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연극제] '그림자의 시간' 리뷰 - 숙명과 자유의지 사이

  • 문화
  • 공연/전시

[대한민국연극제] '그림자의 시간' 리뷰 - 숙명과 자유의지 사이

  • 승인 2018-06-29 18:20
  • 한윤창 기자한윤창 기자
그림자의시간(5)
부산 대표 누리에의 경연작 '그림자의 시간' 공연 모습.
부산 대표 누리에의 경연작 '그림자의 시간'은 운명과 자유의지 사이의 상관관계를 다룬, 시대극을 빙자한 상황극이었다. 등장인물 사이의 운명이 얽히고설키는 과정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인생의 숙명성이란 무엇인가, 숙명에 자유의지가 저항할 수 있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거대 담론을 직접 설명하지 않고 인물 간 상황을 통해 보여주는 숙련된 기술이 돋보인 작품이었다.

'그림자의 시간'에서 시대적 배경은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 초기다. 때는 이른바 국권상실기로 나라의 최고 존엄이자 권력자인 왕마저 제대로 뜻을 펼 수 없는 시기. 소용돌이치는 정세 속에서 운명과 자유의지가 극렬히 충돌하는 비련의 시대이기에 작품은 국권상실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는다. 일제가 단발령을 강요하자 고종은 일본인 이발사를 거부한 채 내관에게 자신의 상투를 자르게 한다. 그러자 내관은 국왕의 신체를 훼손하는 데 대한 화를 피하기 위해 애 쓰는 등 운명의 연쇄고리가 이야기를 추동한다. 단발령으로 촉발된 숙명 앞에서 등장인물들은 어떻게든 자유의지를 펴려 하지만 실패하고, 한 인물의 자유의지로 파생된 결과가 다른 인물에게 굴레가 되고 만다.



오이디푸스 신화처럼 작품은 운명과 자유의지 사이의 흐릿한 경계를 보여준다. 극중 상선은 양자 윤찬에게 상투를 자르는 일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일을 재신에게 맡기는데, 재신의 절친한 친구 윤찬은 상선의 결정을 묵인한다. 시간이 흘러 윤찬은 그때 일이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하지만 재신의 동생 재오는 형을 죽음으로 몰아갔다며 윤찬을 증오하게 된다. 숙명성을 강조하는 윤찬과 자유의지를 주장하는 재오. 결국 윤찬과 재오 사이의 갈등 장면은 삶을 결정하는 운명이란 무엇인가, 자유의지가 운명에 저항할 수 있는가란 질문을 던진다. 인물 관계의 난맥상 속에 해답은 명확하지 않지만 극중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 언급되는 '순리'가 운명과 자유의지 중간 어느 지점에서 절충된 결론으로 제시된다.

숙명과 삶에 초점을 맞춘 까닭에 창작자는 연출에서 시대 고증에 일부러 신경을 쓰지 않았다. 모노톤의 단순한 의관, 전혀 디테일을 살리지 않은 세트 등은 오히려 현대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보다 인물 관계를 주안점으로 삼은 의도의 산물이다. '그림자의 시간'이 일제강점의 운명이라는 상황에 등장인물이 어떤 태도로 반응하는지를 담은 상황극인 이유다. 일본군 고위 간부 타치바나조차 운명에 따라 조선을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로 등장하는 설정이 이를 방증하기도 한다.



이날 공연은 오후 7시 30분 기준으로 150여 명이 찾았다. 관객들은 인과관계가 뚜렷하고 스토리가 탄탄한 연극이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공무원 감 모(41) 씨는 "이야기의 개연성이 탁월하다"며 "논리적 전개가 이어져 수긍하며 봤다"고 소감을 밝혔다. 자영업자 서 모(57) 씨는 "공연 내내 그림자의 시간이 무슨 뜻일까 생각했다"며 "표출된 사건보다는 이야기의 내막에 집중하며 봤다"고 말했다.
한윤창 기자 storm0238@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서산 대산단지 '분산에너지 특화지역' 지정… 기존 전기료比 6~10%↓
  2. 국가철도공단 전 임원 억대 뇌물사건에 검찰·피고인 쌍방항소
  3. 성착취 피해 호소 대전 아동청소년 크게 늘어…"기관간 협력체계 절실"
  4. 충남대 올해 114억 원 발전기금 모금…전국 거점국립大에서 '최다'
  5. 29일부터 대입 정시 모집…응시생 늘고 불수능에 경쟁 치열 예상
  1. 셀트리온 산업단지계획 최종 승인… 충남도, 농생명·바이오산업 거점지로 도약
  2. 한남대 린튼글로벌스쿨, 교육부 ‘캠퍼스 아시아 3주기 사업’ 선정
  3. 심사평가원, 폐자원의 회수-재활용 실천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상'
  4. "천안·아산 K-POP 돔구장 건립 속도 낸다"… 충남도, 전문가 자문 회의 개최
  5. 충남도, 도정 빛낸 우수시책 12건 선정

헤드라인 뉴스


불수능 영향?…대전권 4년제 대학 수시 등록률 증가

불수능 영향?…대전권 4년제 대학 수시 등록률 증가

2026학년도 대입 모집에서 대전권 4년제 대학 대부분 수시 합격자 최종 등록률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 '황금돼지띠' 출생 응시생 증가와 문제가 어렵게 출제된 불수능 여파에 따른 안정 지원 분위기가 영향을 준 것으로 입시업계는 보고 있다. 29일 지역 대학가에 따르면 2026학년도 수시 모집 합격자 등록을 마감한 결과, 대다수 대학의 등록률이 전년보다 늘어 90%를 넘긴 것으로 조사됐다. 사립대학들의 등록률이 크게 올라 대전대가 93.6%로 전년(82.4%)에 비해 11%p가량 늘었다. 목원대도 94%로 전년(83.4..

충북의 `오송 돔구장` 협업 제안… 세종시는 `글쎄`
충북의 '오송 돔구장' 협업 제안… 세종시는 '글쎄'

서울 고척 돔구장 유형의 인프라가 세종시에도 들어설지 주목된다. 돔구장은 사계절 야구와 공연 등으로 전천후 활용이 가능한 문화체육시설로 통하고, 고척 돔구장은 지난 2015년 첫 선을 보였다. 돔구장 필요성은 이미 지난 2020년 전·후 시민사회에서 제기됐으나, 행복청과 세종시, 지역 정치권은 이 카드를 수용하지 못했다. 과거형 종합운동장 콘셉트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충청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유치에 고무된 나머지 미래를 내다보지 않으면서다. 결국 기존 종합운동장 구상안은 사업자 유찰로 무산된 채 하세월을 보내고 있다. 행복청과..

‘충청내륙고속화도로’ 청주~제천 전 구간 개통
‘충청내륙고속화도로’ 청주~제천 전 구간 개통

충북도는 충청내륙고속화도로(57.8㎞) 3~4공구 잔여구간인 '충주시 대소원면 만정리(신촌교차로)'에서 '제천시 봉양읍 장평리(봉양역 앞 교차로)'까지 17.4㎞를 30일 낮 12시에 추가 개통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충청내륙고속화도로 1-1공구(10.5㎞) 개통을 시작으로 잔여구간이 개통됨에 따라 충청내륙고속화도로는 2017년 첫 삽을 뜬 지 8년 만에 57.8㎞ 구간이 완전 개통됐다. 이처럼 충청내륙고속화도로의 큰 성과를 이룩하기 위해서 국토교통부와 충북도의 유기적인 협력이 주효했다. 총사업비 1조436억 원이 소요된 이 사..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 서북부의 새로운 관문 ‘유성복합터미널 준공’ 대전 서북부의 새로운 관문 ‘유성복합터미널 준공’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세밑 주말 만끽하는 시민들 세밑 주말 만끽하는 시민들

  • 유류세 인하 2개월 연장…기름값은 하락세 유류세 인하 2개월 연장…기름값은 하락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