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소리 없는 외침, 아우성! 들리시나요?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 소리 없는 외침, 아우성! 들리시나요?

세종누리학교 정민호 교장

  • 승인 2019-02-21 17:37
  • 신문게재 2019-02-22 22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세종누리학교 정민호 교장
정민호 세종누리학교장
1989년 3월 1일 서울의 한 중학교 특수학급에 첫 발령을 받아 특수교육의 길을 걸어 온지 어언 30년, 저는 지금 세종특별자치시에 있는 세종누리학교의 교장을 맡고 있습니다. 대학의 학부에서 특수교육을 4년 전공했으니, 특수교육만 약 35년 외길 인생을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한 우물만 팠으니 이 분야에 대한 자신감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며 느끼는 저 자신에 대한 모자람의 발견과 세상의 변화에 대한 불안함도 커 갑니다. 그래서인지 이 길을 걸으며 느끼는 보람은 그 무엇보다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며, 기쁨 또한 두 배라고 할 것입니다. 깨달음의 연속인 학교에서의 일들과 생각을 두서없이 적어볼까 합니다.

2017년 3월 어느 날! 중증의 지체장애가 있는 A학생의 아버님으로부터 카톡이 왔습니다. 입학식에 참석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내용이었지요. 그래서 저는 "괜찮습니다. 아버님! 요즘, A학생의 얼굴이 아주 밝고 명랑합니다^^"라고 답장을 보냈습니다. 그러고 나서, 바로 회신이 오지 않고, 잠시 시간이 흐른 후에 카톡 답장이 왔습니다. "교장선생님, 저 A학생이에요. 저희 아버지 SNS는 여기입니다."하고 SNS주소까지 캡처해서 보내 주었습니다. 저는 잠시 멍해졌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이지? 100% A학생의 아버지라고 생각했는데..." A학생의 아버지가 아니고, A학생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A학생은 중증의 뇌성마비장애를 가진 학생으로, 휠체어를 타고 다닙니다. 어떤 행동을 하고자 할 때, 불수의 운동형 장애라 사지가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움직이는 특성을 보이지요. 손가락 쪽의 소근육이 위축되어 있어서 무엇을 잡기도 어렵습니다. 무엇을 잡고자 하면 사지가 원치 않는 움직임을 합니다. 그래서 'A학생은 카톡을 보낼 수 없을 것이다. A학생의 아버님이 카톡을 보낸 것이다.'라고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저는 학생에게 "미안해, 아버님으로 오해 했어"라는 카톡을 보내고, 'A학생은 장애 때문에 카톡을 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자신을 질책했습니다. 35년 특수교육 외길인생을 걸었다고 자부하면서도 '아직도 모자라구나!'라고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A학생으로부터 카톡이 왔습니다. "교장선생님, 교장실에 우유 배달하는 것 제가 하면 안 될까요?"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실, A학생은 교장실 바로 옆 반에서 공부하는 학생으로, 그 반의 B학생이 자기 학급의 우유를 가져오며, 겸사겸사 교장실의 우유도 배달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손으로 잡지도 못하고, 혼자서 걷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우유를 배달하겠다는 것이지?'라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2학기 때부터 하면 어떨까?"라는 답장을 보냈습니다. 사실, 이것은 학생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 시간을 벌어 현명한 답을 찾기 위한 답신이었습니다. 그 후 A학생으로부터 카톡 회신은 오지 않았습니다. 다음날이었습니다. 저는 또 한 번 '제가 얼마나 모자란가!'하는 깊은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우유를 배달하던 B학생이 앞장서고, A학생이 휠체어에 앉은 채 무릎 위의 바구니에 우유를 담고, 사회복무요원이 뒤에서 휠체어를 밀면서 교장실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냉장고 앞으로 가서는 원래 우유를 배달하던 B학생이 냉장고에 우유를 집어넣었습니다. 결국 A학생은 교장실에 우유를 배달한 것입니다. 저는 A학생과 B학생에게 고맙다고 인사하였습니다. 그리고 '아! 이렇게도 할 수 있는데…. 나는 또다시 안 된다고만 생각했구나!'라는 자책을 하루 종일, 아니 그 달 내내 하였습니다.

저는 이것을 우리 학생들의 '소리 없는 외침, 아우성!'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소리가 큽니다. "나도 하고 싶어요. 나도 할 수 있어요!"라고. 그래서 저는 두 눈을 똥글똥글 뜨고 학생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학생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귀 기울여 듣습니다. 이게 35년 특수교육 외길 인생을 걷고 있는 저의 하루 중요 일과입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경기 프리미엄버스 P9603번 운행개시
  2. [기획] 의정부시, 우리동네 정책로드맵 ‘장암동편’
  3. 유성복합터미널 3개사 공동운영체 출범…터미널·정류소 흡수·통합 본격화
  4. 첫 대전시청사 복원활용 탄력 붙는다
  5. 국립한밭대 RISE 사업단 '지역사회상생협의체' 간담회
  1. 충남대, 충청권역 장애 대학생 기업 탐방 프로그램 개최
  2. 누리호 4차 발사 D-4… 국민 성공기원 분위기 고조
  3. '세종시=행정수도' 진원지, 국가상징구역...공모작 살펴보니
  4. 충남도 청렴 파트너 '제8기 도민감사관' 출범
  5. 헌법파괴 비윤리적 2025 인구주택총조사 국가데이터처 규탄 기자회견

헤드라인 뉴스


대출에 짓눌린 대전 자영업계…폐업률 6대 광역시 중 두번째

대출에 짓눌린 대전 자영업계…폐업률 6대 광역시 중 두번째

대전지역 자영업자들이 극심한 불황을 견디지 못하고 잇따라 폐업의 길로 내몰리고 있다. 특히 도소매업의 경우 대출 증가와 폐업률 상승이 두드러지면서, 이들을 위한 금융 리스크 관리와 맞춤형 정책 지원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24일 한국은행 대전세종충남본부가 발표한 '대전지역 자영업 현황 및 잠재 리스크 점검'에 따르면 2025년 2분기 기준 대전지역 자영업자 수는 15만 3000명으로 집계됐다. 2023년 이후 감소세를 보인 다른 광역시와 달리 대전의 자영업 규모는 오히려 확대되는 추세다. 전체 취업자 수 대비 자영업자가 차..

갑천에서 18홀 파크골프장 무단조성 물의… 대전시, 체육단체장 경찰 고발
갑천에서 18홀 파크골프장 무단조성 물의… 대전시, 체육단체장 경찰 고발

대전 유성구파크골프협회가 맹꽁이와 삵이 서식하는 갑천 하천변에서 사전 허가 없이 골프장 조성 공사를 강행하다 경찰에 고발당했다.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고 나무를 심으려 굴착기를 동원해 임의로 천변을 파내는 중에 경찰이 출동해 공사가 중단됐는데, 협회에서는 이곳이 근린친수구역으로 사전 하천점용허가가 없어도 되고 불법도 아니라는 입장이다. 24일 대전시하천관리사업소와 대전충남녹색연합에 따르면, 유성구 탑립동 용신교 일대의 갑천변에서 11월 15일부터 17일까지 굴착기가 땅을 헤집는 공사가 이뤄졌다. 대덕테크노밸리에서 대덕구 상서동으로 넘어..

세종 도시재생 `컨트롤타워` 생긴다… 본보 지적에 후속대책
세종 도시재생 '컨트롤타워' 생긴다… 본보 지적에 후속대책

<속보>=세종시 도시재생사업을 총괄 운영할 '컨트롤타워'가 내년 상반기 내 설립될 예정이다. 국비 지원 중단 등 재정난 속 17개 주민 거점시설에 대한 관리·운영 부실 문제를 지적한 중도일보 보도에 후속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중도일보 11월 19일자 4면 보도> 세종시는 24일 오전 10시 기자간담회를 통해 도시재생 사업의 주민 거점시설 운영 현황과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본보는 10년 차 세종시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는 광역도시재생지원센터와 현장지원센터 5곳이 폐쇄한 작금의 현실을 고발하며, 1000억 원에 달하는 혈세 투입..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주택재건축 부지 내 장기 방치 차량 ‘눈살’ 주택재건축 부지 내 장기 방치 차량 ‘눈살’

  • 은빛 물결 억새의 향연 은빛 물결 억새의 향연

  • 구직자로 북적이는 KB굿잡 대전 일자리페스티벌 구직자로 북적이는 KB굿잡 대전 일자리페스티벌

  •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찰칵’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찰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