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권익위원 칼럼] 뒤늦은 민법 개정이 남긴 숙제

  • 오피니언
  • 독자위원회 & 독자위원 칼럼

[독자권익위원 칼럼] 뒤늦은 민법 개정이 남긴 숙제

장정훈 변호사(법률사무소 서북)

  • 승인 2026-02-19 10:24
  • 신문게재 2026-02-20 18면
  • 김흥수 기자김흥수 기자
장정훈(신규 사진)
장정훈 변호사(법률사무소 서북)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을 맞아 온 가족이 둘러앉아 덕담을 나누는 풍경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따뜻한 뿌리지만, 누군가에게는 해묵은 가족 간 갈등이 다시 고개를 드는 고통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특히 변호사로서 현장에서 마주한 가족 간의 상속 분쟁은 단순히 재산을 나누는 문제를 넘어 평생의 회한과 상처가 터져 나오는 치열한 각축장이 되곤 합니다. 이번 명절에는 상속의 지형을 바꾼 유류분 제도 관련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그에 따른 민법 개정안 통과 소식을 통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가했던 상처가 법의 이름으로 어떻게 정리돼야 하는지 의미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유류분(遺留分) 제도는 피상속인의 생전 처분이나 유언에 따른 재산 처분의 자유를 제한해, 법정상속인 중 일정 범위의 근친자에게 상속재산의 일부를 보장하는 제도입니다. 1977년 도입 당시에는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특정 상속인의 재산 독점을 막고 유족의 생존권을 보호한다는 숭고한 취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세기가 흐른 지금, 1인 가구와 비혼 인구의 증가 등 급격한 시대 변화 속에 이 제도는 개인의 재산권 행사라는 헌법 가치와 충돌하며 거센 변화의 요구를 직면해 왔습니다.



지난 2024년 4월 25일, 헌법재판소는 유류분 제도의 일부 조항에 대해 위헌 및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첫째, 형제자매 유류분 폐지입니다. 피상속인의 형제자매에게 유류분을 부여하는 조항은 즉시 효력을 상실했습니다. 형제자매는 상속재산 형성에 기여가 적고 생존권 보호의 필요성도 낮다는 시대적 판단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둘째, 불합리한 보장 타파입니다. 피상속인을 학대하거나 부양의무를 위반한 '패륜 상속인'에게도 기계적으로 유류분을 보장하는 현행법의 불합리함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입법 개선을 촉구했습니다. 끝으로 기여분 준용의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한 기여자가 받은 보답적 증여가 유류분 반환 대상이 되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는 점도 명확히 지적되었습니다.



헌재의 결정 이후 입법 시한인 2025년 말까지 지지부진하던 논의는 최근인 2026년 2월 12일에서야 민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일단락됐습니다. 이번 개정의 핵심은 '상속권 상실 제도의 도입'과 '기여분의 실질적 인정'입니다.

패륜 상속인 배제(상속권 상실 선고)로 기존 부모에 한정됐던 상속권 상실 대상이 자녀와 배우자 등 모든 상속인으로 확대됐습니다. 이제는 단순한 도덕적 비난을 넘어, 가정법원의 선고를 통해 상속권을 박탈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마련됐습니다. 또한 상당 기간 피상속인을 간병하거나 재산 형성에 특별히 기여한 상속인이 받은 보상적 증여는 유류분 반환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고생한 상속인이 오히려 소송을 당하는 구조적 모순을 해결한 것입니다.

이번 민법 개정은 2024년 헌재 결정 이후 개시된 상속까지 소급 적용되지만, 국회의 입법 지연으로 인해 그간 현장에서는 수많은 유류분 소송이 공전하며 갈등의 골이 깊어졌습니다. 사법적 논의가 거대 담론이나 정쟁적 재판 소원에 치중되는 사이, 가족 간의 갈등은 법의 방치 속에 장기화됐습니다. 가족들이 겪었을 긴 고통의 시간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받기 어렵습니다.

법은 시대의 눈물을 닦아주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최후의 보루여야 합니다. 이번 명절, 가족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되새기며 동시에 법이 이 관계 속에서 어떻게 공정을 담보해야 하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앞으로 축적될 판례들이 '중대한 부양의무 위반'과 '특별한 기여'를 판단함에 있어, 법의 기술적인 잣대를 넘어 우리 사회의 보편적 양심과 효(孝)의 가치를 온전히 담아내길 기대합니다. /장정훈 변호사(법률사무소 서북)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5대 은행 전국 오프라인 영업점, 1년 새 94곳 감소
  2. 설 연휴 충청권 산불 잇따라…건조한 날씨에 ‘초기 대응 총력’
  3. 1950년~60년대 설날 기사는?
  4. 금성백조, 지역 어르신께 명절 맞이 위문품 전달
  5. 대전충남 눈높이 못미친 행정통합法 "서울 준하는 지위 갖겠나" 비판
  1. 역주행 사망사고 등 설 연휴 내내 사고 이어져
  2. 대전문학관, 상반기 문학교육프로그램 수강생 모집…5개 강좌 운영
  3. 이장우 충남대전통합법 맹공…본회의 前 초강수 두나
  4. 30대 군무원이 40대 소령에게 모욕, 대전지법 징역의 집유형 선고
  5. 대전 '보물산 프로젝트' 공공개발로 전환, 사업 추진 속도

헤드라인 뉴스


지역 대학 외국인 유학생 증가 실상은…단기 어학연수 후 떠나는 학생 대부분

지역 대학 외국인 유학생 증가 실상은…단기 어학연수 후 떠나는 학생 대부분

최근 국내 대학에 외국인 유학생들이 늘고 있지만, 비수도권은 실질적인 유학생 유입 성과를 누리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대학은 학위 과정보다는 단기 어학연수 등 비학위과정을 밟는 유학생 비율이 더 많고, 지역 취업과 정주로 이어지는 사례도 적어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유도책 마련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다. 18일 중도일보 취재결과, 2025년 기준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발표한 국내 외국인 유학생 수는 25만 3434명이다. 전년인 2024년(20만 8962명)보다 21% 가량, 코로나 시기인 2020년(15만 3695명)보..

‘내란 우두머리 혐의’ 윤석열 사형 선고되나… 19일 법원 판단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 윤석열 사형 선고되나… 19일 법원 판단은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로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19일 사형이 선고될지 주목된다. 앞서 내란 혐의가 인정돼 한덕수 전 국무총리(징역 23년)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징역 7년)이 중형을 받은 만큼 사형이나 무기징역이 불가피하다는 게 중론이다. 비상계엄 실무를 진두지휘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조지호 전 경찰청장 등 7명의 군·경 지휘부에 대한 형량에도 관심이 쏠린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지귀연)는 19일 오후 3시부터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선..

또 오르는 주담대·신용대출 금리…영끌·빚투 `비명`
또 오르는 주담대·신용대출 금리…영끌·빚투 '비명'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금리가 일제히 오르면서 대출 수요자들의 이자 부담이 커지고 있다. 특히 국내 증시 상승세와 맞물려 신용대출 수요가 최근 들썩이면서 금융시장 전반의 잠재 리스크에 대한 우려도 함께 확산하는 분위기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설 명절 연휴 직전 13일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신용대출 금리는 연 4.010∼5.380%(1등급·1년 만기 기준) 수준으로 집계됐다. 신용대출 금리 하단이 3%에서 4%대로 올라선 건 2024년 12월 이후 1년 2개월 만이다. 지난달 16일과 비교하면 약 한 달 사..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고향의 정 품고 ‘다시 일상으로’ 고향의 정 품고 ‘다시 일상으로’

  • 설 연휴 끝…막히는 귀경길 설 연휴 끝…막히는 귀경길

  • 1950년~60년대 설날 기사는? 1950년~60년대 설날 기사는?

  • 이제는 사라지거나 잊혀져 가는 명절 모습 이제는 사라지거나 잊혀져 가는 명절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