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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기한 대전대 교수 |
어느 특정 분야에 종사했던 사람들이 실수로, 또는 비윤리적인 행위로 말미암아 평생 쌓아온 자신의 업적을 잃거나 몸담았던 직업 공간을 떠나야 하는 일들이 발생한다. 한때 MLB에서 전도유망했던 선수가 음주 운전으로 야구장을 떠나기도 했고, 또 유력한 대권 주자였던 정치인이 비윤리적인 행위로 처벌을 받고 정치를 그만두기도 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죄의 의미와 그것이 가진 사회적 파장에 대해 다시 한번 환기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현대 사회에서 죄는 법으로 다스리게 되어 있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직접 죄를 묻지 않게 하는 것인데, 이는 개인이 복수를 함으로서 끝없는 보복의 악순환을 끊게 하고 그럼으로써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러한 까닭에 법의 역사는 길다. 성경에 등장하는 율법학자들의 존재가 이를 말해주거니와 세속적으로는 고대의 함무라비 법전이 있었고, 중국 진나라 시절에는 이사와 같은 인물이 등장해 법에 의한 통치를 주장한 것이다.
법은 사람들이 잘못된 행위에 대해 단죄를 하고 그 집행이 끝나면 죄에서 벗어나게끔 만든다. 과거 죄를 범한 사람의 흔적은 남을 수 있지만, 그 죄의 사슬은 더는 유효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이런 법의 작동 원리가 올바로 기능하고 있는 것일까. 능력 있던 야구 선수는 음주 운전으로 벌금형을 받았고, 또 그에 따른 출장 정지 처분도 받았다. 하지만 이 선수는 다시 그라운드에 돌아올 수 없었다. 죄의 대가를 치루고도 또 다른 상상적 죄의 사슬이 계속 그를 옥죄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 장래가 촉망되던 정치인 역시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대가를 치루고도 여전히 정치와는 무관한 삶을 살고 있다.
이런 일련의 현실을 목도하면서 이 사회가 진정 법치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 국가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죄라는 올가미가 한번 덧씌워지게 되면 여기서 벗어나는 일이란 영원히 불가능한 일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이 세속의 죄는 결코 씻기지 않는 죄, 종교적인 원죄이고, 업이며,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도 같은 것이란 말인가.
분단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받은 교육 가운데 하나가 반공 교육이다. 그 가운데 인민재판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제도화된 법절차를 밟지 않고, 대중 선동에 의해 인간을 재단하는 것이 이 재판의 특징적 단면이다. 가령, "이 사람은 죄인입니다. 그러니 심판받아야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면 "옳소"하는 집단의 메아리가 반향하게 된다. 그 예기된 에코야말로 '이 사람'은 마땅히 처벌받아야 하는 상징 기호가 된다. 그것이 인민재판의 형식이다.
어떤 범죄의 징후가 있고 나면, 일부 피해자는 사법기관을 선택하지 않는다. 연관된 시민 단체나 언론기관에 가서 여론 재판을, 마녀사냥을, 아니 인민재판을 시도하려 든다. 그래서 이 재판의 가혹한 메아리는 가해자로 추정되는 사람을 정당한 법의 심판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비참하게 예고된, 죽음이라는 결과를 강요당하게 된다. 인민재판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버젓이 자행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죄로부터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다. 그 원죄를 해결하고자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분이 왜 '세상의 빛'인지는 다음의 사례가 잘 말해준다. 어느 날 예수님 앞으로 간통을 저지른 한 여인이 끌려 왔는데,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이 여인은 돌로 맞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이 여인을 어떻게 정죄하는지 시험해 보고자 했다. 그런데 예수님의 판결은 의외였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라고 했더니 아무도 돌을 던지지 못했다. 예수님은 벌을 주는 대신에 이 여인에게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시며 새로운 길로 안내하셨다. 죄가 없고, 자신만은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자가 있으면 말하라. '심지어' 죗값을 치른 이들에게 "야구를, 정치를 하지 말라"고 말이다./송기한 대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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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효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