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아무도 우리 말을 믿어 주지 않으니까"

  • 오피니언
  • 편집국에서

[편집국에서] "아무도 우리 말을 믿어 주지 않으니까"

  • 승인 2019-07-14 10:45
  • 수정 2020-06-30 11:34
  • 신문게재 2019-07-15 18면
  • 박새롬 기자박새롬 기자
2014년 첫 해외 여행지였던 폴란드에서 가장 먹어보고 싶었던 음식은 케밥이었다. 터키의 전통식이지만 유럽에서 흔히 먹을 수 있다는 음식. 한국의 마트에서 파는 걸 먹어본 적은 있지만, 더 다양한 맛의 케밥을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했다.

빗속에서 만난 케밥 노점 안에는 터키인이 아닌 동남아인이 있었다. 영어가 피차 짧아서 다행이었다. 치킨 케밥이라고 써진 알파벳을 읽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주문을 했다.

중국 사람이에요? 그가 영어로 물었다. 한국인이라고 대답하자 한국에 가본 적 있다는 그는 방글라데시에서 왔다고 자신을 소개하고는 다시 질문했다. 한국 어디에 살아요? 대전이라는 도시를 이 사람이 알까 속으로 궁금해 하며 대답했다. 대전이요. 그 순간 그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그는 조금 지난 뒤, 오래전 대전에서 일했었다고 말했다.

그의 대전 생활이 어땠을지 궁금했지만 아무것도 물을 수 없었다. 대전에 대해 좋은 기억이 있다면 밝은 얼굴로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일하던 곳의 사장이라는 사람이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거나 때리지는 않았을까. 길을 가다 마주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이유 없이 험한 말을 던지지는 않았을까. 지금 우연히 만난 눈앞의 한국인이 나쁜 기억을 떠올리게 한 건 아닌지, 케밥이 완성되길 기다리는 동안 그와 눈을 마주치기가 쉽지 않았다.

김재영의 소설 「코끼리」는 이주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를 배경으로 삼았다. 한 네팔 청년이 어느 날 일하다 잘린 손가락을 가지고 돌아온다. 그의 잘린 손가락을 보며 주인공 소년은 '여기까지 와서 프레스에 손가락을 잘리는 미국 사람은 없을'거라고 생각한다. 소년은 학교에서 상급생 형에게 느닷없이 맞은 적이 있다. '똥 닦는 냄새나는 손으로' 자기 여동생을 만졌다는 이유다. 연필이 굴러가서 잡으려다 실수로 손등을 건드렸을 뿐인데. 같은 반 학생들은 그에게 밑 닦는 손으로 밥을 먹는다며 놀린다. 아버지에게 왜 맞았는지 사실대로 말했지만, 아버지는 "사실이란 중요하지 않아. 아무도 우리 말을 믿어 주지 않으니까"라고 '부정확한 발음으로 한국말을 떠듬'거린다.

우연히 만난 동남아인이 한국에서 일하는 동안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됐을 거라는 생각은 편견일지 모른다. 소설은 소설일 뿐 일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편견과 소설은 현실을 바탕으로 태어난다. 2015년 국가인권위의 '건설업종사 외국인노동자 인권상황실태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의 68%는 일을 하다 다쳐도 산재보험 처리를 받지 못했다. 62.7%는 작업장 내에서 조롱 또는 욕설을 들었으며 21.4%는 폭행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폭행 피해를 입은 이들 중 85.7%는 가해자가 한국인이라고 밝혔다. 제조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11.7%가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인천에서 다문화 가정 학생이 같은 반 학생들의 폭행을 견디다 못해 추락 사망했던 해가 작년이다. 지난 4일에는 베트남에서 온 여성이 남편에게 3시간 동안 맞았다. 한국말이 서툴러서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베트남 출신 아내를 때린 한국인 남편은 "언어가 다르니까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해서, 그것 때문에 감정이 쌓였다"며 "다른 (다문화 가정)남자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고 말했다. 언어가 달라서 소통이 어렵다면 폭력을 휘둘러도 된다고 생각한 걸까. 그의 말처럼 많은 한국 사람들이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인권위의 조사는 벌써 옛일이고 한국인 남편의 말은 그만이 가진 근거 없는 편견일 뿐이라고, 누가 말해줬으면 좋겠다.
박새롬 기자 onoino@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아산시, 전통시장 주차환경 "확 바뀐다"
  2. 허태정-이장우 도시철도 서로 다른 청사진 표심 '촉각'
  3. 출마제한·내란잔당·낙하산… 충남 국회의원 보궐선거 혼전
  4. 대전 죽동중 신설 요구 잇달아… 교육감 후보들 "학교 설립 긍정"
  5. [신간] "고독사는 과연 비극일까"…'슈카쓰' 담은 소설 '행복한 고독사' 출간
  1. 청주 산모 비극, 대전이라면 달랐을까… 응급실 이송사업 전국확대 관심↑
  2. '이장우 vs 허태정' 리턴매치… 대전시장 주도권 다툼 본격화
  3. 파랑·핑크·초록… 대전교육감 '색(色) 마케팅'
  4. 힘 합쳐도 버거운데…野 '정진석 공천여부' 뇌관 부상
  5. 'AI가 돈사 운영' ETRI 제주서 AX 스마트팜 구축… '탄소중립' 축산 실증

헤드라인 뉴스


이제 국회의 시간… 시민사회 "행정수도법 조속 처리하라"

이제 국회의 시간… 시민사회 "행정수도법 조속 처리하라"

행정수도특별법 공청회를 하루 앞두고, 세종지역 시민사회단체 등이 국회의 책임 있는 '결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20년간 이어온 연구와 검토라는 변명의 시간을 종식하고, 행정수도특별법을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수도 이전에 대한 국민 공감대를 바탕으로, 정치권의 특별법 당론 채택을 강하게 요구했다. 42개 세종·전국 시민사회단체(이하 시민단체)는 6일 오전 세종시청 브리핑실에서 '행정수도 특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의 조속한 입법을 한목소리로 요구했다. 이날 회견에는 지방분권 전국회의 11개 지역단체와 한..

`7천피도 넘겼다` 새 역사 쓴 코스피… 코스닥, 지역 상장사는 소외
'7천피도 넘겼다' 새 역사 쓴 코스피… 코스닥, 지역 상장사는 소외

코스피 지수가 6일 반도체 대형주의 급등세에 힘입어 장중 사상 첫 7000선을 돌파하며 새 역사를 썼다. 그러나 이번 급등세가 소수 종목 및 분야에 편중돼 있다는 점과 코스닥과 지역 상장기업의 동반 상승을 이끌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과제로 남는다. 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이날 전 거래일 대비 447.57포인트(6.45%) 오른 7384.56으로 거래를 마쳤다. 올해 2월 25일 처음으로 6000포인트를 돌파한 뒤 약 두 달 만의 대기록이다. 장 초반에는 코스피200선물지수의 급등세로 인해 올해 7번째 매수 사이드카가 발동..

[민선9기, 문화 숙원 풀릴까] 시립극단은 30년째, 박용래 생가는 주차장…
[민선9기, 문화 숙원 풀릴까] 시립극단은 30년째, 박용래 생가는 주차장…

문화는 특정 도시 경쟁력을 가늠하는 주요 지표 중 하나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 각 후보들이 문화, 예술 공약을 내놓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지난 8년 간 대전시 문화정책에 대한 평가는 결이 다르다. 민선 7기엔 코로나 19 위기 속 예술인 지원과 운영 중심 정책이 두드러졌다. 반면 민선 8기에는 문화시설 확충과 대형 사업을 앞세운 외형적 확장이 눈에 띈다. 중도일보는 이에 따라 지난 8년간 대전시의 문화정책을 되짚어 미래를 위한 제언을 하고자 한다. 앞으로 민선9기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문화정책이 어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유성온천 문화축제 준비 ‘이상무’ 유성온천 문화축제 준비 ‘이상무’

  • ‘공정선거 함께해요’ ‘공정선거 함께해요’

  • 시민 눈높이 설치 불법 현수막 ‘위험천만’ 시민 눈높이 설치 불법 현수막 ‘위험천만’

  • ‘과학과 나무랑 놀자’…유성 어린이 한마당 행사 성료 ‘과학과 나무랑 놀자’…유성 어린이 한마당 행사 성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