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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7월6일:재즈황제, 루이 암스트롱의 ‘멋진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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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7-0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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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 암스트롱/사진=위키백과
▲ 루이 암스트롱/사진=위키백과

루이 암스트롱의 어린 시절은 척박했다.
뉴올리언스의 뒷골목, 찢어지게 가난했던 오두막집에 애가 딸린 창녀였던 어머니가 그를 둘러싼 환경이었다. 아버지 윌리엄 암스트롱은 루이가 태어나자마자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려 떠났다.

가난은 공부할 기회마저 빼앗았다. 학교에 갈 나이가 됐어도 학교보다는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했다. 신문배달에 잔반청소, 석탄배달 등 하루 벌어 하루 살기도 버거운 삶이었다. 학교에 있는 시간보다 교내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잦아지면서 자연히 학교를 나오게 됐다.

또래 아이들과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중창단 활동을 하던 그는 열세 살 무렵 의붓아비의 권총에 손을 댔다가 소년원에 갇히게 됐다. 그것은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루이는 소년원에서 코넷(트럼펫보다 약간 작은 금관악기)을 처음으로 접하게 됐다.

▲ 1964년 내한공연 모습/사진=유튜브
▲ 1964년 내한공연 모습/사진=유튜브

소년원에서 나온 후 1922년 뉴올리언즈에서 시카고로 자리를 옮겨 ‘킹올리버 악단’에서 활동했는가 하면, 1925년 자신이 리더가 돼 ‘루이 암스트롱과 핫 파이브’를 결성했다. 이 당시 아무 의미 없는 짧은 단어로 된 즉흥 보컬인 ‘스캣’을 처음 선보이기도 했다. '핫 파이브'(Hot Five)의 이름으로 나온 수십 곡은 미국재즈 사상 불멸의 명반으로 평가받았다.

그의 명성은 전세계 공연을 통해 증명됐다. 공연을 후원해 준 것은 미국 국무부였다. 당시 1963년 4월 8일부터 22일까지 한국을 방문해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2주간 공연을 했는데, 유명 재즈 뮤지션이 첫 내한한 공연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그의 인기는 음악뿐만 아니라, 영화나 라디오·텔레비전 쇼 등 연예계 활동도 활발했다. 큰 입으로 화려한 입담을 선보이며 전 세계인들의 귀를 사로 잡았으며, 1964년에는 'Hello, Dolly!'로 비틀즈를 제치고 역대 최고령 빌보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일이 늘어날수록 건강은 악화됐다. 그러나 그는 음악과 그의 일을 한시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1967년 루이의 히트곡인 ‘What a Wonderful World’가 발표됐고, 4년 후인 1971년 7월 6일 ‘오늘’ 뉴욕 퀸스 자택에서 잠들 듯 영원히 눈을 감았다. 죽음의 원인은 심근 경색과 폐암이었다.

가난한 흑인의 아들로 태어나 세계적인 재즈 음악가로 이름을 남긴 루이 암스트롱의 삶은 그의 노래 제목처럼 ‘멋진 세상(what a wouderful world)’ 이었다./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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