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새롬 기자의 편집국에서] 흑인작가와 여배우

  • 오피니언
  • 기자수첩

[박새롬 기자의 편집국에서] 흑인작가와 여배우

  • 승인 2019-02-18 09:55
  • 박새롬 기자박새롬 기자
영화 <그린북>에는 전설적인 재즈 피아니스트 돈 셜리가 등장한다. 영화는 그가 미국 남부로 투어를 떠나며 운전기사로 고용한 토니 발레롱가와 나눈 우정을 소재로 1960년대 미국에 만연했던 인종차별, 그리고 사람 간의 소통을 따뜻하면서도 웃음기 묻어나도록 보여준다.

실제 돈 셜리는 천재라는 단어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두 살 때 처음으로 피아노를 연주하고 18세에 연주회 데뷔, 19세에 최초로 작곡한 작품을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흑인이라서 클래식 음악계에서 인정받기 어려웠던 대신 재즈 음악가로 명성을 얻었다.

명망있는 아티스트였던 돈 셜리는 굳이 인종차별이 심한 남부로 투어를 떠날 필요가 없었다. 그런 그가 길을 달린 건 차별을 부수기 위해서였다. 목숨 건 용기의 여정이었다. 무대 아래 세상은 그에게 흑인이라는 이유로 화장실도, 레스토랑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없게 했다. 그는 피아노 건반 위에서 세상의 벽을 두드렸다.

미국의 인종차별과 천재의 이야기를 버무린 또 다른 영화로 2017년 개봉한 <히든 피겨스>가 있다. 주인공인 흑인 여성 캐서린 존슨은 천부적인 수학 능력으로 NASA 최초의 우주궤도 비행 프로젝트에 선발된다. 하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800m 떨어진 유색인종 화장실을 사용해야 했고, 여자라는 이유로 회의에 참석할 수도 공용 커피포트를 쓸 수도 없었다. 숨 막히는 견제와 무시 속에서 그는 칠판에 세상의 공식을 바꿀 숫자와 기호들을 써 내려갔다.

숨 쉬듯 차별했던 시절을 세상은 부끄러워한다. 인권을 위해 많은 이들이 피와 눈물을 흘린 끝에, 차별하는 사람이 손가락질 받는 시대가 왔다. 언급한 두 영화와 출연 배우는 여러 영화제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비욘세 등 많은 흑인 가수들의 노래는 전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다. 이제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모든 인종이 동등한 위치에 오른 것처럼 보인다.

2009년 오바마가 흑인 최초로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2012년에는 <노예 12년>을 연출한 스티브 맥퀸이 흑인 감독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이들이 옳은 세상을 말하는 사람과 훌륭한 작품으로서 주목받음에도, 이들을 향해 흑인이라서 그동안 받은 차별 때문에 특혜받은 거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세상이 'PC함(정치적 올바름)을 의식하느라' 이전에 주류를 차지했던 쪽이 역차별을 받는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우월의식은 그렇게 세상에 눈을 감고, 평등을 가장해 남아있었다.

최근 국내에 출간된 소설 <다섯 번째 계절>의 작가 N. K. 제미신은 2018년 세계 최고 권위의 SF 문학상인 휴고상을 사상 최초로 3년 연속 수상했다. 오랫동안 백인 남성 작가가 주류를 이루던 SF 장르의 변화를 보여 주는 사건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역시나, 이 성과를 실력이 아니라 흑인 여성이어서라고 폄하 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았다. 3년 연속 상을 받는 기록을 세운 지난해, 그는 자신이 상을 받는 이유가 모든 수상자와 마찬가지로 노력 때문이라고 소감을 밝히며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공정한 경쟁을 하는 시대를 원한다면 세상을 공평하게 바라봐야 한다. '흑인 최초'의 등장이 조명받았던 건 세상이 그들을 우리가 수십 년간 동등한 위치에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이 신문에 수두룩한 것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누군가 인종이나 성별 때문에 주목받는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그가 인종이나 성차별 때문에 제 실력을 어렵게 펼쳤다는 뜻이다. 흑인 가수, 흑인 작가 같은 표현이 사라지는 날을 기대한다. 여가수나 여배우라는 말도 물론이다. 우리 모두는 동등한 기자, 직원, 아티스트다.
박새롬 기자 onoino@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인사]대전MBC
  2. 정림종합사회복지관 독서캠프 ‘체크인! 북트랩 마블, 이야기 공항’
  3. 생명종합사회복지관, 우리동네축제, ‘함께 떠나는 우리의 여름’
  4. 대전 동구새마을문고, 여름철 피서지문고 개장
  5. ‘머드에서 놀자’…보령머드축제 개막
  1. 세종시교육청 '교육문화원' 공식 개원… 복합 교육문화 거점 노크
  2. 가로림만 서산갯벌,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서산, 세계유산도시 새 역사 열었다
  3. 신한철 전 중도일보 상무 별세
  4. 김해 전략산업 기술거점 10곳, 내년 4월 완성
  5. 대전사랑메세나와 대전사랑시민협의회,동안미소한의원이 함께하는 취약계층 위한 영화제 성료

헤드라인 뉴스


테크·바이오 창업 수도권으로 이탈 여전…KAIST 창업 61% 수도권·대전서 고용 15%

테크·바이오 창업 수도권으로 이탈 여전…KAIST 창업 61% 수도권·대전서 고용 15%

KAIST가 교내 안팎에서 이뤄진 창업 기업의 성과를 조사한 결과 6만1252명의 고용을 창출하고 38조 9500억 원의 총매출을 일으킨 것으로 집계했다. KAIST 교원과 재학생과 졸업생이 창업하거나 그리고 학교의 지원을 받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가 이뤄졌는데, 이들 창업 기업 중 대전에 본사를 둔 경우는 전체의 23.1%이었고, 총 매출액 대비 대전의 비중은 7.4%에 불과했다. 국방과 기술(Tech), 바이오 등 대전의 연구성과를 지역 창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이 절실하다. KAIST창업원은 KAIST 출신 교원과 재학..

숨통 튼 홈플러스…영업 정상화까진 `첩첩산중`
숨통 튼 홈플러스…영업 정상화까진 '첩첩산중'

법원의 결정으로 회생절차를 이어가게 된 홈플러스가 파산 위기에서는 일단 벗어났지만 정상 영업을 회복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난관이 남아 있다. 긴급 운영자금 확보로 핵심 점포 재가동의 발판은 마련했지만 체불 임금과 공공요금, 납품대금 지급, 협력업체 신뢰 회복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2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은 최근 홈플러스의 회생절차 폐지 결정을 취소하고 회생계획안 가결 기한을 오는 9월 4일까지 연장했다. 홈플러스는 최대 채권단인 메리츠금융으로부터 2000억 원 규모의 DIP(긴급운영자금) 대출을 확보..

보행 안전 돕는다더니…장마·폭염에 고장 난 바닥신호등 수리도 늦어져
보행 안전 돕는다더니…장마·폭염에 고장 난 바닥신호등 수리도 늦어져

23일 오전 8시 20분께 대전 중구 오류초등학교 정문 앞 횡단보도. 등교 시간 학생들이 녹색 보행신호가 켜지자 횡단보도를 따라 도로를 건너기 시작했다. 마침 발 아래 바닥신호등도 초록불이 들어왔고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하던 보행자들은 신호를 놓치지 않고 길을 건널 수 있었다. 그러나 횡단보도 반대쪽 바닥신호등은 여전히 적색 신호를 유지한 상태였다. 서구 둔산초등학교 앞 사거리에서도 횡단보도 시작점에 설치된 바닥신호등 5곳 중에 2곳에서 LED 일부에만 불이 들어오거나 적색과 녹색 신호 모두 표시되지 않은 채 꺼져 있었다. 시민들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역투 펼치는 한화이글스 새 외국인 투수 짐머맨 역투 펼치는 한화이글스 새 외국인 투수 짐머맨

  • ‘우린 더위 몰라요’…한화생명볼파크 썸머 페스티벌 ‘우린 더위 몰라요’…한화생명볼파크 썸머 페스티벌

  • 충청 유니버시아드 빛낼 굿즈들 충청 유니버시아드 빛낼 굿즈들

  • ‘머드에서 놀자’…보령머드축제 개막 ‘머드에서 놀자’…보령머드축제 개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