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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왼쪽부터 민병훈 총괄 프로그래머, 정승오 감독. 사진=한성일 기자 |
장편 데뷔작 <이장>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대한민국 가족극을 선 보인 정승오 감독이 또 다른 문제적(?!) 가족을 그려낸 역작 <철들 무렵>의 프리미어 시사회를 겸한 GV(관객과의 만남)로 8월25일 오후 7시 씨네인디U를 찾아온 뒤 이렇게 말했다.
이날 진행을 맡은 민병훈 씨네인디유 총괄 프로그래머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 등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뜨거운 호평과 반응을 이끌어냈던 이 작품을 앞서 만나 창작자와의 만남과 대화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는 시간에 오신 관객 여러분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영화 <철들 무렵> 프리미어 시사회(유료) 상영 후 GV(관객과의 대화)가 25일 오후 7시부터 밤 10시까지 문화동 기독교연합봉사회관 1층 씨네인디유에서 열렸다.
유.아.독.존 철부지 시한부 아빠인 기주봉 배우와 고.군.분.투 명배우 지망생 딸인 하윤경 배우, 남편과 20년째 별거 중인 유.유.자.적 싱글 라이프 엄마 양말복 배우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다. 제 코가 석자인데, 서로가 서로를 책임져야 하는 세 사람. 원하는 건 건강한 내일과 완전한 자유뿐이다. 효도는 계약서로, 독립은 선전포고로. 피는 물보다 진하지만, 그래서 더 지긋지긋한 이 가족의 철들 무렵이 관객들에게 깊은 공감을 전해준다.
용접기사 철택(기주봉 역)이 암 말기 선고를 받는다.이 소식은 단역배우인 외동딸 정미(하윤경 역)뿐만 아니라, 철택과 사실상 이혼한 상태로 공무원 은퇴 후 노후를 즐기던 현숙(양말복 역), 구순을 앞둔 현숙의 어머니 옥남, 철택의 친형 관택과 관택의 손자 동민의 삶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멀리 지내던 양가 가족들은 과거를 반추하며, 서로에게 곪아 있던 마음의 고름과 마주하게 되는데…죽음의 그림자와 함께 찾아온 이들의 시간, '철들 무렵'이다.
정승오 감독은 지난해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송원 시민평론가상과 한국영화감독조합 플러스엠상을 수상했다.
정 감독은 이에 앞서 장편 영화 <이장>으로 2019년 제8회 바스타우국제영화제 대상, 2019년 제35회 바르샤바국제영화제 신인감독경쟁 대상을 수상한 감독이다.
28회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는 땡그랑동전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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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왼쪽부터 민병훈 총괄 프로그래머, 정승오 감독. 사진=한성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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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철들무렵 포스터. 사진=한성일 기자 |
아흔이 다 되어 글쓰기를 배운 할머니가 평생 살아온 과정을 적어 다섯 개 장으로 나눈 영화에서, 장이 시작될 때마다 또박또박 읽는다. 식민지 수탈로 피폐해진 대한인의 모습, 성노예로 끌려간 사실들, 전쟁 그리고 민주화를 위한 저항과 죽음의 시기를 지나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모습인데 정승오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에서 “제가 박완서 작가 작품을 너무나 좋아해서 박 작가님의 글을 할머니의 내레이션으로 인용해 왔다”고 말했다. 정승오 감독은 또 “제가 한영애 가수를 좋아해서 영화 전반에 한영애 가수의 노래를 넣었다”고 소개했다.
영화는 1. 극복할 수있는 가능성에 대해. 2. 밝은 얼굴의 낯선 사람들 3. 상처 속에 박힌 말뚝 4. 차오를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5. 새날이 밝았다 등 5가지 파트로 나뉘어 있다.
영화 스토리를 보면 직장에서도 반주로 소주 한병 정도는 몰래 먹고 일하는 아버지 철택(기주봉)은 암 판정을 받는다. 그의 몸은 금간 자기 집 벽보다 더 깊게 병들었다.
정미(하윤경)는 귀신으로 분장한 엑스트라로 출연하는데 그 이상 인정받지 못한다. 생계도 어려운데 이제 아버지 간병까지 해야 한다.
부녀간 평소 대화는 톡톡 튀고 서로 걱정하는 마음은 깊은 듯 보이는데 병원비 문제에서부터 뭔가 꼬이기 시작한다. 이 둘을 시작으로 가족 범위가 점점 넓어진다. 20년 째 별거 중인 엄마의 생활상, 유치원가는 손자를 둔 큰아버지 가족, 엄마와 이모네 가족, 그리고 구순 잔치를 앞둔 외할머니까지.
가족이란 울타리는 가장 탄탄해 서로 보호도 하지만 넘어가기 어려운 담이 되어 부담을 주고 길을 막고 짓누르기도 한다. 형제라도 손을 벌리면 선뜻 주는 사람이 어느 정도 될까? 이혼해도 친구처럼 지낼 수 있을까? 노모를 내가 모시겠다고 적극 나설 수 있을까? 그 어느 것도 현실에선 쉽지 않고 미루거나 변명을 늘어놓게 된다.
<철들 무렵>은 다투고 외면하더라도 등 돌리기 쉽지 않은 가족의 현실들을 잘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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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철들무렵에서 딸 역할의 하윤경 배우와 아버지 역할의 기주봉 배우. 사진=한성일 기자 |
암 말기 판정을 받은 아버지 철택, 생업과 간병을 동시에 떠안은 딸 정미, 가족 내 역할에서 벗어나 자유를 꿈꾸는 현숙, 세 인물을 중심으로 또 한 번 대가족을 스크린에 불러들인다. 풍미를 만들어내는 솜씨는 한층 노련하고 넉넉해졌다. 관계의 복잡성을 보듬으며 뭉근하게 끓이던 영화는, 일상의 아이러니와 위트도 놓치지 않고 톡 쏘는 맛을 중간중간 더한다. <철들 무렵>은 가족을 단일한 서사로 묶기보다 그 속에 시대적 경험과 세대 간극, 개인의 욕망까지 차곡차곡 겹쳐 놓기를 택한다. 다양한 인물과 이야기를 엮으며 가족이라는 연약하면서도 질긴 공동체를 재현하는 힘이 돋보이고, 질병, 노화, 돌봄, 부양 등 현실적 주제를 각 인물이 거쳐 온 삶의 맥락에서 해석하는 포용력은 든든함을 안긴다.
정승오 감독은 “추석 전후 9월16일 개봉하는 이 영화는 가족이 모두 함께 보시면 좋을 영화”라며 “대형 영화들 사이의 독립영화는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같은 느낌인데 제가 돌팔매를 잘 던질 수 있도록 관객들께서 많이 관심 갖고 사랑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또 “제 고향은 인천인데 늘 넉넉지 않은 형편이다 보니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영화의 모든 장면은 인천에서 찍고 있다”며 “앞으로도 인천에서 계속 영화를 찍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 감독은 영화 속 최애 대사를 묻는 질문에 “영화 말미에 이혼 도장을 찍고 법원에서 헤어져 나온 양말복이 차를 운전하고 지나가던 중에 길거리 신호등 앞에 추레하게 서 있는 이혼한 남편 기주봉을 창밖으로 보면서 ‘많이 늙었네’라고 말하는 장면”이라며 “현숙 역을 맡은 양말복의 열연이 돋보이는 장면”이라고 소개했다. 정 감독은 이어 “가족 안에서 개인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을까?를 묻는 영화”라며 “90노모 옥남이 구순 잔치 후 자녀들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는 장면을 기억해달라”고 말했다.
한편 정승오 감독은 단편 <새들이 돌아오는 시간>(2016), <오래달리기>(2018)를 포함해 총 다섯 편의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이후, 첫 번째 장편영화 <이장>(2020)을 연출했고, 김정은 감독의 <경아의 딸>(2022)에서는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철들 무렵>은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한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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