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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영 국장 |
지금 겨울의 들녘은 본연의 흙빛을 그대로 내뿜으며, 다시 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아직 겨울의 빛을 머금고 있는 들녘 속에 농부들도 봄을 향해 바삐 움직이고 있다.
새해 농사 계획을 다시 세우고 창고에 두었던 농기계를 꺼내 점검하고 모종판을 씻고 흙을 고르며 한 해 농사의 첫 단추를 채운다. 농업의 새해는 달력보다 조금 일찍 시작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 준비의 시간은 동시에 농업재해의 위험이 본격화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겨울 동안 사용하지 않던 농기계의 재가동, 익숙함에 기댄 무리한 작업, 작물의 시간에 맞추어 서두르는 마음 등은 사고로 이어지기 쉽다.
실제로 농업인의 연간 재해 발생률은 산업재해 평균보다 높은 수준을 보이며, 넘어짐, 끼임, 전도, 농기계 사고뿐 아니라 다양한 근골격계 질환까지 유형도 다양하다. 그러나 농업 현장에서 안전을 지키는 일은 쉽지 않다. 농작업은 계절과 작목, 그리고 지역에 따라 모두 다르고 작업의 종류 또한 복잡하다. 대부분이 소규모, 개별 경영형태로 이뤄지다 보니 산업 현장처럼 체계적인 안전관리 시스템을 갖추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오랜 시간 반복해온 작업 속에서 위험에 대한 감각은 무뎌지기 쉽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농업재해를 개인의 부주의만으로 돌리는 시선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안전은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과 시스템의 문제이기 때문에 사회적 관심과 공공의 역할, 정책적 지원이 함께 작동되어야 비로소 실질적 변화가 이루어진다.
이에 충청남도농업기술원은 농업 안전을 일회성 교육이나 단편적 사업이 아닌 농업의 지속성과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핵심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단순히 사고를 줄이는 것에서 나아가 농업인이 스스로 안전한 작업환경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정책의 방향을 두고 있다.
먼저 농업 현장에서 작업 공정별 위험요인을 찾아내고, 작업대 높이 조정, 동선 개선, 미끄럼 방지 등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개선도 진행했다. 또한 농업인이 단순 교육 대상이 아니라 안전 개선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도록 마을에 안전 리더를 육성하고 농업인 스스로 안전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아무리 좋은 제도와 장비가 있어도 현장에서 실천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래서 충청남도는 참여형 안전 실천 캠페인, 리더 주도형 안전 결의, 마을 단위 교육과 실습 프로그램을 확대하며, 안전 문화를 생활 속에 뿌리 내리고 있다. 작은 변화지만 안전은 규제가 아니라 '내 몸을 지켜주는 장치'라는 인식 변화가 시작됐다. 이는 농업 안전이 현장 중심, 참여형 방식으로 접근할 때 효과가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또한, 현장의 위험요인을 직접 줄이는 실증형 안전사업도 추진 중이다. 2026년에는 지난해 현장 조사결과 농업 현장에서 가장 많은 사고로 이어지는 전기설비 개선 사업과 웨어러블 슈트 보급 시범도 계획 중이다. 농업인 안전보험 통계와 사고 유형, 지역·작목별 위험요인을 분석해 정책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사고가 집중되는 시기에는 예방 교육과 현장 점검을 더욱 촘촘히 운영하는 등 데이터 기반 안전정책을 추진하고자 한다.
농업 안전은 개인의 주의에만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 단위의 지속적인 안전관리 체계 구축, 현장 맞춤형 컨설팅 확대, 농작업 환경 개선을 위한 재정적·제도적 지원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농업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이며, 규제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조건이다. 땀 흘리는 일터에서 최고의 수확은 더 많은 생산량이 아니라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는 하루다. 농업인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을 때 농업은 지속될 수 있고, 우리 먹거리도 지켜질 수 있다. 한 해 농사가 시작되는 이 시점, 농업 안전을 다시 묻는 일은 결국 우리 사회가 농업과 농업인의 삶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라 생각된다./이진영 충남농업기술원 농촌지원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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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효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