들어 누운 깊은 밤, 달빛은 누각에 비친다 (단재의 칠언율시 '추야술회' 중에서)

"고등경경반인수(孤燈耿耿伴人愁)"라는 구절은 '가물거리는 외로운 등불 아래 근심이 나를 동반한다'는 뜻이다. 이는 독립운동의 외로운 길을 걸으면서 느꼈던 고독함과 민족의 미래에 대한 근심, 그리고 개인적인 번뇌가 어우러져 더욱 처절하게 느껴지는 구절이다. 어두운 가을밤, 홀로 앉아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선비의 모습이 절로 떠오른다. 이 시는 단재 신채호가 43세였던 1922년에 쓴 칠언율시로, '추야술회'에는 나라 잃은 슬픔과 애수가 잘 드러난다. 단재는 교육자, 언론인, 역사학자였고 독립운동가로 육체와 영혼을 모두 조국에 바쳤다. 그는 또한 시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시를 위해 시를 쓴 적이 없다. 단재의 이러한 시들은 그 자체로 문학적 가치도 높았지만, 당시 시대 상황과 독립을 염원했던 우리 민족의 아픔과 의지를 담고 있다. 이 시들을 통해 선생의 고결한 정신과 굳은 신념을 느껴볼 수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으로 온 나라가 들썩일 때 충남 대덕군 산내면 어남리 도리미 마을 (현 대전 중구 어남동)콩밭 돌무더기 옆에 작은 표지석이 세워졌다. 대전 지역의 민간 향토사 단체인 '옛터를 생각하고 돌아보는 모임'(옛.생.돌.모임)에서 단재 신채호 선생이 태어나신 터를 찾아내고 이를 알리기 위해 작은 표지석을 세웠다. 그 후 이곳이 대전시로 편입되며 생가터가 시 기념물로 등재되며 본격적으로 생가터 발굴과 생가 복원이 이루어졌고, 인근에 동상도 세워졌다. 2007년부터 대전의 시민 단체가 주축이 되어 단재가 태어난 12월 8일에 생가 동상 앞에서 탄생 기념 헌화식을 시작하여 오늘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올해도 12월 8일 145주년을 맞는 단재 선생의 탄신기념식이 도리미 생가터에서 전국 행사로 거행될 예정이다. 선생은 나라 잃은 슬픔에 조국의 완전한 독립을 위해 풍찬노숙하며 이역 땅에서 조국을 위한 헌신으로 외로운 길을 걸었다. 저물어 가는 광복 80주년 어느 날, 초가지붕 이엉이 썩어 무너져 내려 초라한 모습의 단재 생가 앞에서 '추야술회'를 보며 한없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인다.

백남우 대전향토문화연구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갑천에서 18홀 파크골프장 무단조성 물의… 대전시, 체육단체장 경찰 고발
  2. 애터미 '사랑의 김장 나눔'… "3300kg에 정성 듬뿍 담았어요"
  3. 대전 불꽃쇼 기간 도로 통제 안내
  4. "철도 폐선은 곧 지역소멸, 대전서도 관심을" 일본 와카사철도 임원 찾아
  5. 전기차단·절연 없이 서두른 작업에 국정자원 화재…원장 등 10명 입건
  1. 30일 불꽃쇼 엑스포로 차량 전면통제
  2. "르네상스 완성도 높인다"… 대전 동구, '주요업무계획 보고회'
  3. 코레일, 겨울철 한파.폭설 대비 안전대책 본격 가동
  4. <인사>대전시
  5. 충남대-대전시 등 10개 기관, ‘반려동물 산업 인재 양성 업무협약’

헤드라인 뉴스


李정부 `공무원 복종의무` 삭제추진에 대전 관가 설왕설래

李정부 '공무원 복종의무' 삭제추진에 대전 관가 설왕설래

이재명 정부가 국가공무원법상 '공무원의 복종 의무'를 삭제하는 개정안을 입법예고 한 것을 둘러싸고 지역 관가에서 설왕설래가 뜨겁다. 일선 현장에선 76년 만에 독소조항 폐지 기대감으로 공정하고 투명한 공직 문화 정착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 환영기류가 우세하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장 일각에선 개정안 국회 통과 때 자칫 지휘체계가 휘청이면서 오히려 주민 불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26일 대전 지역 공직사회에 따르면 인사혁신처가 전날 입법 예고한 국가공무원법 상의 '공무원의 복종 의무'를 삭제하는 개정안을 둘..

이번엔 반려동물 간식… 바이오 효소 들어간 꿈돌이 닥터몽몽 출시
이번엔 반려동물 간식… 바이오 효소 들어간 꿈돌이 닥터몽몽 출시

대전시는 26일 시청 응접실에서 대전관광공사, ㈜인섹트바이오텍과 함께 '꿈돌이 닥터몽몽' 출시를 위한 공동브랜딩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은 캐릭터 중심의 제품을 넘어 지역 재료·스토리·생산기반을 더 촘촘히 담아야 한다는 취지로 대전의 과학·바이오 정체성을 상품에 직접 반영하려는 시도다. 이번에 출시 준비 중인 '꿈돌이 닥터몽몽'은 인섹트바이오텍의 연구 포트폴리오로 알려진 자연 유래 단백질분해효소(아라자임) 등 바이오 효소 기술을 반려동물 간식 제조공정 단계에 적용해 기호성과 식감 등 기본 품질을 고도화한 것이 특징이다. 인섹..

안전상식 겨룬 초등생들의 한판…공주 대표 퀴즈왕 탄생
안전상식 겨룬 초등생들의 한판…공주 대표 퀴즈왕 탄생

열띤 경쟁 속에서 펼쳐진 공주시 어린이 안전골든벨이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25일 공주환경성건강센터에서 공주시와 중도일보가 주최·주관한 '2025 공주 어린이 안전골든벨'이 열렸다. 이날 행사는 안전에 취약한 어린이들이 안전 상식을 재밌는 퀴즈로 풀며 다양한 안전사고 유형을 학습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74명의 공주지역 초등학생들이 대회에 참가해 골든벨을 향한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본 대회에 앞서 심폐소생술 교육이 먼저 진행되자 학생들은 교사의 시범을 따라가며 "이렇게 하는 거 맞나요?"라고 묻거나 친구에게 압박 리듬을 맞춰보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 채비 ‘완료’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 채비 ‘완료’

  • 가을비와 바람에 떨어진 낙엽 가을비와 바람에 떨어진 낙엽

  •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행복한 시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행복한 시간

  • 대전시의회 방문한 호치민시 인민회의 대표단 대전시의회 방문한 호치민시 인민회의 대표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