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당신 책가방은 내가 질게요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수필 톡] 당신 책가방은 내가 질게요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 승인 2019-07-19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바쁘다는 핑계로 산책길을 나가본 지 꽤 오래 되었다. 도솔산 걷는 것이 생활의 일부였었는데 언제부터인지 그걸 못하고 있었다. 재능기부 봉사활동을 한답시고 바쁜 척한 생활에 몸 컨디션의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그래 기분 전환으로 바람도 쐴 겸 집을 나가 산길을 걸었다. 어느 새 즐겨 걷던 도솔산 끝자락 상수도 울타리 옆길까지 와 있었다.

앞에는 중년쯤 돼 보이는 남녀가 정답게 걷고 있었다. 아마도 부부인 것 같았다. 여인은 산행가방을 메고, 남자는 맨몸으로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여인의 산행 가방 멘 모습을 보는 순간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앞에 있는 가방을 멘 여인은, 내가 출근할 때 책가방을 메고 따라오는 아내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예고 없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한 쌍의 부부가 걷고 있는 산길은 바로 상수도 울타리 옆길!



아내가 벗어주던 책가방의 추억도 여기 상수도 울타리 옆길에 묻혀 있는 것이어서 눈시울을 뜨겁게 하고 있었다.

" 출근 가방 메고 걷다가 땀이 차면 수업 못해요. 당신 책가방은 내가 질게요"라고 하며 아내는 집에서부터 빼앗다시피 한 책가방을 여기까지 지고 와서 벗어주었다.

평생 선하게 살았던, 책가방을 진 그 천사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어 날 울리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걷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지 웬만하면 걸어 다녔다. 교직생활 마지막 학교, 유성고등학교 재직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집에서 학교까지 5㎞ 되는 거리인데. 걷는 것이 좋아 도보로 출·퇴근을 했다. 승용차는 집에 두고 산길을 걸어 학교를 오가곤 했다. 걷는 코스는 집을 출발하여 봉산초등학교 바로 뒤 도솔산 입산으로 본격적인 보행은 시작됐다. 산속 갈마정을 지나 대전 상수도 사업 본부 울타리를 끼고 산을 넘어 만년교로 해서 학교까지 걸었다.

출근할 때면 아내는 늘 상수도 울타리 옆길까지 따라왔다. 그것도 내 책가방은 등에 진 채였으니 아내의 배려심에 나는 고마움을 가슴에 매달고 살았다.

가방 메고 먼 길 걸으면 땀이 나서 수업 못한다고 책가방을 상수도 울타리까지 메다 주었다. 책가방 인계인수가 끝난 후 아내는 도솔산 정상으로 향했다.

지금은 그런 아내의 빈자리에 찬바람만이 감돌고 있다.

뭐 그리 급할 것도 없는데 서둘러 재촉하듯 가버렸단 말인가!

상처로 얼룩진 가슴은 못 다한 아쉬움과 잘못한 일만 토해내고 있었다.

'그 봐 있을 때 잘 하지.'

비수 같은 한 마디가 가슴을 후벼 파고 있었다.

가슴은 갈래갈래 찢어지는 아픔이었다.

걷고 있는 길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는데 느낌으로 오는 생각은 천양지판이었다.

그림자 둘이 드리웠던 그 옛 길에는 기쁨과 설렘과 희망이 달음질 치고 있었는데

그림자 하나인 길에는 모든 것이 사라진 공허와 무상감으로 똬릴 틀고 있었다.

실타래 풀리듯한 추억과 그리움의 파도는 잠재울 수 없었다. 집에 와서 아내의 흔적이 있을 법한 이 것 저 것을 뒤적이고 펼쳐보았다. 앨범에서 사진을 찾아보았다. 아내의 흔적은 아무 데도 없었다. 딸애가 저의 엄마 사진을 모두 가져간 것이었다. 상심으로 허덕이는 아비 마음을 잠제우기 위한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TJB 교육대상 수상할 때 방송국에서 만들어준 DVD 영상을 재생했다. 대상 수상자의 아내로 인사말 하는 동영상과 생생한 목소리가 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날은 웬일인지 내 반쪽으로 살던 아내가 사무칠 정도 못 살게 구는 날이었다.

강산이 한 번 바뀔 만한 세월이 됐는데도 얼룩진 가슴은 수시로 빌미를 만들어 날 어렵게 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 감정은 무뎌진다더니 번지수가 잘못된 주소도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도 새록새록 묻어나는 미련과 그리움은 한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었다.

꿈속에서라도 보고픈 얼굴 한 번 만이라도 봤으면 좋으련만 그것조차 허락하질 않았다.

살아서도 교양에 배려심으로 넉넉하게 살던 그 천사가 내려다보는 하늘의 눈도 걱정스러워서일까?

그렇지 않아도 눈물 많은 울보 서방님 심란해할까 봐 보여주지 못하는 얼굴일까!

꿈속에서 보여주는 얼굴이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그것도 어렵다면 서른 날에 한 번만이라도

아니. 그것도 안 된다면 삼백 예순 날 중 한 번만이라도 …

'당신 책가방 내가 질게요'라고 하던, 모나리자 미소의 그 얼굴이 보고픔으로 그리움으로 맥질하고 있었다.

땀나면 수업 못한다고 책가방 메어다 주던 천사의 모습이 환상이 아녔으면 좋겠다.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어

억만 겁의 세월을 기다려도 볼 수 없는 얼굴이라니!

옆 동 살고 있는 딸한테 갔다. 보물찾기하듯 해서 사진 한 장을 가져왔다.

애들 태어나기 전에 찍은 결혼 2주년 흑백 사진 한 장!

만년 천사, 노트북 머리맡에 모셔두고 집필할 때마다 훔쳐보고 있다.

두 눈을 뜨고도 볼 수 없는 얼굴. 눈을 감으니 어느 겨를에 곁에 와 있네.

감아서 볼 수 있는 얼굴이라면 여생을 두 눈 다 먼 소경으로 사오리이다.

결혼 2주년 흑백 사진 한 장!

여기엔, 묻어 둔 한숨이 다발의 꽃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남상선210-수정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천안시, 읍면동 행복키움지원단 활동보고회 개최
  2. 천안법원, 편도 2차로 보행자 충격해 사망케 한 20대 남성 금고형
  3. ㈜거산케미칼, 천안지역 이웃돕기 성금 1000만원 후원
  4. 천안시의회 도심하천특별위원회, 활동경과보고서 최종 채택하며 활동 마무리
  5. ㈜지비스타일, 천안지역 취약계층 위해 내의 2000벌 기탁
  1. SGI서울보증 천안지점, 천안시에 사회복지시설 지원금 300만원 전달
  2. 천안의료원, 보건복지부 운영평가서 전반적 개선
  3. 재주식품, 천안지역 취약계층 위해 후원 물품 전달
  4. 한기대 온평원, '스텝 서비스 모니터링단' 해단식
  5. 백석대 서건우 교수·정다솔 학생, 충남 장애인 체육 표창 동시 수상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통합 추진 동력 확보... 남은 과제도 산적

대전충남통합 추진 동력 확보... 남은 과제도 산적

대전·충남행정통합이 이재명 대통령의 긍정 발언으로 추진 동력을 확보한 가운데 공론화 등 과제 해결이 우선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5일 충남 천안시에 위치한 한국기술교육대학교에서 열린 타운홀미팅에서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사실상 힘을 실었다. 이 대통령은 "근본적으로는 수도권 일극 체제를 해소하는 지역균형발전이 필요하다"면서 충청권의 광역 협력 구조를 '5극 3특 체제' 구상과 연계하며 행정통합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대전·충남의 행정통합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으로 현재 국회에 제출돼 소관위원회에 회부된..

충청 여야, 내년 지방선거 앞 `주도권` 선점 경쟁 치열
충청 여야, 내년 지방선거 앞 '주도권' 선점 경쟁 치열

내년 지방선거가 6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격전지인 충청을 잡으려는 여야의 주도권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대전·충청지역의 미래 어젠다 발굴과 대시민 여론전 등 내년 지선을 겨냥한 여야 정치권의 행보가 빨라지는 가운데 역대 선거마다 승자를 결정지었던 '금강벨트'의 표심이 어디로 향할지 주목된다. 여야 정치권에게 내년 6월 3일 치르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의미는 남다르다. 이재명 대통령 당선 이후 1년 만에 치르는 첫 전국 단위 선거로서, 향후 국정 운영의 방향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때문에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정권 안정..

2026년 R&D 예산 확정… 과기연구노조 "연구개발 생태계 복원 마중물 되길"
2026년 R&D 예산 확정… 과기연구노조 "연구개발 생태계 복원 마중물 되길"

윤석열 정부가 무자비하게 삭감했던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이 2026년 드디어 정상화된다. 예산 삭감으로 큰 타격을 입었던 연구 현장은 회복된 예산이 연구개발 생태계 복원에 제대로 쓰일 수 있도록 철저한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국회는 이달 2일 본회의 의결을 통해 2026년도 예산안을 최종 확정했다. 정부 총 R&D 예산은 2025년 29조 6000억 원보다 19.9%, 5조 9000억 원 늘어난 35조 5000억 원이다. 정부 총지출 대비 4.9%가량을 차지하는 액수다. 윤석열 정부의 R&D 삭감 파동으로 2024년..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충남의 마음을 듣다’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 ‘충남의 마음을 듣다’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

  • 2026학년도 수능 성적표 배부…지원 가능한 대학은? 2026학년도 수능 성적표 배부…지원 가능한 대학은?

  • ‘추울 땐 족욕이 딱’ ‘추울 땐 족욕이 딱’

  • 12·3 비상계엄 1년…‘내란세력들을 외환죄로 처벌하라’ 12·3 비상계엄 1년…‘내란세력들을 외환죄로 처벌하라’