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제107주년 3·1절을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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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제107주년 3·1절을 맞으며

민병찬 국립한밭대학교 산업경영공학과 교수·민주평통 대통령자문위원

  • 승인 2026-03-10 10:29
  • 신문게재 2026-03-11 19면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민병찬
민병찬 국립한밭대학교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2026년 제107주년 3·1절을 맞아, 오늘의 대전 유성구 도룡동, 곧 기초과학연구원(IBS)이 자리한 그 땅에서 태어난 한 사람의 삶이 충남 홍성 금마와 장터의 만세 함성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얼마나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가.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은 선언문 한 장에 머물지 않았다. 탑골공원에서 터져 나온 외침은 평양과 진남포를 지나 전국의 장터와 마을로 번져 나갔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이 체포와 투옥, 생계의 파탄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감수해야 했다. 우리가 '3·1운동'이라 부르는 역사는 중앙의 이름난 인물들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각 지역의 현장에서 몸으로 결단한 사람들까지 함께 있었기에 비로소 완성될 수 있었다.

그 가운데 한 분이 경암 민영갑 선생이다. 선생은 동몽선습의 저자 입암 민제인 선생의 12대 후손이며, 필자에게는 종조부가 된다. 유학적 도의와 책임을 중히 여겨온 선대의 정신은 일제강점기라는 비상한 시대 앞에서 더 이상 말로만 머물 수 없었다.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도룡동, 옛 경운리는 오늘날 연구단지와 첨단산업의 상징처럼 여겨지지만, 한 세기 전 그곳은 나라를 잃은 백성의 절박함과 시대의 울분이 켜켜이 쌓인 삶의 터전이었다.



공적조서에 따르면 선생은 1919년 4월 1일 충남 홍성군 금마면 가산리의 임시 흥행장에서 독립의 정당성을 외치며 만세를 선창했다. 이어 다음 날인 4월 2일에는 홍성장터로 번진 시위에 참여하고 이를 이끌며 지역 군중과 함께 항일의 뜻을 분명히 밝혔다. 그 시절 '만세'라는 두 글자는 결코 가벼운 구호가 아니었다. 그 한마디는 곧 체포와 구금으로 이어질 수 있었고, 가족의 삶과 생업 전체를 뒤흔드는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선생은 자신 한 사람의 안위를 지키는 길이 아니라 공동체를 지키는 길을 선택했다.

선대의 가풍으로 전해진 '문행충신(文行忠信)'의 정신 역시 그러한 선택의 밑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학문을 닦되 거기서 멈추지 않고 삶으로 실천하며, 나라와 공동체를 향한 충정을 품고, 끝내 약속과 신의를 지키는 태도. 그것은 난세 속에서 추상적인 덕목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윤리였다. 선생이 후손들에게 "나라가 바로 서야 가문도 바로 선다"는 뜻을 남겼다고 전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이는 가문을 앞세우는 말이 아니라, 공동체가 무너지면 개인의 삶 또한 온전히 설 수 없다는 준엄한 경계이며, 편의가 아니라 정의를 선택하라는 요청이다.



이러한 공적은 국가로부터도 공식적으로 인정받아 선생은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훈했다. 그러나 훈장은 지난 영광을 장식하는 표식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삶을 귀하게 여기고, 어떤 선택을 오래 기억해야 하는지를 일깨우는 사회적 기준이어야 한다. 오늘의 후손들 또한 각자의 자리에서 공공의 책무를 다하며, 사법의 현장과 학문의 세계는 물론 지역사회와 공익의 영역에서도 조용하지만 꾸준하게 사회를 떠받치고 있다. 이는 선열의 뜻이 특정한 시대의 기념비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흘러도 삶의 태도와 실천 속에서 계속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3·1운동은 지나간 사건으로만 남아 있지 않다. 자유와 자주, 정의와 책임이라는 가치는 지금도 우리 사회가 놓지 말아야 할 기준이다. 지역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다시 불러내는 일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 지역 정체성을 회복하는 작업이자, 다음 세대에게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가르치는 살아 있는 교육이다. 도룡동의 오늘과 홍성 장터의 그날을 하나의 선으로 잇는 기억 위에서, 우리는 더 성숙하고 단단한 지역 공동체를 세울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억에서 멈추지 않는 실천의 다짐이다. 선열들이 지켜낸 자주와 정의의 가치를 오늘의 삶 속에서 되살리기 위해, 우리는 일상에서 원칙을 지키고 공공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선택을 거듭해야 한다. 지역의 역사와 인물을 더욱 충실히 기록하고 교육하며, 다음 세대가 그것을 자부심으로 이어받을 수 있도록 제도와 문화의 토대 또한 함께 다져야 한다. 결국 공동체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작은 실천이 쌓여 다시 세워진다. 제107주년 3·1절, 우리는 이제 '기억의 빚'을 갚기 위해 누구의 이름부터 다시 불러야 하는가. /민병찬 국립한밭대학교 산업경영공학과 교수·민주평통 대통령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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